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전건우의 대중소설로 사색하기
무릇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유다의 별』
광신의 덫을 이용한 기막힌 추리 소설
내 믿음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종교가 아니다. 신앙은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 사람마저 행복하게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그것이 올바른 종교가 아닐까 싶다.
신앙이란 무엇일까?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소식이 들린다. 이미 여기저기서 준비가 한창인 모양이다. 가톨릭 신앙을 가진 내 지인은 교황의 방한을 맞이해 광화문 미사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한껏 들떠 있다. 한 종교를 대표하는 성인(聖人)이, 그것도 ‘빈자의 교황’이라 불릴 정도로 몸소 낮은 데로 임하는 자세를 보여 온 훌륭한 종교인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것은 매우 환영할 일이다. 나는 기독교 모태신앙인 탓에 다른 종교를 접해 볼 기회가 없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주는 행동이나 들려주는 말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특히 그가 신앙이 없는 이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자신의 양심을 따르면 된다고 대답한 사실은 내게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렇다면 신앙이란 도대체, 대관절 무엇일까? 나는 어린 시절부터 그것에 대해 아주 많은 의문을 품어왔으며 수없이 많은 질문을 하기도 했고, 또한 받기도 했다. 그래서 내린 나름의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용기.”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신의 존재를 믿는다. 무신론자들에게는 바보처럼 여겨질 일이다. 신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방법 같은 것도 나는 모른다. 그저 존재한다고 믿을 뿐인데, 이런 믿음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보통 종교적으로는 신앙 강화라는 용어를 쓴다. 뭐 어쨌든) 꼭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이 ‘용기’안에서 오랫동안 자신의 신앙을 지켜 온 세상의 모든 종교인들을 존경한다. 그것이 가톨릭이든, 이슬람교이든, 혹은 불교이든 보이지 않고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믿기 위해 끊임없이 용기를 발휘해 온 사람들은 존경 받아 마땅하다.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처럼 자신의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의 용기에도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용기’는 종종 변질된다. 용기가 만용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큰 자극이 필요하지 않다. 신앙이 광신으로 변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우리는 만용에 기대 광신을 일삼는 얼치기 종교인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신은 ‘무릇 믿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했으나 그 믿음이 명예나 돈, 혹은 재물에 바탕을 두었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광신이고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칼럼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종교적인 이야기로 시작했으나, 이런 밑밥을 깔게 된 건 모두 『유다의 별』 때문이다. 갓 출간 된 이 따끈따끈한 추리소설은 맨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도대체 신앙이란 무엇일까?
현실과 묘하게 맞물리는 소설
『유다의 별』을 쓴 도진기는 현직 판사이면서 『붉은 집 살인사건』,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 『정신자살』. 『순서의 문제』등의 추리 소설을 펴낸 독특한 이력의 작가이다. 특히 그가 창조해 낸 어둠의 변호사 ‘고진’이라는 인물은 명맥이 끊기다시피 한 한국 탐정 계를 잇는 아주 독창적인 주인공이자 매력적인 사건 해결사이다.『유다의 별』 역시 도진기의 팬이라면 반가워 할 변호사 고진과 형사 ‘이유현’이 등장한다. 전작들이 정통 추리 소설의 기법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데 반해 『유다의 별』은 역사적인 사건에 대담한 발상을 집어넣은 ‘팩션’에다가 보물을 찾아가는 인디아나 존스 식 ‘활극’까지 더해져 폭넓은 독자층에게 사랑받을 만한 요소가 가득하다.
이야기는 ‘백백교’에서 시작한다. 맞다. 일제강점기 시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사이비 종교 백백교 말이다. 나는 워낙에 기괴한 이야기를 좋아해서 이 백백교 사건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교주가 자살을 했고 머리는 포르말린에 담긴 채 국과수에 보관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의 별』을 통해 알게 된 백백교의 만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끔찍했다.
교주인 전용해를 추종해 전 재산을 갖다 바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내와 딸까지 공양한 불쌍한 교인들은 결국 처참하게 죽고 만다. 쓸모가 다한 때문이었다. 그들은 전용해를 신이라 믿었으나 이 사악한 교주에게는 교인들 따위 돈 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유다의 별』 속 고진과 이유현은 21세기에 드리운 백백교의 그림자와 잔혹한 살인 사건을 쫓는다. 그리고 작가는 주인공 고진의 입을 통해 세상의 갖은 사이비 종교와 그에 얽힌 처참한 결말에 대해 이야기하며 신앙과 광신의 경계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한 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재미를 가졌으면서도 이 시대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작품 안에서 벌어지는 서늘한 사건들과, 8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우리를 덮치는 백백교의 광기는 두려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소설 속의 대담한 설정 중 하나가 요 근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한 남자의 죽음과 묘하게 닮았다는 것이다.
2014년 7월 22일, 전남 순천의 한 매실 밭에서 백골로 발견된 남자. 세모그룹의 총수로, 구원파의 지도자로, 그리고 ‘아해’라는 이름의 사진작가로 활동하다 세월호 사건에 연루되어 경찰과 검찰에 쫓기던 그, 유병언은 죽음마저 미스터리하게 끝났다. 아직도 유병언의 죽음을 두고 여러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걸 보면 그 충격파가 꽤 오래 갈 것만 같다. 도진기는 분명 이 사건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유다의 별』을 집필했겠으나 소설과 현실이 극적으로 맞물리는 작금의 상황을 보며 무척 황당해 하고 있으리라.
백백교 사건이 벌어진 것은 어언 80년 전이다. 그때는 못 배우고 가난한 민초들이 기댈 곳 없는 탓에 그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었다 말할 수 있겠으나, 21세기인 요즘에도 비슷한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 소름까지 끼친다. 아니, 비단 사이비라 비판받는 종교뿐만이 아니다. 나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관점의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다른 신을 믿는다는 이유로 비난을 하거나 위해를 가하는 기득권 종교인들의 ‘광신’도 소름끼치기는 마찬가지이다.
『유다의 별』에서 맹목적인 믿음과 광신으로 거리낌 없이 살인을 일삼는 범인들과 지금 이 시대의 거짓 종교인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신앙을 존중하라.
나는 적어도 그렇게 배웠다.
돈과 명예가 아니라 선한 마음과 사랑을 좇으라.
내 안에 바탕을 둔 종교는 내게 그렇게 가르쳤다.
내 믿음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종교가 아니다. 신앙은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 사람마저 행복하게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그것이 올바른 종교가 아닐까 싶다. 강권하고 강요하고 협박하지 않고 묵묵히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용기’를 발휘할 때, 우리는 각자의 믿음에 충실한, 신과 보다 가까운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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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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