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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게임> 불꽃 소녀의 장렬한 산화

<헝거게임>, 캣니스는 왜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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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게임>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헝거게임: 모킹제이 Part 1>이 개봉했다. 개봉은 했는데, 찾아보기가 힘들다. 개봉 첫 날에도 <퓨리>에 밀리더니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아예 영화관에서 사라지다시피 했다

영화관에서 <모킹제이> 찾기


<헝거게임>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헝거게임: 모킹제이 Part 1>이 개봉했다. 개봉은 했는데, 찾아보기가 힘들다. 개봉 첫 날에도 <퓨리>에 밀리더니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아예 영화관에서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동안 <인터스텔라>는 무시무시한 흥행을 했고 새로 개봉한 작품들, 이를 테면 <엑소더스><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도 괜찮은 성적을 올렸다.


나름 <헝거게임>의 팬이라 자부하는 나는 바쁜 나머지 개봉 직후에 영화를 보지 못했다. 주위에 함께 보러 갈 사람이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삼십대 중반의 아저씨가 혼자 영화관에 앉아 제니퍼 로렌스, 아니 캣니스의 활약상을 보고 있는 건 아무래도 모양새가 안 살지 싶었다. 아무튼 겨우 시간을 내고 후배 작가 한 명을 꼬드겨서 영화 볼 날을 잡았는데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영화가 사라진 것이다. 아주 이른 시간이나 심야 시간대가 아니면 더 이상 <헝거게임: 모킹제이 Part 1>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미국에서는 3주 연속 1위를 했다는데 확실히 우리나라와의 온도 차이가 크다.


따지고 보면 앞선 시리즈들도 우리나라에서 크게 흥행을 했다고는 볼 수가 없다. 원작 소설도 마찬가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헝거게임』 시리즈는 해외에서는  <해리포터> 트와일라잇』급의 인기를 끌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입소문을 타고 꽤 많이 팔렸지만 판매부수나 화제성에서 앞선 두 작품을 따라잡지는 못했다.


나는 삼일 동안 꼬박 아무 일도 안 하고 헝거게임』을 독파했다. 첫 작품인헝거게임』을 집어 들었을 때는 또 한 편의 그저 그런 영 어덜트 소설이겠거니 했는데 <판엠의 불꽃><모킹제이>를 거치면서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밥 먹고 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책을 읽었다. 내가 워낙 집중해서 읽으니 아내도 궁금했던 가 보다. 무슨 책인데 그렇게 재미있게 읽느냐고 물었다.


“응. 활 잘 쏘는 여자애가 독재 국가를 전복시키는 이야기야.”


남편이 십대 소녀가 활약하는 책을 읽고 있는 게 신기했던지 아내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마법 쓰는 소년도 좋아하더니만 이제는 활 쏘는 소녀야?”


그렇다. 나는 <해리포터> 또한 엄청 좋아해서 전체 시리즈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개봉한 모든 영화를 다 챙겨본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해리포터>의 팬으로서 그 시리즈가 책으로, 그리고 영화로 흥행하는 걸 보는 건 무척 행복한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헝거게임>의 예상외의(?) 부진은 개인적으로는 아주 속이 쓰리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아름답고 용감한 제니퍼 로렌스, 아니 캣니스는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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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사랑하라


미국에서 시작된 영 어덜트(Young-Adult) 소설의 인기가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건 트와일라잇』 때부터이다. 주 독자층이 청소년부터 이십대 초반, 나아가 그들의 부모까지인 이 영 어덜트 장르의 소설들은 하나의 공식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십대인 주인공들이 출생의 비밀과 관련된 ‘판타지’ 한 사건에 엮이게 되고 잠재된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로맨스에까지 충실하다는 것, 이게 주요 클리세이다. 물론 최근에는 영 어덜트 소설이면서도 현실에 초점을 맞춘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네가 있어 준다면』 같은 작품들도 인기를 얻고 있지만 여전히 강세는 판타지 로맨스 쪽이다. 다이버전트』,메이즈러너』, 뷰티풀 크리처스』 시리즈들이 대표적이다.


헝거게임』은 영 어덜트 소설을 대표하는 작품답게 앞서 이야기한 클리세들이 골고루 들어가 있다. 주인공 ‘캣니스’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모두가 그녀를 좋아한다. 양다리는 기본이요, 의도치 않은 ‘밀당’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런 중에도 혁명의 선두에 서게 된다니!


저자인 수잔 콜린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는 요령을 아는 작가이다. 결말이 뻔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아저씨 독자도 사로잡을 만큼 이야기 자체에 힘이 있다. 흡입력도 좋다. 전개가 빨라서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책의 절반이 줄어들어 있다. 적절하게 버무린 자유와 혁명, 그리고 책임에 대한 메시지는 작품에 무게감을 더한다. 특히 십대 소녀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해리포터>의 ‘헤르미온느’는 능력도 뛰어나고 머리도 좋지만 언제나 조연일 뿐이다. 사건의 전면에 나서는 건 늘 해리포터였다. 헝거게임』의 캣니스는 다르다. 그녀의 무기인 활처럼 강하고 날카로우며 또한 치명적이다. 영화 속 주인공인 제니퍼 로렌스의 이미지까지 더해져 캣니스 에버딘은 미국 소녀들이 가장 동경하는 소설 속 인물이 되었다. 캣니스 덕분에 미국에서 양궁의 인기가 올라갔다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해도 될 듯.


한국의 독자들과 관객들에게 캣니스 에버딘은 어쩌면 낯선 존재일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여자가 영웅이 되고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에 익숙하지 않다. 한국의 독자들과 관객들은 여성 캐릭터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남자주인공의 보조이거나, 주인공이라도 로맨스에서나 활약하는 식의 정형화된 이미지 말이다. 그런 점에서 활을 쏘아대며 혁명을 이끄는 여자는 어쩐지 부담스럽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여자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작품들이 유독 한국에서 고전을 했던 것 같다. 밀레니엄』도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서의 판매는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다. 조금 다른 경우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여자 원탑 주인공 영화가 거의 나오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현상의 배경을 두고 유교의 영향까지 따질 필요는 없을 듯하다. 아니, 심도 있게 파고들면 그런 것까지 언급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이유는 ‘낯섦’이지 싶다. 여자가 활약하는 작품은 낯설다. 닥치고 사랑만 해야지, 그 외의 것을 하면 여자 친구의 맨얼굴을 본 것만 같다. 요즘은 이런 말 하는 게 금기처럼 되어버렸지만, 우리나라에서 여성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다. 여성들이 각종 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하고 전문직 종사자 비율도 높아지고 배려라는 이름하에 여성만을 위한 여러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그래서 누군가는 역차별 운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성공이 이례적인 일로 보도되고, 각종 콘텐츠 속에서 여성 캐릭터가 정형화된 모습으로 다루어지는 이상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여전히 제자리라는 게 내 생각이다.


헝거게임』이 흥미로운 것은 캣니스가 사랑에 흔들리고 번민하면서도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데 있다. 한 소녀가(소년이 아니라!) 정체성을 찾으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낯설지만 분명 재미있는 경험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쌓는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캣니스 에버딘’ 같은 캐릭터가 충분한 사랑을 받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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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 세트수잔 콜린스 저/이원열 역 | 북폴리오
『헝거 게임』의 탄탄한 스토리와 휴머니티, 그리고 무엇보다 빼어난 재미는 출간 후 곧바로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스티븐 킹을 비롯한 유명작가와 각 언론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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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전건우

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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