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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축농증이 뭘까

부비동염과 감기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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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식을 널리 알리고 어느 정도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일을 하라고 정부가 있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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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얘기가 나온 김에 진단이 남발되고, 항생제는 더욱 남용되는 한 가지 질병을 짚고 넘어갑시다. 바로 축농증입니다. 축농증은 한자로 蓄膿症이라고 씁니다. ‘고름이 고이는 병’이란 뜻입니다. 어디에 고인다는 뜻일까요? 바로 ‘부비동’이란 공간입니다. ‘코 옆에 있는 공간’이란 뜻입니다. 코 옆에 무슨 공간이 있지? 거울을 보세요. 코 양쪽 옆에 뭐가 있습니까? 예, 광대뼈가 있지요. 그런데 그 광대뼈 속은 뼈로 꽉 차있는 것이 아니라 텅 빈 공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공간이 이마뼈 속에도 있고, 눈 뒤에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우리 머리뼈는 속이 꽉 찬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공간이 있습니다.

 

왜 뼈 속에 공간이 있을까요? 정확한 이유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의사들은 부비동이 머리의 무게를 줄이고(머리의 무게는 성인의 경우 5kg에 이릅니다. 더 무겁다면 그만큼 목뼈에 부담이 되겠지요), 충격을 흡수하며, 숨쉴 때 공기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이물질을 제거하는 등 이로운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지만 어디 삶이 그런가요? 창문을 꼭꼭 닫고 살면 방안에 퀴퀴한 냄새가 나듯, 몸속 모든 공간에도 ‘바람이 잘 통해야’ 합니다. 부비동도 마찬가집니다. 모든 부비동은 코와 통합니다. 문제는 그 통로가 상당히 좁다는 겁니다. 감기에 걸리면 콧속이 붓고 콧물이 나지요. 가뜩이나 좁은 부비동의 통로가 부어서 막히고, 콧물로 막힙니다. 몸속 공간에 ‘바람이 통하지 않으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점액이 고이고, 바이러스나 점액 속의 영양분을 먹고 사는 세균이 침입합니다. ‘부비동염’이 시작되는 거지요.

 

부비동염이 생기면 어떤 증상이 나타날까요? ‘염’으로 끝나는 병은 ‘염증’이란 뜻입니다. 염증의 정의, 기억하시나요? 염증이란 붓고, 빨개지고, 열이 나고, 아프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부비동이 있는 부위가 아픕니다. 부비동이 어디 있다고요? 예, 양쪽 광대뼈, 이마, 눈 뒤쪽 등이죠. 그러니 양쪽 광대뼈가 아프거나 두통이 생깁니다. 그리고 코 속이 부으니 코가 막힙니다. 무엇보다도 누런 코, 심지어 푸르스름한 코가 나옵니다. 일정한 공간에 고여 있다가 나오는 것이니 보통 코감기 때보다 훨씬 많이 나오기도 합니다. 누런 코가 아주 많이, 끝없이 나오는 걸 보고 옛날 분들이 “고름(농)이 어딘가 모여 있다가(축) 나오는 증상(증) 같다”고 ‘축농증’이라고 부른 거지요. 서서 돌아다닐 때는 누런 코가 앞으로, 즉 코로 나오지만 자려고 누우면 중력에 의해 목 뒤로 넘어갑니다. 그대로 삼키면 괜찮겠지만 계속 코가 넘어오니 어린이가 사레들지 않을 재주가 없지요. 잘 자던 아이가 갑자기 사레가 들면 발작적으로 기침을 하고, 심하면 토하기도 하는데 그 속에 밤새 삼킨 누런 코가 그대로 나오니 부모는 대경실색하여 병원으로 뛰어옵니다.

 

정리하면 부비동염의 3대 증상은 누런 코가 나오고, 코가 막히고 두통(또는 광대뼈 부위의 통증)이 있는 겁니다. 어린이들은 바이러스나 세균이 몸에 들어오면 열이 나기도 하고, 기분이 안 좋거나, 식욕이 줄거나, 토하거나, 피곤해 하기도 하며, 기침, 특히 잘 때 발작적인 기침을 하기도 하지만 이런 증상은 2차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에 ‘진단이 남발되고, 항생제는 더욱 남용되는 질병’이라고 한 건 무슨 뜻일까요? 뭘 잘못하고 있다는 걸까요?

 

일단 증상을 다시 한 번 봅시다. 누런 코, 코막힘, 두통…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증상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감기 증상이지요. 부비동염이 아니라 감기만 걸려도 코가 막히고 누런 코가 나올 수 있습니다. 감기는 의학적으로 급성 비인두염이라고 합니다. 급성으로 코와 목에 염증이 생겼다는 소립니다. 그런데 부비동염도 증상이 같으니 실제로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부비동염이라고 하지 않고 ‘비부비동염’이라고 합니다. 비염(코감기란 뜻입니다. 알레르기 비염과는 다릅니다)과 부비동염을 정확히 구분하기도 어렵고, 별 의미도 없으니 그냥 같이 부르자는 뜻입니다. 가만, 별 의미도 없다니? 부비동염은 그래도 뼈 속 공간에 염증이 생긴 건데 항생제를 써줘야 하는 거 아니야? 예, 바로 이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비동염이나 감기나 마찬가진데 누런 코가 나오면 의사들이 부비동염이라는 진단을 선호하는 이유는 1) 우선 항생제 때문입니다. 의사는, 특히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거의 모든 환자를 볼 때 항생제를 쓸지 말지 고민합니다. 항생제를 남용하면 안 된다는 원칙과 환자가 나빠지면 안 된다는 불안을 저울에 올려 놓고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 관찰합니다. 감기에 항생제를 주는 것보다는 부비동염에 항생제를 주는 쪽이 마음이 더 편합니다. 2) 실질적인 요인도 작용합니다. 우리나라는 의료제도가 왜곡되어 있어 똑같은 환자라도 ‘감기’라고 진단하고 항생제를 주면 진료비를 삭감당하고, 잘못하면 부도덕하고 실력 없는 의사로 낙인 찍히기도 합니다. 3) 부모에게 설명하기도 좋습니다. 모든 부모의 눈에는 자기 자녀가 세상에서 가장 중한 환자로 보입니다. 밤새 기침하고 심지어 누런 가래를 한 사발이나 토해낸 아이를 들쳐 업고 달려왔더니 의사가 그냥 ‘감기’라고 하면 의심이 듭니다(화를 내는 분도 많습니다). 바로 옆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부비동염”이라는 어렵고도 심각하게 들리는 진단을 내리고 이게 바로 “축농증”이라고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줍니다. “축농증! 그 고질병이라는! 그럼 그렇지. 기침을 한 달은 했을 거야(사실은 4-5일 했습니다). 그나저나 이전 병원 의사는 뭐야? 축농증도 모르고…”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부비동염이면 반드시 항생제를 써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감염에는 바이러스 감염과 세균 감염이 있습니다. 바이러스에는 항생제를 쓰면 안 되고, 세균이면 항생제를 써야 합니다. 문제는 증상이 비슷하다는 겁니다. 부비동염도 마찬가집니다. 바이러스 감염이라도 누런 코가 나오고 두통이 심할 수 있습니다. 고열이 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치료 원칙은 이렇습니다. 일단 해열진통제로 통증을 가라앉히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앞에서 바람이 통해야 한다고 했지요? 코막힘을 해소해주면 부비동에 고여 있던 점액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통기가 좋아지면서 대개 저절로 좋아집니다. 코막힘에는 알레르기에서 설명했던 충혈제거제(일주일 이상 쓰면 안 됩니다)와 국소 스테로이드가 제일입니다. 조금 큰 아이들은 식염수로 콧속을 세척해주는 방법을 함께 쓰면 좋습니다. 한쪽 코에 식염수를 주입하여 목을 통해 다른 쪽 콧구멍으로 흘러나오게 하는 방법입니다. 어려울 것 같지만 아주 쉽습니다. 초등학생 이상이면 할 수 있습니다. 약국에 가보면 주사기나 병 모양의 키트가 나와있습니다. 코 세척은 알레르기에도 효과가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점액이 묽으면 아무래도 잘 흘러나오겠지요? 그래서 점액용해제라는 약을 씁니다만, 이 약은 물을 충분히 마시지 않으면 효과가 없습니다. 그러니 물을 많이 마셔야 합니다. 예로부터 많이 써왔던 항히스타민제는 점액을 진득하게 만들어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알레르기가 있다면 모를까, 아니라면 쓰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항생제는요? 우선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쓰지 않습니다. 증상이 심한 경우에도 환자를 자주 병원에 오라고 해서 관찰할 수 있다면 쓰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항생제를 쓰지 않아도 60%는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입증된 사실입니다. 우리의 면역을 믿으세요. 결국 아주 심한 경우에, 병원에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환자에게만 항생제를 쓴다는 겁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의사가 뭐라고 하든 모든 부모는 자기 자녀가 가장 심하다고 믿지요. 항생제를 주지 않고 2-3일 후에 오라고 하면 바로 옆 병원으로 가버립니다. 그러니 의사와 부모의 행복한 합의하에 항생제가 남용되는 겁니다. 물론 욕은 의사만 먹지요.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식을 널리 알리고 어느 정도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일을 하라고 정부가 있는 거고요. 곧 선거가 다가오네요. 무슨 거창한 소릴 늘어 놓으며 이쪽저쪽 비위를 맞추기보다 꼭 해야 할 일을 책임 있게 해내는 정부가 들어섰으면 합니다. 너무 거창한 꿈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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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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