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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이나 걱정하자

『당신 인생의 이야기』 한국에서 대중 소설을 쓰는 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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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와, 그리고 동료들은 앞으로도 모든 인생을 걸고 작품을 써 나갈 테니 한 번쯤 더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기를 사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SF이건, 미스터리이건, 스릴러이건, 혹은 호러이건 우리는 모두 최선을 다해 인생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래서 기꺼이 이 험난한 길을 택했다.

테드 창, SF, 그리고 『당신 인생의 이야기』


나는 읽었던 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는 유형의 사람이다. 영화도 마찬가지. 성격 급하고 쉽게 싫증을 내는 편인데도 이상하리만치 그런 쪽에는 관대하다. <ET> 같은 경우에는 서른 번도 넘게 봤다. <스타워즈>시리즈도 그 정도 봤고, 최근에는 채널을 마구 돌리다가 <반지의 제왕>이나 <007> 시리즈가 나오면 그대로 멈추고 만다.


어린 시절 나를 매혹했던 미하엘 엔데의 『모모』『끝없는 이야기』는 책장이 너덜거릴 때까지 반복해서 읽었고 소설 『반지의 제왕』도 거짓말 조금 보태 한 수십 번 읽었으리라. 머리가 멍할 때마다 아무 쪽이나 펼치고 쭉 읽어나가는 책은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과 김훈의 『자전거 여행』이다. 스티븐 킹의 수많은 작품들도 되풀이해서 읽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을 좋아한다.


오늘 소개할 작품인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도 내가 즐겨 읽는 책 중 하나다. 언제든 빼들 수 있게 손닿기 쉬운 위치에 꽂혀 있다. 이 SF 중단편집은 테드 창의 데뷔작이자 그를 단번에 SF 계의 총아로 만들어준 ‘바빌론의 탑’을 비롯해서 ‘이해’ ‘영으로 나누면’ ‘네 인생의 이야기’ 등 총 여덟 개의 작품이 실려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네 인생의 이야기’이지만 언제 어느 부분을 읽어도 매우 흥미롭고 짜릿한 감흥을 선사한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유독 SF 소설이 안 팔리는 우리나라 도서 시장에서, 그것도 작품집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제법 괜찮은 판매고를 올렸다고 알고 있다. 작년 여름에 테드 창의 신작인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가 출판될 수 있었던 것도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통해 국내 SF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리라.


테드 창은 원래 물리학과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했지만 이제는 소설가가 되었다. 대중 소설을 쓰는 작가들 중에는 의외로 다른 길을 걷다가 전직한 사례가 많다. 스티븐 킹은 세탁 공장 인부와 건설 현장 경비, 영어 선생님을 전전하다가 작가가 되었고, 『검은 선』으로 유명한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는 저널리스트였다가 스릴러 소설을 쓰게 되었다. 아마도 내가 몰라서 그렇지 요리사였다가 소설가가 되었거나 평범한 주부였다가 소설가가 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인생의 방향을 소설을 향해 급작스레 바꾼 인간들의 작품에는 어딘지 모르게 애착이 느껴진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그토록 자주 읽는 것도 아마 그 애착 때문일 것이다. 브라운 대학의 공학도가 심금을 울리는 ‘네 인생의 이야기’ 같은 SF 소설을 쓰기까지 기울였을 노력을 생각하면 문득 경건한 마음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대중 소설을 쓰는 작가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처음부터 각 잡고 문학을 전공한 사람에 비해 다른 일을 하다가, 혹은 여전히 다른 일과 병행하며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가명으로 소설을 쓰는 형사 한 명을 알고, 기자 한 명을 알고, 판사 한 명을 안다.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대중 소설 작가가 되겠다고 선언한 선배도 안다. 한때는 학원의 잘 나가는 선생이었으나 이제는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존경하는 선배도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제 첫 장편 소설을 출간한 애송이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나 역시 엄청나게 다른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내 전공은 해운경영이었다. 동기들은 대부분 해운회사와 무역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소설가가 된 인간은 그 학과가 생기고 아마 내가 처음이 아닐까?

 

당신인생의이야기

 

우리는 모두 인생의 이야기를 쓴다


한국에서 대중 소설을 쓴다는 건 아주 무모한 일이다. 테드 창은 23살에 쓴 첫 단편 ‘바빌론의 탑’으로 네뷸러 상을 받았지만 한국의 대중 소설 작가들은 단편을 써 봐야 발표할 공간이 없다.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던 장르 전문 잡지가 무너지면서 최소한의 비빌 언덕도 사라진 것이다. 언간생신 상은 기대하지 않더라도 독자들에게 공개를 하고 전문가의 평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럴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나는 5년 동안 20편 정도의 단편을 썼다. 아주 운 좋게도 그 중 몇 편은 단편집을 통해, 혹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팔려나갔다. 적은 금액이긴 하지만 내 경우에는 정말로 운이 좋았다. 수많은 대중 소설 지망생들이 데뷔할 기회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것에 비하면…….


한국의 대중 소설 시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로맨스, 판타지, 무협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과 대여점 시장, 그리고 출판사를 통해 출간해 서점에 깔리는 종이책 시장. 어느 쪽이건 평균적으로 돈이 안 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그 중에서도 특출 난 작품이 나와서 작가가 유명세를 얻고 돈도 많이 버는 경우도 생기지만 그것이 모든 대중 소설 작가들의 혜택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즉, 그 옛날 『퇴마록』『드래곤 라자』가 쌍끌이를 하며 수많은 스타 작가와 인기 작품이 탄생했던 그 시절의 영광은 이미 사라져 버린 것이다. 최근에는 ‘웹소설’ 혹은 ‘e연재’ 형태의 새로운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대중 소설이 반짝 붐을 일이키고 있지만 내 생각에 이 현상은 몇 년 안에 거품이 빠지고 말 것이다. 영원할 것만 같던 그 옛날의 영화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처럼. (이것에 대해서는 언젠가 조금 더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문제점을 밝혀내자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국내의 대중 소설 시장이 독자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한 이유를 대자면 아마 연재 형식으로 한 달 이상은 줄줄이 늘어놓아야 할 터.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정작 그게 아니다. 뭐가 문제인지, 그래서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는 이미 작가 개개인이 잘 알고 있다. 다만 ‘언대’해서 ‘해결’하지 못할 뿐.


어쨌든, 나는 지난 연휴 동안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다시 처음부터 읽었고,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테드 창만큼 SF 소설을 잘 쓰는 국내 작가를 여럿 알고 있다. 그들의 작품도 읽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SF 출판계는 너무도 미약하다. 작가들은 그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걸고’ 작품을 쓰지만 팔리지 않는다. 그나마 팬덤이 형성된 SF는 고정 독자라도 있다. 열렬한 팬들이 있는 것이다. 미스터리, 스릴러 쪽으로 오면 그야말로 앞이 캄캄하다.

 

나는 내 주위의 동료 작가들이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들 역시 ‘인생을 걸고’ 매 작품을 완성하지만 ‘국내 작가의 작품’이라는 편견의 벽을 넘기가 무척 힘들다. 모든 장르 중에서도 가장 변방인 호러는 더 암울하다. 가끔 동료 작가들과 모이면 그런 이야기들을 한다. 앞으로 어떻게 쓸 것인가? 어떻게 써야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이야기는 늘 겉돌다가 결국 ‘열심히 해 보자’는 식으로 마무리되기 일쑤다. 작가 혼자만의 힘으로는 해결하기가 힘들다.


그런 뒤숭숭한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독 멀고도 고독하게 느껴진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테드 창이라는 작가를 내게 각인시켰을 뿐만 아니라 정말로 사랑하는 작품 리스트에 올린 몇 안 되는 책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단 한 명의 독자에게라도 내 작품이 그런 의미로 다가갈 수 있기를 빌어본다. 그러니까 나와, 그리고 동료들은 앞으로도 모든 인생을 걸고 작품을 써 나갈 테니 한 번쯤 더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기를 사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SF이건, 미스터리이건, 스릴러이건, 혹은 호러이건 우리는 모두 최선을 다해 인생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래서 기꺼이 이 험난한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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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 저/김상훈 역 | 행복한책읽기
휴고상, 네뷸러상, 스터전상, 사이드와이즈상, 로커스상, 아시모프상, 존 캠벨 Jr. 기념상, 성운상, SF매거진상 등을 수상한 2004년도 최대의 화제작인 이 작품집은 여간해서는 솔직한 평을 내놓지 않는 프로작가들에게서조차 "한 세대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중요한 작품집" "스위스 시계처럼 정밀하며, 도무지 그 깊이를 헤아리기 힘들만큼 심오한 걸작들의 향연" 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2003년 영미 출판계의 화제를 불러온 작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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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전건우

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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