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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의 집념 : KEY 'BAD LOVE'
KEY 미니 앨범 <BAD LOVE>
한 사람의 14년의 집념이 만든 결과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이토록 말쑥한 품새를 하고 있다면 더욱더. (2021.09.29)
KEY의 미니 앨범 <BAD LOVE>의 티저 이미지를 처음 본 순간 느꼈다. 아, 이 사람은 지금 대충할 생각이 없구나. <BAD LOVE>의 티저는 얼굴을 크게 넣거나 가능한 멋진 표정과 포즈로 정형화된 아이돌 티저 공식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포스터에는 붉은빛으로 물든 미지의 행성을 배경으로 핑크빛 생명체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생명체라고 불러보는 건, 그것이 두 다리와 두 팔을 갖춘 최소한의 인간 형상을 하고 있으며, 비록 흘러내리고 있긴 하지만 눈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얼핏 앨범 티저라기보다 우리가 아직 발견 못한 B급 SF 영화의 포스터처럼 느껴지는 이 이미지는 그대로 <BAD LOVE>를 관통하는 ‘레트로 스페이스’라는 키워드의 총체였다.
‘BAD LOVE’를 향한 그의 정색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는 건 이후 공개한 1분 30초가량의 무드 샘플러(Mood Sampler)였다. 앨범 발매 전 짧은 길이로 편집된 뮤직비디오나 트랙 리스트 정도를 공개하는 케이팝의 규율에 비해, <BAD LOVE>의 무드 샘플러는 아무런 배경음 없이 메마른 바람 소리와 알 수 없는 생명체들 내는 비명 사이로 무언가를 탐색하는 KEY의 모습을 그저 천천히 따라갔다. 괴물의 정체를 살피기 위해 문을 여는 순간 눈 앞의 생명체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뒤이어 갑작스레 떠오른 해가 둘로 갈라지며 우주선의 탈출 장치를 닮은 물체에 탄 또 다른 KEY가 등장한다. 영상에 등장하는 음악다운 음악은 KEY의 몸이 떠오르는 마지막 순간 흐르는 수록곡 ‘Helium(헬륨)’의 일부뿐이다.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음악과 어떻게 조화되어야 매력적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또 그것에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영상이었다.
실제로 KEY는 이번 앨범에 자신이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그리고 그걸 어떤 음악으로 들려주고 싶은지를 담아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 그의 욕망은 부단한 노력과 함께 했다. 재킷 촬영에서 의상, 뮤직비디오까지 하나하나 아이디어를 내고 담당자들과 수없이 많은 회의를 거쳤다. 그 결과 레트로와 스페이스, 이미지와 음악 어느 한 쪽도 놓치지 않는 균형 잡힌 ‘KEY’만의 ‘레트로 스페이스’가 태어났다. 우선 이미지를 보자. 전 세계 각종 시대에 존재하는 B급 SF 영화의 감성을 바탕으로 한 <BAD LOVE>의 레트로 스페이스는 그 위에 21세기가 지겹도록 사랑해온 뉴트로의 똑 떨어지는 선명함을 입혔다. 단지 하나의 이미지만이 아닌, 컴백 스케줄러에서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 패키지를 닮은 앨범 디자인까지 꼼꼼히 살핀 건 물론이다. 사실 이 분야는 케이팝,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대중문화와 사회 속 다채로운 이미지를 자신들만의 것으로 새로 지어 입는 데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보여온 그룹 샤이니의 멤버로서 그가 가장 잘하는 것에 애정까지 더해진 결과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음악이다. A에서 Z까지 비주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완벽히 통제했다 하더라도 결국 그 모든 것의 기본에 좋은 음악이 있어야만 가치를 인정 받는 건 케이팝이 타고난 숙명 가운데 하나다. 위켄드(The Weeknd)의 <After Hours>가 시대에 주입한 낭만적인 디스토피아의 기운 아래, ‘BAD LOVE’ 역시 타오르는 불안을 안락하게 노래한다. 다양한 작/편곡가가 참여했지만 마치 한 사람이 작업한 것처럼 날카로운 금속성 사운드로 벼려진 앨범 전반은, 그동안 특유의 ‘날카로움’으로 호불호가 갈렸던 KEY의 목소리와 오랜 친구처럼 편안하게 호응한다. 강렬한 비트 속 확실한 그루브를 다지는 ‘Helium (헬륨)’이나 신스팝을 디스코 풍으로 풀어낸 ‘Saturday Night’, 앨범의 마지막에 위치한 감성적인 다운템포 넘버 ‘Eighteen (End Of My World)’까지 잘 정돈된 라인업 속에서 단순한 가창력이라기보다는 ‘보컬 퍼포먼스’라고 부르는 게 어울리는 KEY의 목소리가 이 새로운 우주의 문을 계속해서 여닫는다. 믿음직스럽다. 그는 ‘BAD LOVE’를 두고 ‘14년 동안 머릿속에서 구상만 하던 콘셉트’라고 이야기했다. 뒤집어 말하면 ‘이것을 만들기 위해 14년이 필요했다’는 말이다. 한 사람의 14년의 집념이 만든 결과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이토록 말쑥한 품새를 하고 있다면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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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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