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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걷기

서로의 속도에 맞추어 느긋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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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 대로 몸을 움직이고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점점 얌전하고 느긋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서두르거나 욕심을 부릴 수 없으니 묘하게 겸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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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그런 적이 없는데 차 안에 있을 때는 보행자 신호가 길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다. 노약자들도 건너야 하니까, 라고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길이 막힐 때는 길다, 길다,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물론 보행자일 때 나는 신호등의 숫자가 한 자리로 줄어들거나 초록색 바가 뚝뚝 떨어지는 순간에도 용감하게 뛰어들어 건너곤 했다. 아슬아슬함을 즐기는 건 아니지만 가만히 서서 다음 신호를 기다릴 정도로 느긋한 성격도 못되어서이다.


임신해서 배가 많이 나온 뒤로는 신호 중간에 뛰어드는 짓 같은 건 못하게 되었다. 6개월에 접어들었을 때부터 만삭이냐는 얘기를 숱하게 들을 정도로 남달랐던 포스의 몸이라 신호가 바뀜과 동시에 걷기 시작해도 길 건너편에 겨우 도착할 때가 많았다.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앉았다가 일어설 때도 움직임이 느리고 공간을 많이 차지해서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서는 자주 거치적거리는 존재가 되었다. 생각한 대로 몸을 움직이고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점점 얌전하고 느긋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서두르거나 욕심을 부릴 수 없으니 묘하게 겸손해졌다.


누군가 옆을 빠르게 스쳐지나갈 때마다 나는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이들이나 무릎이 아파 느리게 걸을 수밖에 없는 노인들, 안내견과 함께 이동하는 시각장애인이나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는 장애인들의 고충에 대해 어렴풋하게 짐작했다. 그리고 다시 예전의 몸으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조금 느리게 걷고 천천히 움직이며 살자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는 한때 노약자였고 누구라도 노약자가 될 수 있으며 실제로 늙어가고 있는 중이니까.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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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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