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사랑하는 사람과 크게 다툰 뒤 읽는 책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213회)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월하의 마음』, 『다정소감』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2021.11.11)
불현듯(오은) : 오늘 주제를 캘리 님께서 정해주셨어요. 보통은 주제를 여러 개 제시한 뒤에 그것 중에 좁히는 과정을 거쳐 결정을 하는데요. 이번에는 덩그러니 하나를 제안해주셨잖아요.(웃음)
프랑소와 엄 : 이 주제 꼭 하고 싶다는 거죠!
캘리 : 맞아요, 오늘 주제는 ‘사랑하는 사람과 크게 다툰 뒤 읽는 책’입니다.
은유 저 | 서해문집
제 인생에 엄청나게 도움이 됐고, 자극이 됐던 정말 귀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책이에요. 저는 보통 읽은 책을 웬만해서는 다시 안 읽는데요. 이 책은 다시 읽어도 너무 좋아요. 이 주제에 이 책만큼 좋은 책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왠지 주변 사람들 다 읽었을 거 같아서 소개를 안 해도 될까 하다가 아니다, 그래도 더 알려야 된다고 생각했고요.
은유 작가님이 오랫동안 누군가에게 사인을 할 때 이런 문구를 적어주시곤 했어요.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다.’ 저는 이 문장이 너무 좋은데요. 작가님은 자녀 두 명을 키우면서 글을 쓰셨죠. 스스로를 ‘밥벌이 글을 써야 하는 문필 하청업자’라고 표현을 하시고요. 지금은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되셨지만 은유 작가님은 지금도 그 정체성을 갖고 사신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 서문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양육의 기쁨과 양육의 고통은 희비의 쌍곡선처럼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엄마라서 행복하고 엄마라서 불행했다. 불행의 삶의 자리를 내어주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기 때문에 나의 불행과 나의 행복은 자주 다퉜다. 그러는 사이에 20대가 되고 30대가 쳐들어왔다."
그리고 또 한 문장이 나오는데요. "사는 일이 만족스러운 사람은 굳이 삶을 탐구하지 않을 것이다." 저는 진짜 이 문장이 정말 맞는 것 같아요.
은유 작가님은 또 "인간은 자기가 어떻게 절망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를 알면 그 절망 속에 살아갈 수 있다는 벤야민의 말을 나는 시를 통해 이해했다"고 하시는데요. 내가 이 싸움을 왜 했는지, 싸운 이유를 알게 되면 또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잖아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삶에 펼쳐지지만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이해의 여지가 있으면 또 그냥 힘들어도 살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은 싸움하는 사람들은 삶을 창조하는 사람, 말을 생산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고 이야기를 하시고요. 만약 싸우고 나서 이 책을 읽으면 나의 삶도 생각하게 되고, 내가 싸운 상대의 사정이나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생각하게 될 거예요. 또 이 싸움을 단순히 개개인들만의 감정 싸움이 아니고 이 싸움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나 관계 등 여러 가지 맥락들로 살펴보게 되기도 할 거고요.
특히 결정적으로 좋았던 게 작가님의 "싸움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싸움하는 사람이 되었고 인간의 불행을 사회 구조 속에서 보는 시선을 얻었다"는 표현이었고요. 만약 누군가랑 싸워서 어떤 책을 읽고 싶다,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하는 분들이 있으면 이 책을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김향안 저 | 환기미술관
김향안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라면 시인 이상과 결혼을 했었고, 그의 죽음 이후에 혼자 지내다가 화가 김환기의 아내로 김한기의 미술을 체계적이고 열정적으로 세상에 알린 사람이라는 정도로 알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그분의 에세이가 한 권 있다는 사실에 놀라서 책을 펼쳤는데요. 몇 장 넘기고 바로 구매를 결정했어요. 예를 들면 이런 문장 때문이었어요.
한월이 영창으로 하나 가득 비치는 밤 나는 누가 내게 일러준 것도 아닌데 고향이란 다른 게 아니라 가족이 있는 곳이라고 누가 은근히 들려준 듯도 싶은 그런 생각에 공명하면서 내일 아침 거울에 또 하나 주름살이 는다 하여도 싫지 않을 것 같고 어려서 본 조모의 백발이 내 머리에 왔을 때의 심경은 부처의 미소와도 통하지 않을까 그러한 생각도 하여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의 아내, 누구에게 어떤 역할을 한 인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정말 탁월한 문필가인 것이죠. 이렇게 담담하고 선 굵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책을 통해서 알게 됐어요. 사실 김향안 선생은 그림 그릴 줄만 알았던 남편 김환기를 대신해 꾸준히 글을 써서 신문이나 잡지 같은 데 기고해 생계를 유지했던 사람이었어요. 보통의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던 거죠.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본 김향한이라는 사람은 미술 작품에 대한 철학도 확고하고요. 시야도 넓어서 진짜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해요.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김향안, 김환기 부부가 파리와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하잖아요. 이들이 처음에 파리로 갈 결심을 했을 때 먼저 파리에 간 것도 김향안 선생이었어요. 남편의 작품을 들고 미술관들을 다니면서 전시를 타진하고요. 그러는 동안 자신은 미술 공부를 하고, 동시에 <서울신문>에 ‘파리 기행’이라는 글까지 연재해요. 1년 뒤 전시를 약속하고 남편을 불러들인 다음 파리에서 약 4년 정도 생활을 하는데요. 그때도 각종 미술계의 자료나 소식 같은 것을 공부하고 남편에게 알려준 것은 김향안 선생이었습니다.
최은영 작가님의 『밝은 밤』이나 정세랑 작가님의 『시선으로부터,』에 등장하는 인물의 현현을 보는 것 같았어요. 똑똑하고, 깨어 있고, 능력 있으면서도 실제로 추진까지 했던 선배 여성의 삶을 알게 되었다는 게 무척 기뻤고요. 이걸 이렇게 몰랐었나 싶어서 좀 놀라기도 했어요. 또 책의 뒷부분에는 시인 이상에 대한 이야기가 있거든요. 그게 또 양념처럼 재미있어서 함께 보시면 좋을 거예요.
김혼비 저 | 안온북스
얼마 전 이 책을 읽고 예스24에 한 줄 평을 남겼어요. ‘지금 나를 가장 설레게 하는 작가’라고요.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다정함을 느끼지는 않잖아요. 어떤 대상이 나에게 어떤 것을 베풀었거나 함께 어떤 것을 이겨냈을 때 다정함을 느끼게 되는데요. 그런 순간들을 하나하나 건져 올려 쓴 글들이 이 책에 가득합니다. 싸우기 전에 읽어도 좋을 것 같고, 싸우고 난 다음에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싸우고 나면 늘 마음 한 구석 혹은 몸의 한 부분에서 어떤 것이 뭉텅 잘려서 나가버린 것 같은데요. 그것을 다시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고, 바로 그럴 때 이 책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 책은 크게 두 가지를 주거든요. 싸우면 기분이 상하죠. 그럴 때 이 책에 담긴 김혼비식 유머를 보면 도움이 될 거고요. 우리가 자기만의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기 때문에 잣대가 어긋나서 싸우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럴 때 이 책은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해주거든요.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 그러려니 했던 것들을 다르게 바라보게 해주는 매력이 있는 책이라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요즘은 솔직함이 옹호 받는 시대고, 쿨함이 나를 어필하는 데 강력한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김혼비 작가님은 솔직함에 대해서도 새롭게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솔직한 나를 너무나 사랑하고, 솔직한 나에 대해 너무나 비대한 자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으니 아무 노력 없이 손쉽게 딸 수 있는 타이틀이 솔직한 나여서 그런 것일까.
솔직함이 칭찬받아야 할 가치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솔직함이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잖아요. 김혼비 작가님은 그런 부분들을 건드려줘요. 잘 짜인 글, 어떻게 흘러갈 것 같은지 예상이 되면서 결국 그 종착지에 안착한 글을 읽을 때 안정감을 느끼고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동시에 예측과 전혀 다른 곳으로 뻗어 나가는 글을 읽을 때도 정말 좋아요. 내 속에 있던 편견이 깨지기도 하고요. 김혼비 작가님의 글은 그런 글이에요. 이 책은 단순히 웃기고 시의적이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사고 체계를 뒤흔들 수도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방향으로만 걸어가다가 가끔 저쪽을 바라보면 전혀 생경한 풍경이 펼쳐져 있을 때가 있죠. 그 생경한 풍경을 마주 보게 해주는 책이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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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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