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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엄마가 되는 여자들 (1)

기대도 예상도 못한 소식 앞에 내가 떠올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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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을 벌린 채 초음파 화면을 쳐다봤다. 그 흑백의 화면 속, 그러니까 내 뱃속에서 벌어졌다는 일이 실감나지 않았다.”

서유미

 

임신을 확인한 건 3월의 첫주, 월요일 저녁이었다.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 나는 물혹이나 염증이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심각한 상황이 아니길 바랐고 그저 중년이 되어가는 신호 중 하나일 뿐이라고 여겼다.


초음파를 본 여자 의사는 반색하며 축하 인사를 전했다. 오래 기다린 것 같은데 잘됐다고, 기적 같은 일이라고. 나는 입을 벌린 채 초음파 화면을 쳐다봤다. 그 흑백의 화면 속, 그러니까 내 뱃속에서 벌어졌다는 일이 실감나지 않았다. 의사는 내가 너무 좋아서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는 거라고 믿는 눈치였다.

 

공교롭게도 그 전날 밤에 옆 사람과 같이 봤던 영화는 <늑대아이>였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옆 사람이 고른 것이었다.


여대생이었던 하나는 늑대인간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아기를 갖게 된다. 그리고 눈 오는 날 태어난 딸 유키와 비 오는 날 태어난 아들 아메를 혼자 키워야 하는 처지가 된다. 영화는 유키와 아메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늑대로 살 것인가,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 쉽지 않은 결정과 적응 과정을 엄마인 하나는 강요하거나 설득하지 않고 따뜻하게 지켜보며 응원해준다. 그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남매는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울컥했고 훌륭한 성장 영화의 면모를 지녔다고 생각했다.


애니메이션의 화면은 흠 잡을 데 없이 아름답고, 하나는 시종일관 씩씩하고, 유키와 아메 남매는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총명하고 꿈 많은 여대생 하나가 학교와 익숙한 곳, 그러니까 자신의 인생에서 떠나 낯선 곳에서 혼자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이 못내 안타깝고 짠했다.


아이들이 자신의 진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는 영화의 미덕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옆 사람과 나의 화제는 그것의 전제가 되는 사랑, 모성애로 옮겨갔다. 그건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이라 위대하고 숭고하면서도 일방적인 희생이 요구되는 폭력적인 세계의 산물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엄마 하나가 아니라 아이들 유키와 아메에 머물러 있었고 그것은 우리의 자발적 선택이었다.


인간이 되기로 선택한 유키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 나는 잠들기 전 그 생각을 잠깐 했다.

 

의사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남편이 죽고 두 아이와 덩그러니 남았던 하나의 심정을 떠올렸고 거기 가 닿았다. 그러나 그런 심정에 가까울 뿐, 온전히 그 심정일 수는 없었다. 그녀는 훨씬 더 외로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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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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