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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오는 스무 살 <스물>

매번 반복해도 좋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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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든, 나는 자문해보았다. 스무 살 시절로 돌아간다면, 과연 무엇을 할까. 그 때 하지 않은 것 중에 가장 후회 되는 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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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면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스무 살’의 이야기를 상당히 좋아한다. 첫 미팅의 설렘, 강의실의 나른함, 신입생 환영회의 왁자지껄함, 혹은 내일을 기약하는 재수생의 이야기, 사회에 첫 진출한 새내기 직장인의 이야기 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좋아한다. 사실, 스무 살의 이야기란 대부분 비슷하다. 마침내 어른이 되었다는데서 오는 감격, 갑자기 파도처럼 밀려온 자유에 떠밀려 겪는 방황, 하지만 앞으로의 생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따위가 설익은 채로 뒤섞여 있다. 누구에게나 스무 살의 이야기는 비슷하기에, 누가 등장하듯 스무 살의 이야기는 이런 빛을 발한다. 하지만 정말 좋은 문장은 여러 번 읽어도 울림이 있듯,  스무 살의 이야기도 매번 가슴을 건드린다.

 

그런데, 적어도 내게 스무 살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건 남자 주인공의 지질함 때문이다. 당연한 말 같지만, 남자의 인생에서 가장 지질한 연도를 꼽으라 하면, 스무 살이 된 해다. 육체적,심리적으로는 성인이지만, 사회적,경제적으로는 결코 성인이 아니다. 이 부조화가 스무 살의 남자를 지질하게 만드는 것이다. 양주를 마셔도 되고, 클럽에 가도 되고, 여자 친구와 여행을 가도 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맘대로 하기엔 아직 많은 제약이 따른다.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린 탓에 부모의 영향권에서 채 벗어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이 모든 걸 실행할만한 자금력이 없다. 당연히, 지질할 수밖에 없다. 물론, 부모의 막강한 도움을 얻는 경우는 예외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요소가 담긴 영화가 바로 <스물>이다. 특별한 이야기는 없지만, 스무 살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무슨 살인 사건이 필요하고, 무슨 비리,범죄가 필요하겠는가. 그저 어딘가로 여행을 가고, 누군가를 짝사랑하고, 연인이 되었다가, 또 그 누군가로부터 실연을 당하는 것만으로 이야기는 충분하다. 심각한 대사도 스무 살이기에 어른의 육체로, 별 무게 없이 전달할 수 있고, 면죄 받을 수 있다. 빛나는 육체와 푸른 눈빛, 근사한 웃음으로, 고등학생들이나 할 법한 화법을 구사해도 위화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은 스무 살을 후회 없이 지내기 위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눈다. 누구는 어서 첫 경험을 해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꿈을 위해 일 년을 더 투자해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사랑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감독이 자신의 스무 살 시절에 대한 아쉬움을 투영 시킨 것인지, 관객에게 스무 살 시절로 돌아가는 상상을 요구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찌됐든, 나는 자문해보았다. 스무 살 시절로 돌아간다면, 과연 무엇을 할까. 그 때 하지 않은 것 중에 가장 후회 되는 건 무엇일까. 이런 대답을 해서 좀 김이 빠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딱히 바꾸고 싶은 것이 없다. 어차피 누구에게나 스무 살 시절은 조금은 가슴 아프고, 조금은 불안하고, 그러면서도 막연히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사로잡혀 지상에서 1mm 정도 뜬 채로 지내는 시절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돌아간다 한들 다시 그러한 시간을 반복할 것이다. 딱히 공부를 할 생각도 없고, ‘고전을 읽겠다’는 건설적인 계획 같은 것도 없다. 그 때는 어차피 적당한 게으름과 적당한 의무감에 의한 전진과 후진이 뒤섞일 수밖에 없는 시기다. 나는 돌아가더라도 다시 몇 번의 술을 마실 것이고, 몇 번의 고백을 거절당할 것이고, 몇 번의 여행을 다녀올 것 같다. 발버둥 쳐서 다른 인간이 된다하더라도, 그래봤자 결국은 기껏 인간 아닌가. 고작 좀 더 가지고, 좀 더 분주해질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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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스운 사실이지만, 성인은 한자로 ‘될 성(成)’자에, ‘사람 인(人)’자를 쓴다. 즉, 이제야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되었느냐’, 아직 ‘안 되었느냐’를 구분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적 기준은 참으로 졸렬하다. 그 구분이 겨우, 음주와 흡연과 섹스의 허용 여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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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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