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텍스트 읽기의 즐거움
액자 안에 액자 안에 액자, 라는 식의 겹겹이 액자를 둘러싼 이야기의 전개
얼핏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가만히 글을 들여다보는 수동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굳이 롤랑 바르트까지 끼워 설명하지 않아도 텍스트를 통해 독자가 느끼는 정서적 쾌감은 생각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행동이다.
얼핏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가만히 글을 들여다보는 수동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굳이 롤랑 바르트까지 끼워 설명하지 않아도 텍스트를 통해 독자가 느끼는 정서적 쾌감은 생각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행동이다. 작가 혹은 텍스트에 담겨 있는 감정에 공감하면서 삶의 희로애락을 체험하는 순간 느끼는 쾌감은 개인의 정서와 안목이 맞닿아 감정의 변화로까지 발현된다. 당연하게도 더 적극적으로 상상하게 하고, 더 많은 감정의 변화를 유도하게 하는 것이 좋은 텍스트일 것이다. 이러한 텍스트 읽기의 즐거움은 단순히 독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숨겨진 회화나 건축, 당연하게도 연극이나 영화를 통해서 읽기의 즐거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귀찮아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텍스트는 친절해졌다. 아니면 텍스트가 친절해지면서부터 생각하기를 멈춘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서적 교감이나 안목 없이 기계적으로 재구성된 텍스트는 독자의 정서까지도 균일하게 짜깁기 한다. 텍스트의 친절함이 도식화되고, 독자들이 익숙해질 즈음 텍스트는 더 복잡해지기 보다는 조금 더 자극적으로 텍스트를 비꼬는 방식을 택해왔다. 기괴하고 충격적이지만, 정서적 동감을 얻어내지는 못하는 얕은 텍스트 사이에서 우리는 점점 더 적극적 상상과 개입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그 원초적 쾌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라는 영화가 짠, 하고 나타났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의 허무맹랑함을 바탕으로, 영화의 텍스트는 참으로 고전적인 텍스트 읽기의 즐거움으로 관객을 매혹한다.
이토록 소담스러운 만찬
아무 것도 안하고 화면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좋은 배우들이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연이어 등장하는 영화의 단점은 그 장점만큼이나 너무나 분명하다. 조금만 잘못되어도 먹을 것도 없이 그저 종류만 많아 배만 부른 결혼식 뷔페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최근 리들리 스콧 감독의 <카운슬러>가 그런 아쉬움을 남기는 영화였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아쉬움이 전혀 없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배우들을 활용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텍스트 그 자체의 놀라운 확장성과 텍스트 읽기의 적극적 판타지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웨스 앤더슨 감독은 그의 전작들처럼 역시 세련되고 스타일리시한 연출 안에 가장 효과적으로 배우들을 배치하는 재능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판타지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짧은 등장은 텍스트 읽기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는 측면에서 무척이나 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틸다 스윈튼은 모든 소동의 중심에 있는 마담 D. 역할을 위해 80대 노파의 분장을 하고 아주 짧고 강렬하게 등장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빌 머레이와 오웬 윌슨 역시 마찬가지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액자 안에 액자 안에 액자, 라는 식의 겹겹이 액자를 둘러싼 이야기로 전개된다. 현대의 한 소녀가 ‘위대한 작가’의 동상 앞에서 책을 펼치면, 1980년대 카메라 인터뷰를 하는 작가가 등장한다. 이때 그는 1960년대 주브로브카 공화국의 쇠락한 호텔에서 만난 노신사 이야기를 꺼낸다. 노신사가 다시 작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텍스트이다. 한마디로 설화에 가까운 구전 서사는 우리가 흔히 아는 설화처럼 허무맹랑하지만 역시 흥미진진하다.
영화의 이야기를 텍스트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27년 마담 D(틸다 스윈튼)가 살해된다. 유산을 탐내는 아들 드미트리(에이드리언 브로디)의 모함으로 이 호텔의 지배인이자 마담 D의 연인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스)가 살인범으로 지목된다. 구스타브는 누명을 벗기 위해 호텔 로비보이 제로(토리 레볼로리), 빵집 아가씨 아가사(세어셔 로넌)과 함께 모험담을 벌인다. 이렇게 겹겹이 벗겨낸 이야기 속에는 이민자 소년 제로가 낡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소유하기까지의 진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아기자기한 색감과 소품은 주브라스카 공화국이라는 비실존의 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동화적 성격을 강조하지만, 시대적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파시즘의 바람이 불던 역사적 시간을 끌어들인다. 강압적인 군인들의 모습으로 시대상을 담아낸다. 또한 배경이 되는 시대가 바뀔 때마다 화면 비율은 1.37:1, 1.85:1, 2.35:1로 변화하는데, 이것은 각각의 시대를 구별 짓지만 동시에 각 시대에 유행하던 영화 화면비이기도 하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비롯하여, 체크포인트 19 교도소, 제과점 등 화면의 철저한 좌우대칭과 수직, 수평을 맞추는 감각에,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배우들의 동선(달리기를 할 때조차 발맞춰 뛰고, 걸어갈 때의 줄 간격은 거의 강박처럼 보인다.)은 웨스 앤더슨 감독이 추구하는 스타일리시한 미학의 세계를 보여준다.
유산을 둘러싼 유쾌한 소동극 속에 역사적 풍자를 담고, 과거를 추억하는 향수에 홀로 남은 자의 쓸쓸한 마음까지 담아내는 이 흥미진진한 모험담은 보는 관객에 따라, 20세기 냉정시대의 유산으로 읽히거나 나치와 파시즘에 대한 풍자로 읽힐 수 있다. 그만큼 긴박한 시대의 공기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는 순수 의지로 일관된 한 남자와 로비 보이 사이의 끈끈한 우정과, 순수한 남자의 순수한 사랑의 이야기로 읽힐 수 있다. 그만큼 다양한 층위의 텍스트로 관객 개개인의 감성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극한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에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나치의 박해와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다 1942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자유의지와 맑은 정신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다”는 유서를 남겼던 인물이다. 자유의지와 맑은 정신이라는 츠바이크의 이야기를 앤더슨 감독은 스타일리시한 자기만의 스타일로 풀어낸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의 결은 랄프 파인스가 연기하는 구스타브를 통해 더욱 빛난다. 구스타브는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매력적인 남성이다. 탈옥을 하면서도 파나쉬(위풍당당이란 뜻) 향수를 뿌리고, 시도 때도 없이 시를 읊어대는 스타일리스트이다. 동시에 호텔을 찾아오는 수많은 중년 여성들과 성심으로 사랑을 나누고 연애하는 로맨티스트이고, 로비보이를 폭력으로 제압하는 군인에게는 맞서 싸울 줄 아는 휴머니스트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순수의 상징인 로비보이 제로가 있다.
제로 역할의 토니 레볼로리는 동그란 눈과 소년티를 벗지 않은 몸으로 순수 그 자체를 표현해 내면서, 영화를 반짝 반짝 빛나게 만든다. 비정한 시대도 낭만과 웃음으로 넘기면서 지켜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이제 고대 유물이 되었지만, 그 속에 남아있는 추억은 제로의 가슴 속에 소중하게 녹아들어 있다. 이미 관객이 울어야 할 포인트까지도 계산해 놓은 명민한 상업영화의 틈바구니에서 이토록 다채로운 이야기라니, 낡은 책장에서 툭 떨어진 재미있는 고전을 만난 것처럼 반갑고도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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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최재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웨스 앤더슨, 틸다 스윈튼, 랄프 파인스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