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 <아메리칸 셰프>

셰프가 요리해주는 삶의 애피타이저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훌륭한 애피타이저의 역할은 주요리를 더욱 기대하고, 더욱 즐기게 하는 것이다. 영화가 삶의 한 단편이라면, 훌륭한 영화의 역할은 삶이라는 주 요리를 더욱 흥겹게 즐기도록 하는 것이다

 2주간 본 영화는 <강남 1970>, <허삼관>, <아메리칸 셰프>였다. 그중 <아메리칸 셰프>에 관해 언급을 아니 할 수 없는데, 정말로 스토리와 상관없이 수시로 풍만한 여성들을 등장했다. 훌륭한 영화였다는 말이다. 이런 이야기에 힘을 뺀 영화를 꽤나 좋아하는데, 줄곧 맛있는 음식이 등장했고, 즐거운 음악이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트럭을 타고 미 전역을 떠돌아다니, 나까지 여행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movie_image (4).jpg

 

 약간 어이없는 설정도 있었다. 그건 주인공 ‘존 파브로’의 전처가 ‘소피아 베르가라’이면서 현재 데이트를 즐기는 여인이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주인공의 어디가 좋아서?!’라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존 파브르가 주인공이자 동시에 감독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영화계도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 세계의 축소판이군’하며 탄식할 뿐이었다.

 

 그나저나, ‘소피아 베르가라’가 누구인가. 이런 말은 뭣하지만, 나는 사실 소피아 베르가라 때문에 변방 작가로 낙인찍힌 기구한 사연을 품고 있다. 이태 전 가을, 실로 오랜만에 단편 소설을 하나 청탁 받았는데, 소설을 워낙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탓인지 도무지 소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머리나 식힐 요량으로 평소에 호감을 품고 있었던 할리우드 B급 영화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마셰티 킬즈>를 보러 갔었다. 그때, 그녀를 처음 만났는데, 평안한 심신상태로 극장 의자에 깊숙이 몸을 박고 있던 나는 그만 순간적으로 언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스크린에 첫 등장을 하는 순간, 화면을 가득 채운 압도적인 가슴에 말문이 막혀 버린 것이었다. 나는 이때껏 구사하고, 외워왔던 모든 단어를 상실해버렸다. 그건 아무리 보아도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사이즈가 아니었다. ‘아... 아.... 이...이...이건..’, 하는 얼버무리는 내 머릿속에선 경이와 충격의 감탄사들이 난무했다. 사실, 곧 중년을 바라볼 나이에 무슨 사춘기 소년 같은 호기심이 남아 있겠는가, 라고 변명하고 싶었으니, 말하자면 그건, 일종의 작가적 상상력이었다(고 해두자). 작가는 항상 서사의 개연성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보니까 말이다. 즉, 아무리 생각해도 그 비자연적인 형체에는 뭔가 반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그녀는 위기의 결투 신에서 양 팔을 뒤로 젖히며 적들을 향해 흉부를 개방하더니, 그곳에서 미사일을 발사 시켰다. 마감을 하루 앞둔, 나는 ‘그래! 이거야! 한국 문단은 이런 식으로 권위 의식을 버려야해’하며 유레카를 외쳤고, 그녀의 헌신적 열연에 존경을 표하는 마음으로 이 설정을 숭고한 한국문학의 단편소설에 온전히 차용했다. 그 소설이 발표된 후, 단편소설 청탁은 뚝 끊겨버렸다.

 

 <지골로 인 뉴욕>에서도 화끈한 연기를 선보였던, 그녀는 <아메리칸 셰프>에서는 단지 서서 이야기를 하고, 샌드위치 주문을 받을 뿐인데도 화끈했다. 존재만으로도 영화의 주제가 갈 길을 잃어버리고, 장르가 확 바뀌어버리는 것이다. 아아, 나는 지금 또 한 번 소피아 베르가라 때문에 글을 망치고, ‘여전히 저급한 작가’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위기에 처해 있다(지만, 이 역시 그녀의 존재감을 방증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 영화 주인공의 현재 애인이 스칼렛 요한슨이라니. 자세한 설명은 아직 건전한 예술적 활동이 창창이 남아 있는 내 미래를 고려하여 생략키로 하자.

 

 여하튼, <아메리칸 셰프>는 인간의 기본적인 관심과 욕구를 모조리 충족시켜준다. 입과 귀와 눈이 즐겁다. 끊임없이 당신을 배고프게 만들고,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동시에 우리가 음악을 듣고, 춤 출 수 있는 존재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우리에게 ‘비록 실패할 지언정, 이성에게 호감을 품을 수 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이라 말한다.

 

movie_image-(3).jpg

 

  훌륭한 애피타이저의 역할은 주요리를 더욱 기대하고, 더욱 즐기게 하는 것이다. 영화가 삶의 한 단편이라면, 훌륭한 영화의 역할은 삶이라는 주 요리를 더욱 흥겹게 즐기도록 하는 것이다. 이전 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살게 하는 것이랄까. 


 쿠바 음악과 스페인어가 가득했던 이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스페인어 학원에 들렀다. 다음 달 수강 일정을 확인하고 집에 와서는 혼자서 컴퓨터로 레벨 테스트를 받았다. 그리고 주인공이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팔았던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모든 관객이 그렇듯, 어쩔 수 없이 삶을 소화해내야 하는 내게 <아메리칸 셰프>는 훌륭한 애피타이저였다. 물론, 소피아 베르가라도 한몫했지만 쓰다 보니 지나치게 자세히 기술 됐으니, 부디 잊어주시길. 엉엉. 이번에도 망했다.

 


 

[추천 기사]

- 우리별도 잘못하지 않았어, <안녕, 헤이즐>
- 한 번의 만개 <프랭크>
- 영화라는 삶의 미장센 <러브 액추얼리>
- 뜻대로 되진 않았지만 - <앤 소 잇 고즈>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9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풍의 역사

<최민석> 저11,700원(10% + 5%)

놀라운 이야기, 압도적인 스케일, 그리고 웃음과 감동 이야기꾼 최민석이 펼치는 이야기꾼의 이야기 2012년 『능력자』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최민석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풍의 역사』가 출간되었다. 희대의 허풍쟁이 ‘이풍’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베트남전쟁과 박정희 정권, 5공화국, 서태지의 출현 ..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ebook
풍의 역사

<최민석> 저9,100원(0% + 5%)

놀라운 이야기, 압도적인 스케일, 그리고 웃음과 감동 이야기꾼 최민석이 펼치는 이야기꾼의 이야기 2012년 『능력자』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최민석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풍의 역사』가 출간되었다. 희대의 허풍쟁이 ‘이풍’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베트남전쟁과 박정희 정권, 5공화국, 서태지의 출현 ..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지골로 인 뉴욕

22,700원(10% + 1%)

- 이슈포인트 - * 우디 앨런 & ‘제2의 우디 앨런’ 존 터투로 콤비의 황홀한 초대 어른들을 위한 우아한 로맨스 코미디! * 감독, 각본, 주연 섭렵한 ‘존 터투로’ & 파격 연기 변신 ‘우디 앨런’샤론 스톤, 바네사 파라디, 리브 슈라이버, 소피아 베르가라! * 낭만이 가득한 도시 뉴욕에서 펼쳐..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산업의 흐름으로 반도체 읽기!

『현명한 반도체 투자』 우황제 저자의 신간. 반도체 산업 전문가이며 실전 투자가인 저자의 풍부한 산업 지식을 담아냈다.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반도체를 각 산업들의 흐름 속에서 읽어낸다.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산업별 분석과 기업의 투자 포인트로 기회를 만들어 보자.

가장 알맞은 시절에 전하는 행복 안부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 작가 김신지의 에세이. 지금 이 순간에 느낄 수 있는 작은 기쁨들, ‘제철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1년을 24절기에 맞추며 눈앞의 행복을 마주해보자. 그리고 행복의 순간을 하나씩 늘려보자. 제철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우리 곁에 머무를 것이다.

2024년 런던국제도서전 화제작

실존하는 편지 가게 ‘글월’을 배경으로 한 힐링 소설. 사기를 당한 언니 때문에 꿈을 포기한 주인공. 편지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모르는 이와 편지를 교환하는 펜팔 서비스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성장해나간다. 진실한 마음으로 쓴 편지가 주는 힘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설.

나를 지키는 건 결국 나 자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물질적 부나 명예는 두 번째다. 첫째는 나 자신. 불확실한 세상에서 심리학은 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무기다. 요즘 대세 심리학자 신고은이 돈, 일, 관계, 사랑에서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을 위해 따뜻한 책 한 권을 펴냈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