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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따라잡기

셰익스피어를 다룬 책을 통해 살펴본 셰익스피어의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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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를 다룬 책들의 적잖은 숫자는 여전히 높은 그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는 2000년대 나온 한국어판을 중심으로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겠다.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인도를 잃어버리더라도 셰익스피어를 잃고 싶지 않다.”- 토머스 칼라일)는 말은 터무니없는 망발이다. 아무리 칼라일이 영웅주의 사관에 물이 들었다 한들, 우리의 건전한 상식을 거스르는 몰염치한 언사다. 셰익스피어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한 나라에 비기냐 말이다. 견주는 것 자체부터 불손하다. 식민주의자의 뻔뻔스러움과 허세에 다름 아니다. 한동안 이런 망발에 기가 죽었던 우리네 처지가 딱하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셰익스피어의 존재와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긴 어렵다. 그는 분명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근대 서구 문명, 나아가 현대 세계 문화의 초석을 다진 인물 가운데 하나다. 셰익스피어의 명성은 그의 이름과 작품의 잦은 노출을 통해 쉽게 확인된다. 셰익스피어를 다룬 책들을 살펴보면서 함께 읽은 다른 두 권의 책에서 그의 이름과 그가 남긴 글월을 마주칠 정도다.

피터 F. 오스왈드의 『글렌 굴드, 피아니즘의 황홀경』(한경심 옮김, 을유문화사, 2005)에는 셰익스피어의 이름이 서너 번 언급된다. 김세중 외 지음의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한겨레신문사, 2004)에선 “간결은 지혜의 정신”이라는 셰익스피어의 경구를 인용한다. 또한 셰익스피어를 다룬 책들의 적잖은 숫자는 여전히 높은 그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는 2000년대 나온 한국어판을 중심으로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겠다.

1. 다시 읽기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 박홍규의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청어람미디어, 2005)는 이 글의 ‘키잡이’다. 나는 셰익스피어를 싫어하지 않지만 썩 좋아하지도 않았다. 다른 나라의 탁월한 문학가의 한 사람으로 그를 존중해왔다. 그런 내게 이 책은 그의 실체를 제대로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필자는 셰익스피어를 제국주의자로 보는 박홍규 교수의 관점에 동의할 뿐더러 박 교수의 몇 가지 견해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우선,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그렇다. “어린 시절에 읽은 셰익스피어에 큰 감동을 받았다는 기억은 없고, 한마디로 무서웠다는 느낌밖에 남아 있지 않다.”

내가 셰익스피어를 읽은 느낌은 딱딱함이었다. 여윳돈이 생긴데다 대학 입학을 자축하는 뜻으로 월부 책장사에게 구입한 10권짜리 『셰익스피어전집』(성창출판사)은 그의 대표작들만 가까스로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무료했다. 여기에는 전집의 세로짜기 2단 조판과 딱딱한 번역 문투 탓도 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괴테의 「파우스트」, 고리키의 「어머니」,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 스탕달의 「적과 흑」,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같은 세계 명작에 비하면 정말이지 재미가 없었다. 하다못해 발자크의 지루한 장편소설 「사촌 베트」가 주는 최후의 반전도 느끼기 어려웠다.

“대학에 들어 와서 마르크스가 셰익스피어를 애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다시 그 전집을 들춰보았던 유치한 추억”은 필자에게도 있다. ‘고백’이라는 이름으로 전하는 딸들의 앙케이트 설문 응답에서 마르크스는 에스킬로스, 괴테와 더불어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는다.

셰익스피어를 애독한 마르크스는 곧잘 셰익스피어의 문구를 인용하였다. 『경제학-철학 수고』(김태경 옮김, 이론과실천, 1987)의 세 번째 초고 가운데 ‘화폐’를 다룬 부분에서 「아테네의 티몬」 제4막 제3장의 내용을 길게 인용한다.

“(금덩이를 유심히 바라보면서) 그런데 이게 이 정도 있으면 검은 색도 희게, 추한 것도 아름답게, 그릇된 것도 올바르게, 천한 것도 귀하게, 늙은 것도 젊게, 비겁한 자도 용감하게 바꿀 수가 있다. (…) 이 누런 놈은 신앙에 있어서도 사람을 이합(離合)케 하고, 저주받은 자에게도 축복을 해 주며, 문둥병까지도 숭앙케 해요. 도둑에게도 고관 벼슬을 훁어, 작위나 권위나 영예를 원로원 의원들 못지않게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과부를 개가시키는 것도 이놈이지요. 문둥병자나 위궤양 환자가 보아도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여자라도 이 향유를 바르면, 사월의 꽃처럼 피어납니다.”(성창출판사의 『셰익스피어전집 2』에서)

이어 마르크스는 셰익스피어가 화폐의 속성 두 가지를 부각시켰다고 지적한다. “1. 화폐는 가시적인 신이며, 모든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속성들을 정반대의 것으로 변환시키고 사물들을 전반적으로 뒤집고 전도시킨다. 화폐는 불가능한 것들을 서로 밀접하게 결합시킨다. 2. 화폐는 일반적인 창녀이며, 인간과 서민들의 일반적인 뚜장이다.” 따라서 “화폐는 인류의 외화된 능력”이라고 간추린다.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 박홍규의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에서 박홍규 교수는 “셰익스피어를 소위 ‘대영 제국주의’의 원조로 보고 그를 비판”한다. 박 교수의 셰익스피어 주요 작품 해석은 국제 관계와 세계사적 관점의 제국주의, 봉건사회에서 절대주의 국가로의 이행, 그리고 공동사회에서 이익사회로의 전환, 이 세 가지 측면에 입각한다.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김창호 옮김, 민음사, 1996)는 영국의 좌파 영문학자 테리 이글턴의 셰익스피어 작품론이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을 주로 다뤘으나, 희극?비극?역사극 따위의 통상적인 장르 구분과 작품 창작의 시간적 연관성은 무시했다. 언어?욕망?법?화폐?육체 같은 것을 매개로 셰익스피어의 작품 세계를 탐구한다.

테리 이글턴은 이 책이 방금 나열한 주제들을 탐구하는 순수한 역사적 연구는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텍스트의 글자 속에서 관련된 역사를 찾아내고자 하는 정치 기호학적(political semiotics) 시도”라는 것이다. 또 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심한 시대착오성이 내재한다고 덧붙인다. “확증을 잡을 수는 없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셰익스피어가 헤겔,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데리다 들의 저작에 친숙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책의 옮긴이 후기는 셰익스피어 전래의 역사를 전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될 때, 셰익스피어는 ‘영국 사상계에 가장 위대한 인물’(1906년)로서 대사상가이면서, ‘이상계의 선도자’(1908년)로 알려졌다.” 셰익스피어 국내 수용의 역사가 어언 1세기에 이른 셈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번역은 1923년 「햄릿」이 완역되면서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옮긴이 후기’가 전하는 초창기 사회주의 국가들에서의 셰익스피어 부흥 열기도 이채롭다. 다음은 ‘후기’에 인용된 「싸벳트 동맹의 사옹연구에 대하야」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1933년 10월 13일자 기사다.

“혁명 직후 국가 인쇄국에서는 쉐익스피어 극의 보급판을 간행하야 일반 노동자 농민에게까지 보급하엿다. 세계의 위대한 시인 사옹의 이름은 이 해에 비로서 러시아 노동자 농민에게 알리엇다 하니 사옹부흥(沙翁復興)이라고 할려면 혁명직후를 부흥이라고 볼 수 있다. (중략) 연출방면으로 보면 모스크바에서만 하여도 여러 가지 연출”되었다.

롤프 브라이텐슈타인의 『강한 여성을 위한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김소연 옮김, 좋은책, 2004)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여자 등장인물에 주목한다. 지은이는 “그림자에 가려진 셰익스피어의 여성들을 밝은 곳으로 끌어”내겠다고 선언한다. 이에 우리말 옮긴이는 “이 책은 셰익스피어에 정통한 한 남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강한 여자들의 이야기”라고 화답한다.

아울러 “이 책을 읽는 재미는 식상한 해설을 뛰어넘어 우리의 머릿속에 이미 각인된 그림을 새로운 각도에서 보여주는 데 있다”고 덧붙인다. 브라이텐슈타인은 셰익스피어는 문학증시의 블루칩이라는 폴란드 태생의 유대계 독일 비평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견해를 인용하기도 한다. 숱한 셰익스피어 해석과 논의에서 “이 책만큼 여자 주인공들을 현대적인 시각에서 재조명하고 전면에 등장시켜 집중적으로 소개한 책은 드물다”는 것이 옮긴이의 평가다.

브라이텐슈타인은 저널리스트이자 외교관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어권에 사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무튼 유럽의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는 그의 모국에 국한하진 않는 듯싶다. 셰익스피어 관련 번역서를 보면, 영어권 외에 독일어권의 관심이 눈에 띈다. 이런 점은 ‘한 권으로 읽기’에서도 확인된다.

2. 한 권으로 읽기

『한 권으로 읽는 셰익스피어』(김희상 옮김, 작가정신, 2005)에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현대 감각에 맞게 풀어쓴 미하엘 쾰마이어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신화 작가다. 이 책에는 「리어왕」을 포함한 11작품이 실려 있는데 쾰마이어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주요 등장인물의 면면에 주목한다.

“햄릿이 있는가 하면, 티몬이 있고, 줄리엣을 만나는가 하면, 「끝이 좋으면 다 좋아」의 헬레나와 마주치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맥베스, 이아고, 레온테스, 보텀, 브루투스 등등 우리 안에는 참으로 다양한 성격들이 숨어 있다.” 쾰마이어는 “셰익스피어는 우리를 새롭게 창조했다”는 미국의 비평가 해롤드 블룸의 견해를 인용한 다음, 이런 결론을 내린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을 새롭게 창조함으로써 그 결과 문학을 새롭게 썼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을 때의 딱딱한 느낌은 희곡 특유의 운문체와도 관련이 있다. 때문에 이를 산문으로 풀어쓰는 작업이 꾸준히 있어왔다. 찰스와 메리 램 남매는 이 분야의 원조다. 1806년 12월 출간된 램 남매의 『셰익스피어 이야기』는 영어로 된 최초의 셰익스피어 희곡 요약판이기도 하다. 램 남매의 『셰익스피어 이야기』의 한국어판은 여러 종이 있다.

영문학자 실밴 바넷의 ‘해설’이 담긴 『한 권으로 읽는 셰익스피어』(김기찬 옮김, 현대지성사, 1998)는 ‘머리말’에서 “젊은 독자를 위한 셰익스피어 연구 입문서”를 표방한다. 아울러 이 요약판의 간추린 방식과 활용 방법을 설명한다.

램 남매는 셰익스피어의 “말들을 하나의 연결된 이야기로 엮으려고 별다른 내용을 첨가할 때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셰익스피어가 썼던 아름다운 영어의 어취를 가능한 한 방해하지 않는 낱맡을 택했다”다고 한다. 비극이 바탕이 된 이야기에는 셰익스피어의 원문이 대화뿐만 아니라 서술문에도 자주 나온다.

반면, 희극을 토대로 하는 이야기에선 셰익스피어의 희곡 대사를 서술문 형태로 바꾸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런 소망이 이어진다. “다행히도 이 요약된 이야기들이 젊은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게 된다면, 어서 나이 먹어 이 희곡의 원문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그들에게 일어나게 되길 바란다.”

간추리긴 했어도 「폭풍」에서 「페리클레스」에 이르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20편을 한 권에 담기에는 지면이 빡빡하다. 『한 권으로 읽는 셰익스피어』에는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 요약’ 부록으로 실려 있어 그런 느낌이 짙다.

‘창비아동문고’로 1981년에 초판이 나온 셰익스피어 이야기는 두 권으로 나누었다. 『베니스 상인』(현기영 옮김)을 표제로 하는 첫 권은 「폭풍」「한여름밤의 꿈」「겨울 이야기」「헛소동」「뜻대로 하세요」「베로나의 두 신사」「베니스의 상인」「심벌린」「리어 왕」「멕베스」순으로, 『로미오와 줄리엣』(김태언 옮김)이 표제인 둘째 권은 「끝이 좋으면 모두 좋다」「말괄량이 길들이기」「실수의 희극」「되받아치기」「열두 번째 밤」「아테네의 티몬」「로미오와 줄리엣」「햄릿」「오셀로」「페리클레스」순으로 돼 있다.

그런데 이런 순서가 『한 권으로 읽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배열과 일치하는 걸 감안할 때, 번역 저본의 차례 또한 이와 같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창비판 셰익스피어 이야기의 ‘역자 후기’에는 귀담아 들을 내용이 있다. 소설가 현기영은 셰익스피어가 한결같이 황후장상이나 귀족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을 아쉬?한다.

“수백 년 전 봉건 계급사회 속에 살다 간 그에게 무리하게 근대 개념인 시민사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가 진정한 의미의 천재라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밑바닥 인생들에게도 잠깐일망정 눈을 돌렸어야 옳지 않을까요?”

현기영은 램 남매의 애틋한 사연을 들려주기도 한다. 찰스 램은 『엘리아 수필집』(김기철 옮김, 아이필드, 2003)으로도 문명을 떨친 영국의 산문가다. 찰스보다 11살 많은 메리 램 또한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매력 있는 여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정신병을 앓던 메리는 어느 날 발작 끝에 어머니를 칼로 찔렀다. 이를 계기로 찰스는 결혼을 포기하고 누이를 돌보게 된다. 동생의 간호로 누이는 건강을 회복하고, 남매는 문학적 동반자로 지낸다.

『셰익스피어 이야기』를 집필할 때 ‘비극’은 찰스 램 자신이 직접 하고 ‘희극’은 누이에게 맡긴 것도 아마 이 비극적인 누이의 건강을 염려하는 찰스 램의 자상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요?”

김태언 교수는 “이른바 ‘아동물’의 기준에 맞추어 이 원전의 내용과 표현을 더 단순하게 고친다면 번역의 목적과도 어긋나는 일일뿐더러, 다소 길고 복잡한 글이라 하더라도 찬찬히 읽어 나간다면 우리 어린이들도 반드시 이해하고 즐길 수 있으리라고 믿는 마음에서 되도록 원전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창비아동문고’의 셰익스피어 이야기는 스테디셀러다. 1990년 개정판을 찍었고, 요즘은 2004년 12월 펴낸 개정 2판이 팔리고 있다.

박성환 교수가 엮은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문장들』(문학동네, 2002)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아포리즘과 만난다. 박 교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39편과 시 3편, 그리고 소네트 154편에서 명구를 추렸다. 각 구의 주제에 따라 가나다순으로 나열했고, 우리말 해석에다 원문을 병기했다. 명문장 대사와 시구가 나오는 장면과 상황 설명도 덧붙였다.

‘사랑’을 주제로 한 것이 28개로 가장 많다. ‘진정한 사랑’으로 분류한 “사랑이 그 본질적인 요소를 떠난 딴 생각과 섞이게 되면 그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까지 합하면 29개에 이른다. 인용한 문장의 길이는 석 줄 안팎이 대부분이나 제법 긴 것들도 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가 포함된 햄릿의 제3 독백은 그 중 하나다.

역시 햄릿의 대사인 “의지가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이다.”나 “비겁한 자는 죽기 전에 여러 번 죽지만, 용기 있는 자는 죽음을 한 번 밖에 경험하지 않소.”라는 카이사르의 대사는 널리 알려진 셰익스피어의 문구다. 그런데 이밖에도 관용구로 쓰이는 문장들 가운데 셰익스피어 희곡을 전거로 하는 것이 있었다.

“돈을 빌리지도 말고 빌려주지도 마라.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것은 돈 그 자체와 친구 둘 다를 잃는 수가 많다.”
“인간들의 나쁜 행위는 동판에 새겨진 글자같이 오래 살아 있지만, 선행은 물에다 쓴 글자와 같습니다.”
“식사할 때나 놀때 또는 활기를 불어넣는 휴식을 취할 때 방해를 받으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미치는 것입니다.”


내게 인상적인 구절은 이런 것들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현명하다고 생각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자기가 어리석다는 것을 안다.”
“자기 행실에 대한 비난을 듣고 그것을 고칠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슬픔이라도, 그것을 비웃고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리 슬픈 것이 못 된다.”
“자기만을 위하여 자라는 것은 성장을 남용하는 것입니다.”
“높은 사람에게서 그 높은 지위가 떨어져나갈 때는 영혼이 육신을 떠날 때보다 더 요란스럽다.”


이 글의 도입부에 인용한 “간결은 지혜의 정신”은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문장들』에도 들어있다. 「햄릿」에 나오는 말이다. “간결은 지혜의 생명, 장황함은 그것의 수족이며 화려한 수식에 지나지 않으니,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Since brevity is the soul of wit, And tediousness the limbs and outward flourishes, I will be brief.)”

3. 그의 시대와 삶

셰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영국을 다스린 시대를 살았다. 영국의 문학평론가 프랭크 커모드는 『셰익스피어의 시대』(한은경 옮김, 을유문화사, 2005)에서 엘리자베스 시대(제임스 1세 초까지 망라하여 튜더-제임스 왕조 시대라고도 한다)에 “얼마나 많은 연극 작품이 집필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면서도 그 시기에 관해 많이 아는 연구자의 견해를 빌려 3,000이라는 숫자에 주목한다.

“당대 최고의 권위자인 헌터(G.K. Hunter)는 1558년부터 1642년까지 약 3,000개의 작품이 있었고 그 중 650개가 전해진다고 말한다.” 3,000이라는 숫자가 신빙성이 있다면, 당시 한 해 약 36개 정도의 연극 작품이 만들어진 걸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시기에 책은 사람들에게 친근한 대상이 되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가히 예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꽤 정확한 기록에 의하면 1558년부터 1579년까지 영국 런던에서 2,760종의 책이 출판되었다는 것이다. 존 가이라는 연구자는 당시의 평균 인쇄 부수(1,250부)를 감안해 이것은 “45년간 425만의 인구 일인당 평균 두 권의 책이었다”고 셈한다.

이뿐만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시가 다양하게 발전했다. 영어권 시의 역사에서 전대미문의 시기였다.” 다소 의외의 지면에서 셰익스피어 시대의 문학적 저변과 문화적 활력을 접한 바도 있다. 게오르크 브란데스가 「셰익스피어 연구」에서 서술한 셰익스피어 시대의 생산력 팽창이 그것인데, 나는 이것을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에서 읽었다.

“영어가 수억의 인간에게 읽히고 있는 오늘날 영국에는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시인밖에 없다. 그런데 옛날 영국에는 300명에 가까운 서정시인과 희곡시인이 있었던 것이다. 그 시인들은 왕성한 창작욕으로 현대의 덴마크의 독서계보다도 크지 않은 독서계를 위해 펜을 휘둘렀다. 왜냐하면 인구 5백만 가운데 문맹은 겨우 4명뿐이었기 때문이다. 시를 읽는 것은 현대독일의 숙녀가 피아노를 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 영국남자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풍속의 역사Ⅰ- 풍속과 사회』(까치, 1988)에서 재인용)

프랑수아 라로크의 『셰익스피어- 비극의 연금술사』(이종인 옮김, 시공사, 1996)는 셰익스피어 입문서로 제격이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의 일원답게 다채로운 그림이 실려 있어 왕초보에겐 더욱 그럴 듯싶다. 라로크 또한 셰익스피어를 개천에서 태어난 용으로 보진 않는다. “셰익스피어는 문학의 불모지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인물은 아니다. 16세기에 이르러 연극은 하나의 제도가 되었고, 교양 있는 젊은이들이 연극을 필생의 업으로 여기고 진지하게 도전하고 나섰다.”

라로크는 셰익스피어의 독보적인 연금술의 결정적 요인으로 독서와 각색을 꼽는다. 그는 셰익스피어가 사극을 쓰기 위해 “동시대의 역사가 라파엘 홀린셰드의 역사책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연대기』를 탐독했고, 이 책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셰익스피어는 ‘각색의 천재’였다.

“몇 가지 예외가 있지만, 셰익스피어는 극중 인물이나 플롯을 스스로 창조한 경우가 없다. 그는 민간전승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주제를 취해 왔다. 그러나 무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빌려 온 줄거리를 크게 손질하기도 했고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내용을 바꾸기도 했다. 이러한 창작태도 덕분에 당시의 관심 있는 문제들과 화젯거리가 되는 주제들, 말하자면 영국 역사, 낭만적인 음모, 복수, 광기, 마술 등을 용이하게 다룰 수가 있었던 것쳀다. 그의 작품이 대부분 커다란 성공을 거둔 데에는 이러한 각색재능이 큰 몫을 했다.”

이런 측면은 『겨울 이야기』(이윤기? 이다희 옮김, 달궁, 2005)의 역자 해설에서도 확인된다. 소설가 겸 번역가인 이윤기는 「겨울 이야기」가 셰익스피어의 순수 창작물이 아니라 당시 인기 작가였던 로버트 그린의 「판도스토」로부터 줄거리를 빌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운을 뗀다.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판도스토」의 내용을 그대로 빌려 연극의 대본으로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신화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던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의도에 따라 상당 부분 손질했을 수도 있고, 원작과는 다른 결말을 선택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겨울 이야기」는 「판도스토」의 줄거리를 따르면서도 사건 발생 무대는 180도로 바꾸어 놓고 있다. 말하자면 시칠리아와 보헤미아가 뒤바뀌어 있는 것이다.”

필자는 셰익스피어의 성공 비결에 하나 더, 운을 꼽고 싶다. 셰익스피어는 당시 잘 나가던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가 술집에서 싸움을 벌이다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자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펼치는 기회를 잡는다. 이를 두고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지혜와 운이 서로 맞서 싸울 때 지혜가 있는 힘을 다한다면, 어떤 운도 그것을 꺾을 수 없습니다.”(「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4. 깊이 읽기와 응용하기

마크 호넌의 『셰익스피어 평전』(김정환 옮김, 북폴리오, 2003)은 한국어판이 600여 쪽에 이르는 묵직한 대작이다. 전기 작가이자 리즈 대학교 영문학부 명예교수인 호넌은 “현재 셰익스피어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꼼꼼한 이야기 틀로 보여주고, 또 그의 글을 그의 생애와 좀 연관시켜 설명하는 것”을 이 책의 목표로 설정한다.

“셰익스피어의 정치적 역할, 성적 관계 혹은 다채로운 음모 등을 상상해 보는 그런 전기류와”는 선을 긋는다. 호넌은 “사회적 맥락”에 주목한다. “이 책에 담긴 ‘새로운’ 내용 중 가장 중심적인 것은 셰익스피어의 생각과 존재의 복합적인 진화 과정이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 호넌은 셰익스피어 전기를 쓰는 10년 동안 셰익스피어의 생애를 알려 주는 많은 자료들을 섭렵했다.

호넌이 “튜더 왕조 시대 스트랫퍼드가 다소 조용하고 안정된 도시 생활을 400년 동안이나 누리다가 갑작스런 변화에 휩싸이는 대목에서 출발”하는 것은 셰익스피어를 다룬 문헌 연구와 셰익스피어의 생애 사이의 연관성 때문이다. 셰익스피어가 몸담았던 곳의 흥망성쇠 속에서 발전해 나간 모습을 셰익스피어 자신이 기록한 사실들과 연계하려고 노력한 점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다.

또 호넌은 셰익스피어의 후원자였던 “사우샘프턴의 동료간 동성애 세계, 소네트 유행 속에 표현된 어떤 태도를 개괄하려 했고, 셰익스피어 소네트들이 사우샘프턴에 대해 시사하는 바를 밝히고자 했다.” 호넌은 “오늘날 알려진 셰익스피어 작품 집필 과정을 시사하는 데 희곡들을 ‘사용’”하기도 했다. 별도의 ‘문학비평’ 섹션을 마련하진 않았지만, “해석은 감행했다.”

권말의 「셰익스피어 평전 전통과 생애 자료들에 대하여」에서 호넌은 셰익스피어 전기 출판의 역사 300년을 일별한다. 셰익스피어 평전 작업은 여전히 수지맞는 장사라는 게 호넌의 결론이다. “책들이 경쟁 중이지만, 셰익스피어 전기는 결함 있는, 협동 프로젝트로서, 1709년 (니콜라스) 로의 40쪽으로 출발한 전통 속에 유용한 책들이 겸손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장래가 밝은 프로젝트로 볼 수 있다.”

번역자 김정환 시인의 평가는 이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마크 호넌이 쓴 『셰익스피어 평전』은 과거의 ‘올바른’(헛소리나 소문 혹은 전설을 엄격하게 배제한) 평전 전통을 총괄하는 동시에 최근 자료들을 두루 관통하는데다 아날 역사 학파의 ‘총체 맥락’ 방식을 구사, 셰익스피어에게 ‘생애라는 총체 맥락’을 부여하고 그렇게 셰익스피어를 우리에게 매우 역사적인 동시에 매우 낯익은 인물로 그려”낸다.

책값이 만만치 않긴 해도 기자 출신 전기 작가 앤터니 홀든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그림과 자료로 복원한 셰익스피어의 삶과 예술』(장경렬 옮김, 푸른숲, 2005)을 여러분께 권하고 싶다. 이 책의 첫인상은 부유한 가정집 응접실을 고상하게 꾸며 주는 ‘티 테이블 북(tea table book)’이려니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이 책은 백 쪽을 단숨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흡인력이 뛰어나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장경렬 교수는 홀든의 “간결하고 설득력 있는 어조”를 높이 사고 있지만, 번역 저본의 오류까지 바로 잡은 장 교수의 깔끔한 번역이 가독성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한다. 본문에 배치한 셰익스피어 작품을 소재로 그린 명화 백여 점은 그것 자체가 대단한 눈요깃거리다.

셰익스피어 전기 연구가 최근 쓸데없는 논쟁의 수렁에 깊이 빠져 있다고 보는 홀든은 이 책의 집필 동기 가운데 하나로 “자신이 독자가 되어 이 책을 읽어보고자 하는 것”을 든다. 홀든은 셰익스피어의 시와 희곡의 행간에서 그에 대한 전기적 암시를 찾는 일에 중도적 입장을 취한다.

이러한 태도는 홀든의 주된 관심사인 셰익스피어의 생애에서 공백으로 남아 있는 청소년기 10년을 유추하는데 효과를 발휘한다. 홀든은 「겨울 이야기」 3막 3장에 나오는 지혜로운 양치기의 말에서 그 단서를 찾는다.

“열 살에서 스물세 살까지의 세월이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면 그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계속 잠이나 들어 있었다면 좋았을 걸. 그 나이에 한 일이라고는 여자를 유혹해 아이나 배게 하는 일, 윗사람들을 골탕먹이는 일, 도둑질, 싸움질밖에 없으니.”

머리말에서 홀든은 프랭크 커모드 경과 동시에 셰익스피어에 대한 책을 쓴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커모드 경과 필자가 공동으로 사랑하는 셰익스피어에 관해 같은 시기에 글을 쓰는 과정에서 함께 나눴던 즐거움은 대단한 것이었다.” 머리말에는 셰익스피어 연구자들의 다양한 견해가 인용되기도 한다. 해럴드 블룸의 의견은 그 첫머리에 놓인다.

그런데 블룸의 『셰익스피어- 인간의 발명(Shakespeare: The Invention of the Human)』은 한국어판이 안 나왔다. 현재로선 『교양인의 책읽기』(최용훈 옮김, 해바라기, 2004)에 실려 있는 조각글들을 통해 셰익스피어를 보는 블룸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그의 자서전 『사로잡힌 영혼』(서유정 옮김, 빗살무늬, 2002)의 한 대목에서 셰익스피어와의 만남을 전한다.

21세기의 독자, 특히 젊은 독자들은 영화라는 우회로를 통해 셰익스피어와 먼저 만난다. “셰익스피어라는 목적지로 가기 위한 지도로서 기획”된 『필름 셰익스피어』(장원재 외 지음, 씨네21, 2005)의 필자들은 “쟁쟁한 감독들의 셰익스피어 원작 영화에서 셰익스피어를 현대적으로 수용하는 수많은 예를 들어 보인다.”

조지 와인버그와 다이앤 로우의 『셰익스피어에게 묻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알아야 할 6가지』(김재필 옮김, 한국언론자료간행회, 2005)에서 셰익스피어는 임상 심리치료사 역을 맡는다. 저자들이 말하는 이 책의 목적은 “셰익스피어가 아직도 가정생활이나 일과 관련된 문제들에서 우리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저자들은 “셰익스피어가 매우 위대한 심리학자였다”고 진단한다. 이 책의 분석 대상은 자신들이 맞닥뜨린 삶의 도전의 여부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갈린 셰익스피어가 생명을 불어넣은 인물들이다. 책은 인생의 도전을 여섯 단계로 나눈다. 심리발달의 “여섯 단계는 바로 셰익스피어의 ‘의지력’의 지혜를 통해 인간에게 필요한 자질을 완숙히 갖추어 가는 과정이다.” 이 책은 1999년 같은 곳에서 『셰익스피어가 가르쳐주는 세상 사는 지혜』라는 제목으로 나와 꾸준히 쇄를 거듭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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