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최민석의 영사기(映思記)
<나이트크롤러>를 위한 헌정소설
왜 이 영화에는 한인타운이 나오는가?
2012년 미국의 인기 토크쇼인 ‘코난 오브라이언 쇼’에 출연한 제이크 질렌할은 자학하듯이 자신의 성(姓)이 정확히 발음되는 곳은 지구상에 두 곳 밖에 없는 데 한 곳은 가문이 뿌리내린 스웨덴이고, 다른 한 곳은 바로 스웨덴 가구 브랜드인 ‘이케아’ 판매처라고 했다.
(몇 몇 독자는 첫 문장을 예상했겠지만) 지난 2주간 개봉관에서 <버드맨>과 <나이트 크롤러>를 봤고, DVD로 알랭들롱이 1969년에 주연한 불란서 영화 <시실리안: The Sicilian Clan>을 봤다. <버드맨>은 그간 품고 있었던 아카데미에 대한 회의를 모두 확정지을 만큼 식상한 전개로 일관해 한 치의 예상도 벗어나지 않았다. ‘아! 제발 그렇게 만은!’하며 염려한대로만 전개돼, ‘혹시 영화가 아니라 다음 신을 맞히는 영상 퀴즈가 아닌가’하고 생각될 정도였다. 어쩌면 두뇌 기능의 퇴화를 막기 위한 의료용 영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반면 <나이트 크롤러>는 주제도, 결론도, 색깔도 명확하지 않아, 보고나니 오히려 영혼의 일부를 도둑맞은 느낌이었다. 정형화된 상업 영화와 반골 기질의 예술영화, 그리고 정제되지 않은 독립 영화에 지친 관객이라면 <나이트 크롤러>의 규정할 수 없는 흥미와 매력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난 후, 나 역시 말문을 잃어버렸다. 어버버버. 이 훌륭한 영화에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한 결과, 최대한 이 영화에 대해 진지하게 평하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판단했다. (역시 눈치 빠른 독자라면 예상했겠지만) 그러니, 영화는 직접 보시길.
대신 나는 소설가이므로,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이 영화에 대한 사견을 덧붙여보고자 한다. 이는 일정부분 소설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으니,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아울러 (또 한 번 눈치 빠른 독자라면 예상했겠지만) 이 글은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읽어도 좋다. (역시...예상했겠지만)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라면, ‘뭐야, 이런 글도 있는 거야’ 하는 맘으로 토요일 오전의 영화 소개프로그램을 관망하듯 읽어도 좋다.
한국 관객이라면, 이 음침한 분위기의 영화를 보다 갑자기 동공이 확대될 수밖에 없는데, 그건 한인 타운이 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의 서사와 한인 타운이라는 배경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전혀’라 해도 좋을 만큼 없다. 터무니없을 만큼 연계성이 없어, 오히려 나는 영화를 보며 ‘도대체 왜 한인 타운일까?’하고 궁금증에 빠져버렸다. 다음은 이에 대한 나의 상상.
현명한 독자라면 이미 아시겠지만, 제이크 질렌할의 혈관 속에는 스웨덴 인의 피가 절반가량 흐르고 있다. 2015년 3월 12일 오후 17시 30분 현재,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 스티브 질렌할은 비록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지만, 스웨덴의 명문가 ‘질렌할’ 가문의 후손이다.
여기서 잠시 스웨덴의 귀족 ‘질렌할’ 가문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는데, 이 가문의 시조인 ‘질렌할’ 경은 야심만만한 자로서, 자신의 이름이 세계 곳곳에 퍼지길 바랐다. 그리하여 될 수 있는 한, 후손들이 다양한 국가로 퍼져 자신의 이름을 빛내주길 원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서사에는 장애가 따르는 법. 이 가문이 봉착한 문제는 바로 이 ‘질렌할’이라는 이름의 발음이었다. 알파벳으로 ‘Gyllenhaal’라고 써야 하는 이 이름은 정확히 발음하려면 약 한 시간의 연습이 필요한데, 속성으로 유투브에서 한 시간 가량 스웨덴어를 익힌 필자가 이해한 결과 정확한 발음은 ‘이애엘렌-호우올’였다(참고로, 스웨덴 어는 게르만 어파 중에서도 북게르만어군에 속하는 상당히 골치 아픈 언어였다. 필자는 독어를 배우다, 6주 만에 인내의 한계를 느껴 때려치운 전력이 있다. 게르만어는 수도승의 인내를 요하는 언어였다). 아울러, 2012년 미국의 인기 토크쇼인 ‘코난 오브라이언 쇼’에 출연한 제이크 질렌할은 자학하듯이 자신의 성(姓)이 정확히 발음되는 곳은 지구상에 두 곳 밖에 없는 데 한 곳은 가문이 뿌리내린 스웨덴이고, 다른 한 곳은 바로 스웨덴 가구 브랜드인 ‘이케아’ 판매처라고 했다. 그는 자학하듯 그곳에서는 자신의 성이 ‘이애엘렌-헤이일로-우’로 발음된다고 과장하듯 첨언했다. 여하튼, ‘이애엘렌-헤이일로-우’ 가문의 선조인 ‘이애엘렌-헤이일로-우’ 씨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영어식으로 자신의 이름을 발음하기로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몰랐다면 죄송) ‘질런홀’이다(마치 무슨 합창 연습용 강당 같은 느낌이 들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애엘렌-헤이일로-우’와 ‘질런홀’ 사이에는 원래 철자인 Gyllenhaal을 제외하고는 미세먼지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그 교집합 내에 위치한 존재가 전무하여, 그는 약간의 북게르만어의 발음을 가미한 ‘질렌할’으로 자신의 이름을 발음해주길 주변에 요청했다. 이 전통이 이어져 한국에서는 ‘제이크 질렌할’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 제이크 질렌할의 인생으로 돌아와 이야기하자면, 그는 LA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에서 자라나 뉴욕에서 대학을 다녔기에 그 어디에서도 자신의 성이 ‘이애엘렌-헤이일로-우’로 불릴 수 없다는 걸 경험칙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고향인 LA로 돌아와 한인 타운에 가보니 모두 ‘질런홀’이 아닌, ‘질렌할’로 부르며 사인을 요청하는 게 아닌가. 번번이 스웨덴까지 갈 수 없었던 제이크 이애엘렌-헤이일로-우’는 강렬하게 ‘아아, 이곳이 제2의 고향이구나’ 하며 느껴버렸다. 그리하여 결국은 <나이트 크롤러>의 로케이션 문제로 고민하는 감독에게 ‘어이. 한 신(Scene) 정도는 한인 타운에서 찍지 그래?’하며 슬쩍 운을 띄운 것이다.
자, 그럼 여기서 퀴즈. 어떤 정보가 진짜이고, 어떤 게 가짜일까요.
궁금하시죠. 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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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제이크 질렌할은 진지한 표정으로 인터뷰를 할 때마다 자신의 이름을 잘 못 알려줍니다. <페르시안 왕자>가 개봉했을 당시에는, 리포터의 발음을 꾸짖으며 자신의 이름이 ‘옐런 훌러예엔’이라고 했는데, <코난 오브라이언 쇼>에 출연해서는 처음엔 ‘이엘란 하울’이라 했다가, 몇 분 뒤에는 태연하게 ‘이엘렌 헤일로’라고 합니다. 참, 뻔뻔한 배우죠?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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