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무리와 조심 사이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아가다
너무 무리하거나 지나치게 몸을 사리지 않는 선에서,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는 일. 그것은 예비 엄마가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인지도 몰랐다
봄이 지나면서 책 출간 소식이 이어졌다. 책을 받을 때마다 궁금하고 얼른 읽고 싶어 설레면서도, 나는 언제 다시 책을 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 마음 한 구석이 납작하게 구겨졌다.
올핸 정말 많이 써야지, 다짐하면서 비싼 만년필과 색색의 펜도 사고 노트도 여러 권 준비해뒀는데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둔 상태였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는 듯 원고 청탁도 잠잠하고 시작한 장편소설의 진도도 더디기만 했다.
나보다 몇 달 먼저 임신한 소설가 후배는 통화할 때마다 “언니, 우리 애 낳기 전에 많이 써두자고요” 하면서 의욕을 불태웠다. 아이를 낳은 선배들의 조언도 대체로 비슷했다.
아무리 몸이 무거워도 애를 낳은 후보다는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니까 분만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펜을 놓지 마.
그 말을 듣고 나면 나는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쓰고 싶은 열망, 소설에 대한 갈망으로 차올랐다. 기회는 지금뿐이라는 생각에 막 무리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조언을 하는 선배들도 있었다.
너무 무리하지 마. 애 낳고 나면 아무래도 시선이나 세계관이 변해서 쓰고 싶은 것도 달라지더라고. 그때 써도 괜찮아.
역시 수긍이 가는 얘기라 그런 말에 꽂히는 날에는 한껏 느긋한 마음으로 낮잠을 즐기거나 산책을 했다. 평소에는 귀가 얇은 편이 아닌데 미지의 세계 앞에서 나는 팔랑거렸다. 가족들은 나이가 있으니 매사에 조심하라고 했고, 아이를 위해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하라고 했다. 내 안의 조바심은 배가 더 나오기 전에 많이 써두어야 한다고 속삭였고, 세상은 이런 것을 듣고 보고 만들어야 제대로 된 임산부라고 선전했다.
너무 무리하거나 지나치게 몸을 사리지 않는 선에서,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는 일. 그것은 예비 엄마가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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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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