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복고와 고전 그 사이의 어딘가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맞이하여 재개봉하는 <로미오와 줄리엣>
개봉 당시 스타일리시하고 뛰어난 감각과 세련된 영상미로 신선한 충격을 준 이 작품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줄리엣보다 더 예쁜 로미오라는 절정의 미모로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바즈 루어만 감독은 고전을 새롭게 바라본 비주얼의 제왕이라는 수식어를 안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전, 혹은 클래식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작품. 둘째, 옛날의 서적이나 작품. 둘 중 어떤 경우가 되었건 ‘오래된’ 이라는 시간적 특성이 함께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오랫동안’이라는 연속성이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그 가치가 빛을 잃지 않은 예술작품, 지금 바로 꺼내 보아도 낡지 않은 의미를 품고 있는 작품을 우리는 기꺼이 ‘고전’이라고 부를 수 있다.
1996년 파격적인 신세대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그린 바즈 루어만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에 맞춰 재개봉되었다. 개봉 당시 스타일리시하고 뛰어난 감각과 세련된 영상미로 신선한 충격을 준 이 작품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줄리엣보다 더 예쁜 로미오라는 절정의 미모로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바즈 루어만 감독은 고전을 새롭게 바라본 비주얼의 제왕이라는 수식어를 안게 되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수족관을 사이에 두고 첫눈에 반하는 장면은 이미 수많은 영화에서 패러디 했을 만큼, 너무 유명해 일종의 클리셰가 될 지경이다. 그런데 원 그게 벌써 18년 전의 일이다. 그렇게 다시 돌아와 관객 앞에 선 <로미오와 줄리엣>에게 ‘클래식’이란 칭호를 붙여줄 수 있을까?
돌아와 이제 다시 복고가 된 로미오
이미 수많은 뮤지컬, 발레, 오페라, 영화 등을 통해 수많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1936년 조지 쿠커 감독이 첫 장면 영화를 만든 이후, 아주 많은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영화화되었다. 그 중에는 기괴한 성인물도 있었고, 로이드 카우프만 감독의 <트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원작을 비틀어버린 컬트 작품들도 있다. 또한 이루어질 수 없는 남녀의 사랑이라는 원작의 설정을 인용한 작품은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중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1968년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 버전과 1996년 바즈 루어만 감독 버전 두 편이다. 제피렐리 감독의 영화에서는 올리비아 핫세가 줄리엣의 원형을 보여줬다면, 루어만 감독의 영화에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절정의 아름다움을 지닌 로미오의 원형을 보여주었다.
제피렐리 감독이 셰익스피어의 대사와 배경, 분위기까지 고스란히 재현해 냈다면, 루어만 감독은 원작의 스토리와 대사는 그대로 두고 영화의 배경을 현대, 혹은 시대적 유추가 불가능해 보이는 현대로 옮겨와 감각적으로 재창조해 냈다. 1996년 당시 바즈 루어만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신선하고 혁신적인 작품이었다. 원작에서 오랜 앙숙인 캐플릿 가문과 몬테규 가문은 경쟁 기업으로 등장하고, 가족 구성원들의 인종에도 차이를 둬 가문간의 다툼을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젊은이들로 들끓는 해변과 스포츠카, 경쾌한 록음악 사이로 권총에 ‘검 Sword’이란 이름을 붙여 “검을 뽑아라!”는 원작 대사를 손상하지 않고도 총격적을 벌이는 등 재치 있는 설정과 감각적 연출이 돋보였다. 하지만 2014년, 그때의 그 감각은 유효한 걸까?
예상대로 1996년 당시에 느꼈던 ‘새로움’의 측면에서 보자면 바즈 루어만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충분히 새롭진 않다. 하지만, 낡거나 고루한 구석은 없다. 오히려 바즈 루어만 감독 특유의 스타일은 일정 부분 긍정적 의미에서의 고전의 반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얻었다. 1996년 <로미오와 줄리엣>은 스타일리시한 셰익스피어 영화로서, 2001년 마돈나의 노래가 흐르는 프랑스의 사교클럽이라는 아이디어로 만들어낸 <물랑 루즈>는 스타일이 살아있는 매력적인 뮤지컬 영화의 원형이 되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세기말의 혼란스러웠던 감수성과 21세기 마구 뒤섞어 버려도 크게 흠이 되지 않는 퓨전의 감수성을 바즈 루어만 감독은 너무나 잘 알고 명민하게 재현해내는 법도 알았다.
하지만 반짝이는 감수성이 늘 유효한 것은 아니었다. 고전을 새롭게 재해석해내는데 발군의 재능을 보였음에도 막상 고전적인 감수성으로 들어가는 순간, 바즈 루어만의 영화는 오래된 식당의 뻔한 요리 같았다. 2008년 니콜 키드만의 다소 지루했던 멜로 서사극 <오스트레일리아> 얘기다. 그리고 2013년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서 반짝이는 고전의 재탄생을 노려보았지만, 오히려 갈피를 못 잡은 3D는 그냥 반짝거리는 미러볼처럼 보였다. 그런 점에서 1996년 바즈 루어만이 셰익스피어라는 고전의 무게를 가뿐히 딛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려는 용기를 보였던 그 시절을 디카프리오가 아니라 바즈 루어만의 리즈 시절이라 칭하고 싶다.
하지만, 고전의 반열에 들기에 본질보다는 감각이 앞서긴 하지만, 아마 1990년대 시절을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막연히 바라본 젊은 세대들에게는 컬러풀한 의상과 키치적인 세트 등이 어우러져 <로미오와 줄리엣>을 또 다른 복고의 감수성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를 일이다. 테마곡인 데즈레의 ‘키싱 유(Kissing you)’를 비롯해 라디오헤드의 ‘토크 쇼 호스트(Talk Show Host)’ 워너다이스의 ‘유 앤드 미 송(You and me song)’, 카디건스의 ‘러브풀(Lovefool)’ 등 당시 트렌디한 팝 음악을 모조리 담아낸 OST는 이미 ‘고전’이 된 것만은 확실하다.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맞이하여, 연극계에서 셰익스피어 문화축전을 공표한 가운데 연극 <한여름 밤의 꿈>, <템페스트>, <리어왕> 뿐만 아니라 비교적 덜 알려진 <심벨린>을 비롯하여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오텔로> 등 서울 전역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1년 내내 채워질 예정이다. 그러니 셰익스피어 애호가가 아니라도 한번쯤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를 현 시대의 예술가들이 어떻게 현재에 재현해내는지 호기심을 가져 봐도 좋은 한해가 될 것 같다. 물론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바즈 루어만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포문을 열어도 좋겠고, 더 풍성하고 깊이 있는 고전의 감각을 느껴보고 싶다면 그 자신이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이면서 영화감독까지 겸한 프랑코 제피렐리의 셰익스피어 고전 영화를 추천한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 1967년 <말괄량이 길들이기>, 너무나 유명한 올리비아 핫세의 1968년 <로미오와 줄리엣>, 1990년 멜 깁슨의 <햄릿>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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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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