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최민석의 영사기(映思記)
미제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
미국의, 미국을 위한, 미국에 의한 저격수
애초에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브래들리 쿠퍼를 말리는 ‘시에나 밀러’를 언급하며 이탈리아 ‘시에나’로 여행간 이야기를 쓰려 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돼버렸다.
간만에 한국에 돌아와 개봉관에서 영화를 보니, 즐겁지 아니할 수 없다. 영화에 자막이 있지 아니한가! 웅얼거리는 배우들의 영어 발음에 귀를 쫑긋거릴 필요도 없고, 어쩌다 한 번 상영하는 오리지널 버전의 할리우드 영화를 찾아 헤맬 필요도 없다. 그나저나, 내가 귀국하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영화는 <아메리칸 스나이퍼>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배우가 감독으로 전향하여 만든 영화를 상당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두 감독 겸 배우는 로버트 레드포드와 클린트 이스트우드다. 그러니, 안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우선 간단한 영화 소개.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제목 그대로 ‘미국인 저격수’를 다룬 영화다. 그러나 이 제목은 꽤나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저격수가 미국인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밝힘과 동시에, 미국의 저격수, 미국에 의한 저격수, 미국을 위한 저격수까지도 해석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 이쯤에서 링컨의 유명한 대사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영화의 제목은 무슨 조미료처럼 여기 저기 다 잘 어울리는게, ‘미국 시민을 위한, 미국 시민에 의한, 미국 시민의 저격수’라해도 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하고, 때론 사변적인 논쟁에 흥분하는 소시민들이 보기에 이 저격수의 임무는 상당히 폭력적이고, 반 인권적이고, 반 시민사회적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 저격수가 시민 사회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정신이 투철한 것이다. 주인공 크리스 카일은 실재 인물이다. 네이비 실(Navy SEAL)인 그는 ‘아메리칸 스나이퍼’로 이라크 전에 참전하여 공식적으로는 160명, 비공식적으로는 255명을 저격사살한 인물이다. 미군 역사상 최다 저격을 기록했다. 브래들리 쿠퍼는 실재 인물인 크리스 카일과 비슷하게 보이기 위해 무려 17kg을 찌웠다. 극중의 그를 보면 정말 텍사스에서 태어나 카우보이를 하다가, 마초적인 생각에 젖어 있고, 애국심에 불타며, 때론 폭력을 주저없이 행사하는 인물로 보인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은? 그렇다. 이 경우, 대개 아내가 힘들다. 브래들리 쿠퍼는 국가라는 거대한 개념과 전우들의 복수를 위해 직접적으로는 자신을, 간접적으로는 가족을 전장으로 던진다(그는 ‘전우들의 복수를 위해’ 작전을 감행하고, 이 때문에 이라크의 시민들은 죽음을 맞이한다). 아내로 분한 시에나 밀러가 브래들리 쿠퍼를 제어하고, 그를 안타까워하고, 그의 임무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는 역할을 한다.
영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과감해졌다는 것이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보여줬던 차분하고, 건조한 연출은 어느 정도 유지한다. 그는 주인공 ‘크리스 카일’의 대사와 행동들에 대해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그의 유년 시절과 입대전 시절을 보여준다. 어떠한 가치 판단도 하지 않고, 폭력적 언어와 행동만 제시하여 관객들이 직접 판단을 내리도록 유보적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적진으로 침투할 때는 마치 여타 전쟁 영화들이 그러했듯 상업적인 음악으로 관객들의 심장 박동을 불규칙하게 만든다. 그것이 음악을 맡은 엔리오 모리꼬네의 판단인지,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판단인지, 아니면 둘의 의견이 합쳐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단,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는 감정을 억제하고 사실을 제시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장면들에서는 다소 상업적이고 격정적인 태도를 취한다. 연출작이 늘어가면서 더욱 노련해진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 얻을 것도 잃을 것도 별로 없는 (한국 식으로) 86세인 감독의 나이 탓인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브래들리 쿠퍼를 말리는 ‘시에나 밀러’를 언급하며 이탈리아 ‘시에나’로 여행간 이야기를 쓰려 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돼버렸다. 주인공 ‘크리스 카일’이 참전 후 생각지도 않았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듯, 인생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일상도 그러하고, 이 짧은 글 역시 그러하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하나 밖에 없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아메리칸 필름’이다. 미제(美製)다. 제목이 중의적이었듯, 이 영화 역시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미제(美帝)이기도 하고, 아직 끝나지 않은 논의를 다룬 미제(未濟)이기도 하고, 어쩌면 영원히 답을 얻을 수 없는 미제(謎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만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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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