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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 레트로, 뉴트로 그리고 선미
선미의 미니앨범 3집 <6분의 1>
먼 길을 돌아 자아를 찾아가는 선미 고유의 아이덴티티가 복고, 레트로, 뉴트로의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만들어낸 음악의 뒷맛도 그렇다. 그래서 다음이 또 궁금해지는 사람, 선미다. (2021.08.11)
지칠 때도 됐건만 절대 지치지 않는 것이 있다. 레트로 유행이다. 복고에서 레트로, 이제는 뉴트로로 매번 이름표만 바꿔 다는 이 유행은, 장담컨대 21세기가 시작된 이후 한 번도 유행이 아닌 적이 없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과거는 쉽게 미화하고 미래는 습관적으로 불안해하는 얄팍한 습성은, 기회만 생겼다 하면 평화로웠던 (것으로 자주 포장되는) 과거로 자꾸만 사람들을 이끌고 갔다. 과거지향적 콘텐츠가 주는 알고 먹는 단맛에 대한 욕구는 영화, 드라마, 음악, 책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졌다.
선미는 그 거친 파도 한가운데 꼿꼿이 자리한 묵직한 부표다. 레트로는 원더걸스에서 솔로 활동까지, 이제는 ‘선미팝’이라는 고유명사까지 만들어진 선미의 지난 15년을 채우는 수많은 키워드를 대표하는 단어다. 비슷한 무게감을 가진 키워드라면 엉뚱함 정도일 것이다. 물론 선미의 엉뚱함은 세간이 흔히 ‘귀여움’의 카테고리 안에서 소비하는, 통통 튀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공포에 가깝다. 다음 장면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시작 신호로 쏘아 올리는 선미만의 엉뚱함은 케이팝의 컬러풀함과 화려함과 만나며 호러나 미스터리 장르에서 느끼는 것과 흡사한 매력을 폭발시킨다. ‘알 수 없음’이 주는 서늘한 두려움이 깔린 색다른 환상의 세계다.
레트로는 선미의 그런 수려하고 괴이쩍은 엉뚱함을 대중과 가장 가까운 곳까지 끌어온 또 다른 힘의 한 축이다. 프로듀서 박진영의 지휘 아래 전국을 들었다 놓았던 원더걸스 초기 복고 3부작 ‘Tell Me’, ‘So Hot’, ‘Nobody’로 하드 트레이닝을 마친 선미는, 이후 밴드로 체질을 바꾼 그룹 활동과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이어가면서도 데뷔 시절을 함께한 ‘복고’가 남기고 간 여운을 잊지 않았다. 1980년대 뉴욕까지 거슬러 올라가 ‘프리스타일’ 장르를 새삼 소환했던 앨범 <REBOOT>(2015)에서 직접 작업에 참여한 ‘Rewind’와 ‘사랑이 떠나려 할 때’, 레게 리듬을 활용한 느긋한 무드로 큰 사랑을 받았던 ‘Why So Lonely’, 홀로서기의 성공적인 신호탄이었던 ‘가시나’와 ‘주인공’, 본격 뉴트로의 기운을 온몸으로 뿜어냈던 싱글 ‘보라빛 밤 (pporappippam)’까지. 굳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이 선미의 디스코그래피를 훑어 내리는 것만으로도 케이팝이 어떤 식으로 복고와 레트로, 뉴트로를 소화해왔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다.
그 자연스러운 흐름 끝에 등장한 노래 ‘You can’t sit with us’와 앨범 <6분의 1>은 이런 선미의 장기를 한껏 발휘한 축제의 장이다. 미국 하이틴 물과 최근 세계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코리안 좀비’를 결합한 ‘You can’t sit with us’의 뮤직비디오는, 그 자체로 호러와 레트로를 주요한 중심축으로 한 선미 자신의 성공적인 커리어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완성한 선미표 장르물이다. 이외에도 앨범에는 지구 중력의 1/6이라는 달의 가벼운 중력을 닮은 팝 넘버 여섯 곡이 담겨 있다. 특히 첫 곡이자 타이틀곡인 ‘You can’t sit with us’에서 네 번째 트랙 ‘Call’까지는 그야말로 멈추지 않는 선미의 레트로 열차다.
익숙한 리듬과 달콤한 멜로디,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사운드 속에서 씁쓸한 뒷맛이 느껴지는 건 앨범 후반부에 이르러서다. 리듬은 여전히 신나지만 ‘너에게 맞춰 살아가는 건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니’라는 노랫말로 온도를 한껏 낮추는 ‘Narcissism’과 슈게이징을 연상시키는 안성훈의 거친 기타 연주가 도드라지는 마지막 곡 ‘borderline’는 마냥 기분 좋게 레트로한 멜로디와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던 사람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추억 보정된 과거가 주는 안락함에 취해 비틀거리다 갑자기 만난 현실의 온도에 소름이 돋았던 기억. 껍데기만이 아닌 뼛속까지 과거를 그린 콘텐츠의 밑바닥에서 맛본 달콤씁쓸함이 혀끝에 맴돈다. 먼 길을 돌아 자아를 찾아가는 선미 고유의 아이덴티티가 복고, 레트로, 뉴트로의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만들어낸 음악의 뒷맛도 그렇다. 그래서 다음이 또 궁금해지는 사람, 선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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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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