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로 출간된 청소년들의 솔직한 심경 고백
『우리의 상처는 솔직하다』 멘탈헬스코리아 피어 스페셜리스트 인터뷰
자신의 아픔을 숨기거나 보태는 것 없이 진솔하고 담담하게 써 내려가 세상 빛을 볼 수 있었고, 그 결과 이 책이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2021.09.29)
청소년의 심리를 이해하고 돌보기 위한 서적들은 수없이 존재했지만, 청소년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며 어려운 현실을 돌파하는 실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무수한 아픔과 우울을 겪었던 그들은 이제, 고통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몸소 발견한다. 쉽지만은 않았을 이 지난한 경험들을 모아 『우리의 상처는 솔직하다』로 묶었다.
상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에서 우리는 잊고 있던 지난날의 아픔을, 목격하거나 직접 겪었던 상처들을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우울한 시기를 지나는 개인도, 침체된 분위기의 사회도 우울을 동력 삼아 움직일 수 있음을. 상처에서 돋아난 날개로 날 수 있음을.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는 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같습니다. 청소년의 정신 건강 문제와 심리와 관련한 서적은 왕왕 보이는데요. 이번 책 『우리의 상처는 솔직하다』는 어떤 점에서 ‘국내 최초’ 서적이 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강지오 : 사실 처음에 책을 써보자는 말을 들었을 때, 실현 불가능한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아픔을 기술하고 다듬는 일은 마치 힘들었던 기억을 반복재생하는 비디오를 보는 것 같았는데요. 우여곡절이 심했고 몇 번이나 그만두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성인이나 심리 관련 종사자 분들이 쓴 책은 많지만, 이 책을 쓴 저자는 대개 청소년들입니다. 자신의 아픔을 숨기거나 보태는 것 없이 진솔하고 담담하게 써 내려가 세상 빛을 볼 수 있었고, 그 결과 이 책이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장은하 : 이 책에는 단순히 ‘우울증’ ‘학교폭력의 피해자’라는 단어로 규정되었던 아이들의 솔직한 뒷이야기가 담겼습니다. 문제의 시작점이 어디였는지, 그리고 아픔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오해와 잘못된 판단, 비난을 받았는지를 낱낱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음 아픈 청소년들을 향한 이해와 공감은 물론, 청소년의 정신 건강 문제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방향성에 대해 청소년이 직접 목소리를 낸 최초의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들을 ‘피어 스페셜리스트 팀’이라 소개해 주셨어요. ‘피어 스페셜리스트’는 어떤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인가요?
장은하 : 피어 스페셜리스트(Peer Specialist)는 ‘동료지원가’로도 불리며 자신의 아픔을 바탕으로 삶을 변화시킨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정신질환, 심리적 외상 또는 약물 오남용 등 정신 건강과 관련한 어려움을 가진 개인을 물적·심리적으로 지원합니다. 자신이 겪었던 정신적 아픔과 회복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 공감을 바탕으로 비슷한 정신적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회복의 롤 모델’ 역할을 합니다. 이를 통해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북돋고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조수현 : 당연한 걸 당연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피어 스페셜리스트의 역할을 크게 두 가지로 꼽아본다면 정신적인 어려움을 여느 질환과 다름없이 정당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과 정신 건강 서비스의 소비자로 보도록 사회적 시선을 변화시키는 것이 있는데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청소년 서포트 그룹을 운영해 음지로 내몰렸던 청소년들의 손을 잡아주기도 했습니다. 쉬쉬하기에 바빴던 부실한 정신 건강 서비스들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하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자신에게 맞는 정신과나 상담소를 고르는 방법 등을 소개하며 소비자의 시선에서 양질의 정신 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을 전달할 수 있었어요.
책 속에서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핵심 키워드로 ‘폭력’이 눈에 띄는데요. 폭력과 관련하여 자신이 기억하는(책 속에 등장하는) 가장 선명한 에피소드를 소개해주세요.
강지오 : 제 글에서 담고 있는 주된 폭력은 학교폭력입니다. 9살부터 시작되었던 폭력은 갈수록 심해져 12살 때의 일이 가장 선명한데요. 자세한 내용은 책에 나와 있습니다. 피해자, 가해자 둘 다 어린 나이다 보니 어른들은 이 시기의 폭력을 사소하게 취급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모든 폭력은 한 번 경험한 순간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건에 대한 주변의 언어폭력이나 질타로 2차 피해로 이어지기도 하고, 그 모든 것들이 기억의 형태로 남아 꾸준히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이성음 : 저는 스스로 가했던 폭력들이 너무도 기억에 남는데요. 남들이 했던 폭력보다도 자기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거나 언어폭력을 했던 게, 다른 누군가가 폭력을 가했던 것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제각기 다른 아픔의 이야기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출간하며 세상에 널리 알리기까지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혹시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나 수록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면 조금 더 들려줄 수 있을까요?
장은하 : 작년 봄, 책을 내자고 했을 때 스무 명이 넘는 피어 스페셜리스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혀주었습니다. 우리는 모여 매일 1시간씩 글을 쓰고 공유하며,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았습니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스스로 치유 받기도 했으며 다 낫지 않은 상처가 덧나 쓰라리기도, 또 이 글로 인해 누군가 상처받진 않을지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차마 못 담은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신변 보호를 위해, 글로 다시 적기엔 너무 아플 것 같아서 등 다양한 이유로 꺼내지 못한 이야기가 무수히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워하면서도 올바른 길을 걷기 위해 용기를 냈고, 지금도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 이야기들을 나누게 될 때가 올 것이라 믿습니다.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수없이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픔의 경험 전문가’로서 힘들 때 가장 듣기 싫은 말, 또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우가은 :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너만 그런 거 아니야”라는 말이었습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런데도 참기 힘들어서 이야기하는 것인데 이해해주지 않으니 더 힘들었어요. 가장 좋았던 말은 “잘하고 있다”였습니다. 제가 선택한 방향을 존중하고 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 힘이 되었어요.
강지오 :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딱히 없어요. 오히려 말보다 행동이 위로가 돼요. 제 경험을 조금 말씀드리면 누군가에게 자해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이 제 손을 잡아주었어요. 제가 울면 옆에서 같이 울어주었고, 밤마다 몇몇 기억이 저를 괴롭히면 아침이 올 때까지 저를 안아주었어요. 정답은 없지만, 때론 백 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코로나 이후 정신과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들었는데요. 책 곳곳에 정신 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들이 등장합니다. 정신과 진료 혹은 상담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들을 꼽아주신다면?
조수현 : “우리는 정신 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정당한 소비자다.” 멘탈헬스코리아의 대표님과 부대표님께서 항상 해주시는 말씀이에요. 우리가 아플 때 가는 병원들을 생각해보면 “허리 치료는 어디 병원이 잘하더라.” “이 병원은 원장님이 정말 친절하더라.” 등 관련 정보가 입소문을 타고 잘 알려져서 사람들이 골라 가잖아요. 그런데 정신 건강과 관련해선 다들 쉬쉬하기에 바빠서 정보가 부족한 것이 안타까워요. 그래도 소비자로서 정신 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자신에게 맞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니, 이번 책에 나오는 조언 등을 활용하여 충분하게 알아보시고 좋은 곳을 고르시길 바랍니다.
상담 시간이나 상담사의 태도, 약의 부작용을 잘 설명해주는지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세요. 저 같은 경우엔 상담사에게 잘 보이고 싶어 거짓말을 할 때도 있었거든요. 특히 상담의 경우 상담사가 주는 미션을 성실히 실천해갔을 때, 그리고 상담에 솔직히 임했을 때 효과가 컸습니다. 그러니 상담을 받을 때 내 상황에 대한 배려나 관련 지식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과감하게 다른 상담사를 찾아보세요.
이 책의 독자가 되어줄 사람들에게 한마디 남겨주세요.
이성음 : 사람이 살면서 힘든 건 너무 당연합니다. 자신의 아픔을 숨기려고 노력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도 처음에는 감정을 숨기는 게, 아픔을 숨기는 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계속하다 보면 언젠간 그 상처들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집니다. 이 책이 어느 정도의 아픔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는 날까지, 여러분들 곁에서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너무 잘하고 있다고, 달려가다 힘들면 쉬어가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가은 : 독자분들은 궁금증, 호기심, 공감, 신기함 등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골랐겠지요. 저희는 소용돌이치는 다양한 감정 속에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마침내 눈물지을 수 있는 책을 썼다고 자부합니다. 독자분들이 공감하거나 생각할 수 있게 만들었다면 저는 이 책이 뜻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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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로 출간된 청소년들의 솔직한 심경 고백 정신적인 어려움은 ‘누구나’의 문제이고, 따라서 모두가 주목해야 한다. 청소년의 심리를 이해하고 돌보기 위한 서적들은 수없이 존재했지만, 청소년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며 어려운 현실을 돌파하는 실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각기 다른 상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