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차세대 SMP의 이상향, 에스파의 Savage

에스파(aespa) <Savage>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에스파의 <Savage>는 미디어와 함께 삼위일체를 이루며 가장 이상적인 SMP를 완성했다. (2021.11.11)


SM 엔터테인먼트의 역사는 실재하는 우주의 변천사와 평행을 달린다. 수많은 스타들이 탄생하고 소멸했지만 그들의 파편은 지금까지도 가요계를 수놓고 있다. 허공에 흩뿌려진 유산은 팽창의 자양분이 되어 2020년 마침내 일원화된 신세계 SMCU(SM Culture Universe)를 창조했다. 그 과정에서 선배들의 에너지를 흡수하며 태어난 거대 세계관의 주인공이 바로 걸그룹 에스파다.

팀 이름부터 방향성은 명확했다. 인간 멤버들이 자신의 데이터에 기반한 아바타 '아이(æ)'를 만나 경험하게 될 메타버스 스토리. 미래 기술과 음악의 접목이란 사실만으로 등장 전부터 이목이 쏠렸다. 낯익은 이미지로 점철된 데뷔곡 'Black mamba'가 그 기대에 미치진 못했으나 올해 손목을 꺾는 디귿 춤과 쫀득한 발음을 곁들인 'Next level'이 인기를 끌며 에스파는 단숨에 대세로 우뚝 섰다. 산업 간의 융합으로 호기심을 자아내긴 했지만 가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힌 건 결국 음악이었다.

유행의 본질을 파악하고 돌아온 이들의 음조는 더욱 맹렬해졌다. 강렬한 비트와 찢어 늘인 신시사이저 그리고 극적인 고음 애드리브까지, 'Savage'의 기틀은 보아와 동방신기가 프로듀서 유영진과 함께 주도했던 2000년대 중반 SMP다. 물론 그 시절에만 충실한 것은 아니다. 후렴구는 엔시티 127의 대표곡 'Cherry bomb'처럼 짧은 호흡으로 받아치며 중독성을 배가하고, 브릿지는 엑소의 알앤비 발라드 'What is love'를 들여와 보컬 기량을 발산한다. 더불어 둔탁한 타격의 틈엔 영국 일렉트로닉 레이블 PC 뮤직의 시그니처 샘플들을 분절시켜 입체감을 높인다. 기획사의 노하우를 집약하고 하이퍼 팝까지 이식한 K팝 트랙은 혁신적 관점으로 시대를 매끈하게 앞서간다.

뒤이은 'I'll make you cry'까지 야성적인 자세로 일관한 데 비해 후반부는 톤을 낮추며 캐주얼한 면모를 드러낸다. 몽롱한 멜로디의 '자각몽'은 이달의 소녀나 레드벨벳의 드림 팝이 스치고, 자존감이 충만한 'Yeppi yeppi'는 있지의 '달라달라'와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비교적 친숙한 질감이 자칫 독보적인 매력에 대한 반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다채로운 전자음과 목소리의 블렌딩은 음악적 친밀감을 제고하며 타이틀곡의 접근법이 낯선 이들마저 새로운 차원으로 빨아들인다.

음악 외의 콘텐츠도 흡인력을 강화한다. 어린이 만화에 나올 법한 'ænergy'의 대사나 'Savage' 뮤직비디오 속 2D 애니메이션은 키치한 즐길 거리다. 막연한 연출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훗날을 위한 면밀한 설계로 짐작된다. 현실의 '나'와 가상의 또 다른 자아 '아이'는 익명에 가려진 시스템의 양면이고 둘 사이를 갈라 놓으려는 빌런 '블랙 맘바'는 딥페이크를 비롯한 기술 범죄의 초상이다. 허구의 이야기 속 투쟁은 디지털 사회의 실태고 이를 조영하는 비주류 매체는 유머 섞인 지적질을 날린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서브컬처의 상승으로 근래 보기 드문 아이돌식 풍자를 완성했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메타버스는 점점 일상에 스며들었다. 그러나 그 실체는 여전히 흐릿하다. 엉성한 3D 모델링과 각종 표절 논란만 봐도 생소한 개념은 그저 키워드 마케팅에 불과해 보인다. 그럼에도 네 명의 소녀와 네 개의 홀로그램이 그려갈 문화 행보는 근시안적 태도의 불손함을 상쇄한다. 탄탄한 가창력과 과거의 질료로 구축한 세련된 사운드 그리고 다각적인 고발과 비판의 메시지. <Savage>는 미디어와 함께 삼위일체를 이루며 가장 이상적인 SMP를 완성했다. 시대가 공증할 수 있는 'Iconic'한 존재, 선구자의 발걸음에 신세기의 성패가 달렸다.



에스파 (aespa) - 미니앨범 1집 : Savage [Hallucination Quest ver.]
에스파 (aespa) - 미니앨범 1집 : Savage [Hallucination Quest ver.]
에스파
드림어스컴퍼니SM Entertainment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오늘의 책

트럼프의 귀환, 위기인가? 기회인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거머쥔 트럼프.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 트럼프 2기 정부의 명암과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설명하는 박종훈 저자의 신간이다. 강경한 슈퍼 트럼프의 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그 전략을 제시한다.

이래도 안 읽으실 건가요

텍스트 힙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독서가 우리 삶에 필요해서다. 일본 뇌과학계 권위자가 뇌과학으로 입증하는 독서 예찬론. 책을 읽으면 뇌가 깨어난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이해력이 상승하며 즐겁기까지 하다. 책의 장르는 상관 없다. 어떤 책이든 일단 읽으면 삶이 윤택해진다.

죽음을 부르는 저주받은 소설

출간 즉시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관련 영상을 제작하려 하면 재앙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소설 『밤이 끝나는 곳』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이 함께 떠난 크루즈 여행 중 숨겨진 진실과 사라진 작가의 그림자가 서서히 밝혀진다.

우리 아이 영어 공부, 이렇게만 하세요!

영어교육 전문가이자 유튜브 <교집합 스튜디오> 멘토 권태형 소장의 첫 영어 자녀 교육서. 다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초등 영어 교육의 현실과 아이들의 다양한 학습 성향에 맞는 영어 학습법을 제시한다. 학부모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실천 방안을 담았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