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값, 그 올바른 셈이란 <방황하는 칼날>
뒷짐을 지고 선 무책임한 법과, 공권력의 무능함을 전면에 드러내는 영화
윤리적 영역에서 뒤틀려 버린 선과 악의 근원을 쫓으며 묻는다. 잔인한 사적 복수와 무능한 공적 영역에서의 법. 과연 어떤 것이 올바른 정의인가?
“사망할 것을 예상하고 폭행한 것으로 볼 수 없어 살인죄는 인정하지 않는다.” 의붓딸을 지속적으로 학대, 폭행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한 계모에게 내려진 판결이다. 이러한 판례들은 ‘윤리’는 법의 과제가 아니라고 지속적으로 공표한다. 이렇게 모든 것을 개인의 선택으로 환원하려는 비겁한 사회적 제도 속에 어쩌면 가장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들을 방치하고 있는 건 법이다.
영화 <방황하는 칼날>은 늘 뒷짐을 지고 선 무책임한 법과, 늘 주인공의 뒤만 쫓는 공권력의 무능함을 전면에 드러낸다. 수많은 여자 아이를 성폭행하고, 동영상을 찍어 팔고, 잔인하게 죽인 사람들이 단지 청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권력은 그들을 보호하려 든다. 평생 고통과 슬픔 속에 살아야 할 피해자 가족들의 지옥 같은 삶은 누구도 보호해주거나 갚아주지 않는다. <방황하는 칼날>은 피해자였던 상현이 순식간에 살인자가 되어 버리는 순간 속으로 관객들을 이끈다. 그리고 윤리적 영역에서 뒤틀려 버린 선과 악의 근원을 쫓으며 묻는다. 잔인한 사적 복수와 무능한 공적 영역에서의 법. 과연 어떤 것이 올바른 정의인가?
영화<방황하는 칼날> 스틸컷
이토록 황망한 사적 복수
잦은 야근이 강제되는 공장 노동자인 상현(정재영)은 홀로 중학생 딸을 키워야 한다. 일찍 들어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늘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헤쳐 나갈 방법은 없다. 사건이 있던 날 밤에도 상현은 야근 후 늦게 집으로 돌아온다. 며칠 뒤 경찰 억관(이성민)이 딸의 죽음을 알려온다. 딸은 성폭행 당한 후 변사체로 발견되었다고 알려준다. 생업을 포기하고 경찰서를 배회하던 상현에게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한 통의 문자가 날아든다. 범인 중 한 명의 집을 찾아간 상현은 딸이 성폭행 당하는 장면이 찍힌 동영상을 보게 된다. 마침 범인 중 한명과 마주치고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된다.
남은 범인을 죽이기 위해 상현은 대관령 펜션이라는 막연한 단서 하나만 들고 범인을 쫓는다. 알려진 것처럼 <방황하는 칼날>은 일본의 인기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처럼 이 영화는 게이고의 원작으로 일본에서 영화로 먼저 만들어진 후, 한국에서도 만들어지는 수순을 밟고 있다.
큰 줄거리의 차이는 없지만 원작과 일본 영화에 비해, 주인공 상현의 경제적 상황을 조금 더 어렵게 만들어 공장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그의 처지를 관객들이 조금 더 안타깝게 느끼게 한다. 등장인물의 층위와 비중이 달라지긴 했지만, 원작 소설과 원작 영화가 품고 있는 근본적인 질문은 바뀌지 않았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용서받는 건 과연 옳은 일인가. 선량한 피해자가 또 다른 가해자가 된다면 그에 대한 죄는 얼마나 물어야 하는가. 그리고 이런 질문들 속에 오직 자신의 자식들만 지키려는 무지한 부모들의 행태와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공권력의 수장들의 한심하지만, 현실 그대로인 행태들을 고스란히 녹여 넣는다. 그리고 버젓이 존재하지만 한 번도 사회적으로 품어보려고 하지 않는 ‘싱글 대디’의 지난한 삶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도 담겨 있다.
2010년 엄정화 주연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뒷심 강한 한국형 스릴러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이정호 감독이 4년 만에 선보인 <방황하는 칼날>은 기대했던 이상의 긴장감과 극적인 재미, 그리고 사회적 질문을 매끄럽게 품어낸다. 정재영과 이성민의 뛰어난 연기 속에 죄와 용서, 그리고 이 모든 사회적 함의의 대안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끝까지 품고 간다. 그리고 끝내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이 개차반이고 잔인한 세상 속에서 ‘선의’가 조금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믿어보려고 애쓴다. 하지만, 원작이 품고 있는 근원적인 질문과 대답을, 상현을 쫓는 형사들의 대사를 통해서 비교적 손쉽게 설명하려들 때 극적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조금 아쉽다. 범인을 알아내지 못한 상현이 경찰서를 배회하면서 억관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냥 이렇게 멍하니 앉아 있는 게, 정말 최선의 방법이에요?”
영화<방황하는 칼날> 스틸컷
스포일러일 수 있어 밝히진 않는 상현의 마지막 선택은 꽤나 황망하지만,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에 던졌던 이 질문은 바로 상현의 마지막 선택이 끝난 후 다시 시작된다. 과연 선량한 다수의 피해자들을 위한 최선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제 딸을 죽인 아이들은 우리 수진이를 얼마나 기억하고 살 까요?" 라는 상현의 말은 이 세상 모든 피해자 가족이 평생 품고 가는 한 맺힌 절규 그 자체이다.
억관은 상현에게 지켜보겠다고 약속한다. 선배 억관의 의지를 따라 두식(이주승)을 지켜볼 것을 다짐하는 신참 형사 현수(서준영)의 결연해 보이는 눈빛에 지금, 여기,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약속도 담겨 있다. 무심한 듯, 죄의식 없이 관객을 바라보는 두식의 눈빛과 달리 뒷짐 진 법의 판결과 상관없이 범죄자는 지켜보고, 피해자의 울분은 잊지 않겠다 다짐하는 현수의 눈빛을, 끝내 저버리지 않았던 민기(최상욱)의 양심을 믿어보자고 말한다. 하지만 억관이 눈여겨보는 또 다른 살인 청소년은 친구들과 농구를 하면서 ‘자신은 충분히 죗값’을 치렀다고 말한다. 또 다른 딜레마에 빠지게 만드는 발언이다. 죄의 값이 얼마이며, 그 값의 올바른 셈이 얼마여야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론에 이를 수 있는 걸까?
히가시노 게이고, 이번엔 통할까?
이미 너무 유명한 원작소설, 그만큼 유명한 원작영화가 있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세 차례나 한국에서 영화화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의 매력은 스릴러, 미스터리의 장르 속에 절절한 멜로 혹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매끄럽게 녹여내면서 재미와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해낸다는데 있다. 이번에 개봉하는 <방황하는 칼날>은 앞서 제작된 두 편의 영화가 ‘멜로’의 색채가 강했던 것에 비해, 사회적 공분과 공감을 끌어낼만한 소재를 가지고 있기에 두 영화의 아쉬운 흥행성적을 가뿐히 뛰어넘을 수 있으리라 보인다. 또한 한국과 놀랄 만큼 유사한 형태로 진화하는 일본 청소년 범죄의 현주소를 보고 싶다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소설을 차근차근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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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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