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먼 곳에서 도착한 위로
염려의 어느 날
어떤 위로는 생각하지 못한 때 아주 먼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도착한다. 나는 그 밤 전화기를 통해 전달된 격려를 오래 마음에 품고 있다가 메일을 보냈다. 선생님. 그때 선생님이 주신 격려로 많은 날들을 이겨낼 힘을 얻었습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들이 많아진다. 예전에는 그냥 누구를 좋아해, 어떤 책이 재미있어, 잘 썼어, 라고 총체적으로 평가했다면 책을 낸 뒤로는 누구의 문장, 누구의 인물, 누구의 구성, 유머를 훔쳐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점점 좋은 작품을 발표하고 펴내는 책의 내용이 성숙해가는 작가가 존경스러웠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물론 좋아하는 국내 작가가 누구예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많은 이름이 떠올라 어버버 할 때가 더 많았다. 글이 지독하게 써지지 않으면 막힌 문장 뒤에 본받고 싶은 작가들의 이름을 써보곤 했다.
임신 후기인 8개월에 접어들자 새벽에 자주 깨고 낮잠이 늘었다. 책을 보다가도 그대로 잠이 들어 한두 시간 뒤에 깨어났고 밤에도 자다 일어나 음악을 듣거나 일기를 썼다. 잠결에 휘갈겨 쓰는 내용은 아기가 있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자질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 그동안 시간이 많았는데 그걸 모르고 허송세월한 걸 후회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며칠은 잘해낼 수 있을 것 같고 새로운 가족, 새로운 시간에 대해 기대가 되다가 그 기분이 고스란히 염려로 바뀌면 애도 잘 못 키우고 글도 못 쓰다가 인생이 끝나겠구나, 싶어졌다.
그날은 염려의 날의 절정쯤에 해당했고 나는 써놓은 글을 읽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잠이나 자버리자, 하고 일찌감치 방의 불을 껐다. 초저녁의 창밖은 희부옇고 잠은 오지 않았다. 전화벨이 울린 건 오 분쯤 뒤였다. 겨울에 소설을 보내야 할 출판사의 대표님이셨다. 안부 인사가 오간 뒤 소설 쓰는 어느 선생님께서 내 소설집을 칭찬하시더라고 전해주셨다. 늦은 시간도 아니고 출판사까지 먼 거리도 아니라 뵙고 차 한잔 마시고 싶었지만 부른 배 때문에 사람들이 불편해 할까봐 감사하다는 인사만 드렸다. 전화를 끊으며 대표님은 건강 잘 챙기고 힘내서 잘 써, 알았지? 라고 말씀하셨다. 네네. 나는 통화를 종료한 뒤에도 한동안 어두운 방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너무나 존경하는 선생님이고 늘 뵙고 싶던 분이었다. 나는 몇 년 전에 그 마음을 올해의 책이라는 서평을 통해 겨우 표현했다. 원고지 10매짜리 글을 보내는데 며칠 동안 고심하며 쓰고 지웠다. 어떤 위로는 생각하지 못한 때 아주 먼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도착한다. 나는 그 밤 전화기를 통해 전달된 격려를 오래 마음에 품고 있다가 메일을 보냈다. 이승우 선생님. 그때 선생님이 주신 격려로 많은 날들을 이겨낼 힘을 얻었습니다.
선생님의 답장은 더 따뜻하게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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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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