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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디스패치> 웨스 앤더슨이 잡지를 만든다면
웨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 영화
웨스 앤더슨의 영화 세계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프렌치 디스패치> 또한 만족할 수준이며 실제 잡지는 아니지만, 어떤 형태가 됐든 소장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2021.11.11)
웨스 앤더슨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구획되어 있다. 반듯하고 네모지고 균형 잡혔으며 극 중 인물들의 대사 또한 길게 끌지 않고 건조하며 서로 말이 겹치지 않아 질서 잡힌 리듬이 있다. 어떻게 보면 감독의 통제 속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세계인데 그게 또 몰개성하거나 무미건조하지 않다.
각각의 면(面)에 색(色)을 부여해서다. 잘 알려진 배우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들이 비중 여하에 상관없이 작품별로 맡은 사연을 색깔 있게 채워 변모한 인상을 보는 재미가 있다. 출연하 배우도 비슷해, 웨스 앤더슨의 연출 역시 거기서 거기인 듯해도 장면(場面)을 꾸미는 미장센과 그로 인해 도드라지는 이야기가 질리지 않는 개성을 부여한다.
잡다한 읽을거리를 모아 지면(紙面)을 배분한 후 주제와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페이지를 장식하는 잡지를 보는 기분이다. 아니나 달라, 웨스 앤더슨이 신작으로 ‘잡지’를 만들었다. 잡지 형식의 영화를 만들었다. 잡지 제호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의 <프렌치 디스패치>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극 중 프랑스의 도시 블라제에는 미국에 적을 둔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의 사옥이 있다. 발행인의 아들이자 편집장 아서 하위처 주니어(빌 머레이)는 자신이 죽게 되면 잡지 역시 폐간한다는 조건을 정관에 명시했다. 이를 모르는 소속 기자들은 마지막 호가 될 잡지 발행을 위해 평소처럼 각자의 영역에서 기사를 준비한다.
허브세인트 세저랙(오웬 윌슨)은 자전거를 타고 도시의 숨은 매력을 찾아 과거와 현재를 비교한다. J.K.L. 버렌슨(틸다 스윈튼)은 살인마 모세 로젠탈러(베니시오 델 토로)가 감옥에 있으면서 교도관 시몬(레아 세이두)과 은밀한 감정을 나누며 어떻게 미술상 줄리안 카다지오(애드리언 브로디)의 눈에 띄어 거물 화가가 되었나, 사연을 살핀다.
루신다 크레멘츠(프랜시스 맥도먼드)는 학생운동의 방식을 두고 갈등하던 두 청년 제피렐리(티모시 샬라메)와 줄리엣(리나 쿠드리)의 시위 과정에서 피어난 사랑에 주목한다. 로벅 라이트(제프리 라이트)는 아들을 납치당한 미식가 경찰서장(마티유 아말릭)과 셰프 네스카피에(스티브 박)의 특별한 관계를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한다.
하나의 연성 기사와 세 개의 특종을 에피소드별로 이어붙인 <프렌치 디스패치>의 형식은 잡지의 구성을 그대로 반영했다. 4개의 에피소드 앞뒤를 장식한 오프닝 크레딧과 엔딩 크레딧 또한, 일러스트 커버로 디자인하여 영화 전체를 하나의 잡지처럼 통일감을 이루게 했다.
스페인의 일러스트 작가 하비 아즈나레즈(Javi Aznarez)가 작업한 <프렌치 디스패치>의 커버 일러스트는 1978년 8월 프랑스 작가 최초로 뉴요커 커버를 그렸던 장 자크 상페(Jean-Jacques Sempé)의 느낌이 물씬하다. 실제로 고등학교 시절 웨스 앤더슨은 도서관에서 일러스트 표지가 눈에 띄어 뉴요커를 읽은 후 애독자가 되었다.
잡지란 게 그렇다. 발행인 혹은 편집장의 취향과 개성을 우선하여 그에 동조하는 기자와 편집인들이 책 한 권을 만들려고 기획 회의부터 취재와 디자인과 제본까지, 맡은 바를 질서 정연히 작업한다. 웨스 앤더슨이 주도한 이번 영화의 콘셉트는 ‘프랑스’다. 자신이 좋아하는 프랑스 문화와 관련한 것들을 ‘한 권의 영화’에 꾹꾹 담았다.
장 자크 샹페 풍의 일러스트에 더해 4개의 에피소드, 아니 기사에서 프렌치 요소를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프렌치 디스패치’를 소개하는 초반 부분에서 편집장과 기자들이 마실 음료를 가지고 급사가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을 건물 외부에서 풀 숏으로 잡은 장면은 자크 타티가 연출한 <나의 아저씨>(1958)의 특정 장면을 그대로 따랐다.
‘콘크리트 걸작’의 로젠탈러와 시몬의 관계는 걸작을 만들려고 고심하는 화가와 누드모델의 관계를 담은 자크 리베트의 <누드모델>(1991)을, ‘선언문 개정’의 배경은 68혁명을, 흑백 분위기를 유도한 ‘경찰서장의 전용 식당’의 경찰 서장은 중절모와 프렌치 코트의 품새가 프랑스 필름 누아르의 아이콘 장 가뱅 혹은 알랭 들롱을 연상시킨다.
잡지의 몰락을 말하지만, 좋아하는 잡지를 찾고 애독하는 독자는 여전히 존재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존재 혹은 대상에 관한 정보를 글과 사진과 일러스트와 황금비율의 페이지 배열 등으로 종합한 잡지를 손에 쥐고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읽고, 보고 느끼는 희열과 감동이 크기 때문이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관람하는 재미와 감흥도 이와 유사하다. <바틀 로켓>(1996)으로 데뷔한 후 2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웨스 앤더슨의 작품을 기다리는 팬은 전 세계에 산적했다. 그의 영화 세계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프렌치 디스패치> 또한 만족할 수준이며 실제 잡지는 아니지만, 어떤 형태가 됐든 소장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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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