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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만개 <프랭크>

쉽게 쓰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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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나온 듯한 곡과 글과 연기는, 사실 그 사람의 삶이 어느 정도 반영될 수 밖에 없는, 때로는 생의 오랜 경험과 생각과 바람이 터져 나온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글을 작성하는 현재시각은 2014년 10월 9일 21시 06분. 

원래 이 칼럼의 예정된 마감시각은 10월 9일 24시 00분. 

나처럼 철두철미하고 매사에 만반의 태세를 다하는 작가가 고작 마감을 세 시간 앞두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역시나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 됐다는 연락이 오면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단 말이야!” 라는 풍의 답변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면 당연히 거짓말이고(그나저나, 방금 수상자가 발표 났는데…, 모디아노 씨. 12억으로 달팽이 요리 많이 사 드세요), 영화 <프랭크>에 대한 매력을 어찌하면 온전히 전달할까 초민하다 그만 고민이 깊어져 전혀 쓰지 못하고 야구를 봐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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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평소 논리적이고, 엄격히 절제된 문장과 시적 울림이 있는 산문을 지향하는 내가 서두부터 횡설수설한다는 것이…. 남 탓 좋아하는 내가 밝히자면, 이건 모두 영화 <프랭크>를 봤기 때문이다. 일견 <프랭크>의 주인공은 김 빠지게도 ‘프랭크’인데, ‘이거 너무 일차원적이지 않은가’하며 곰곰이 따져보면, 프랭크가 쓴 노래 역시 주인공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영화에는 공기처럼 음악이 흐른다. (과학적인 글쓰기를 추구하는 내가 앞 문장에서 단서를 흘리다니. 말이 새어나온 김에 뭍어가자면) 영화 <프랭크>는 프랭크가 결성한 밴드의 이야기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프랭크’는 굉장히 솔직하다. 사전이 말하듯, ‘어니스트(honest)’가 순수하고 정직한 느낌의 솔직함이라면, ‘프랭크(frank)’는 상대가 불편할 만큼 노골적인 수준의 솔직함을 뜻한다. 그 탓인지, ‘프랭크’의 곡들은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이 ‘날 것’들은 기묘한 매력을 발산하기에, 연주하는 멤버들은 흡사 오르가슴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 또 말이 나온 김에 본격적으로 오르가슴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를 해보고 싶으나, 지면의 품격을 생각해 일단은 이 ‘날 것의 창작물’에 대해 이야기 해보기로 하자(꿩 대신 닭이고, 잇몸 대신 인사돌이니까*). 대부분의 밴드 영화가 그렇듯, <프랭크>도 곡이 생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한데, 왠지 매번 영감을 받아 첫 합주를 마쳤을 때의 희열만 보여주는 듯하다. 보편적 밴드 영화라면 영감이 신에게서 주인공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그 영감이 주인공의 손가락에서 어떤 식으로 발생? 발전? 발표되는지 보여주는데, <프랭크>는 당혹스러울 만치 곡의 솔직한 민낯만을 보여준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실, 그것이 전부니까. <프랭크> 속 프랭크의 곡들은 편곡될 수 없으니까. 아니, 그보다 프랭크의 삶 자체가 편곡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조율이 안 되니까.  

 

*그러고 보면 나는  사람도 좋아

비타민  알도 받은  없으면서 동국제약 PPL 해주고 말이야

이가탄도 있는데…. 



주인공 프랭크는 정신 분열을 앓고 있다. 그래서 특별한 이유 없이 평생 커다란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때문에 그의 뇌가 생산하는 가사와 멜로디는 낯설고, 이질적이고, 난삽하다. 그러나 밴드 안에서 그 누구도 프랭크의 곡에 대해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프랭크를 의지하고, 존경한다. 사실, 프랭크는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그만의 세계를 간직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가 “정어리! 코카콜라! 립스틱!” 같은 자아 분열적 가사를 의미 없이 늘어놓아도 익숙하게 수용한다. 영화에서 프랭크의 곡을 들을 때 마다 ‘이건 너무 막 쓴게 아니냐’는 느낌이 들 정도로 쉽게 쓰(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길. 나는 그의 작곡 방식이 성의 없다고 여기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이미 이런 작업 방식의 무수한 예술가들과 함께 숨쉬고 있다. 고쳐지지 않은 듯한 글들, 편곡되지 않은 듯한 곡들, 연기되지 않은 듯한 연기들. 이처럼 무성의해보이는 예술가들의 작업 방식에 이견을 가질지 모르지만, 나는 사실 이들과 이들의 방식을 존중한다. 그들이 단 한 번의 시도로 끝내는 작곡과 집필, 그리고 연기를 위해 생을 통한 준비과정을 거쳐 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이 창작을 위한 예열 과정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쉽게 나온 듯한 곡과 글과 연기는, 사실 그 사람의 삶이 어느 정도 반영될 수 밖에 없는, 때로는 생의 오랜 경험과 생각과 바람이 터져 나온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프랭크의 곡은 아프도록 기이하지만, 순수한 향기를 전하는 것이다. 


때로 모든 꽃의 만개(滿開)는 당연해보인다. 하지만, 그 한 번의 만개를 위해 생을 바쳐 햇빛과 바람과 비와 싸우지 않은 꽃은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

 쓰고 나니 더욱 모디아노 씨가 달팽이 요리를 많이 드셔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이런 말은 뭣하지만, 한 김에 또 하자면 난 참 사람이 좋아). 무슈(monsieur) 모디아노! 만개하느라 그간 얼마나 많은 강풍과 강우, 특히 자외선 강한 프랑스의 지중해성 햇살과 싸워오셨습니까. 달팽이가 피부에 좋다하니, 에스카르고 맘껏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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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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