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사자와 세상 무거운 엉덩이
푸켓의 바닷가
‘바다를 가니, 안 가니’로 여러 차례 씨름이 오간다. ‘가기 싫다’는 이유를 백번 들어도 백번 이해할 수 없다. 푸켓까지 와 놓고 바다를 안 가겠다는 이유가 뭔데? 그럼 도대체 서울에 있지 왜 여기까지 온 건데?
세상 무거운 엉덩이
엉덩이 무거운 남자 보고 있소? 이 언니도 반해 버린 바다란 말이오!
바다로 산으로 들로 코에 바람 넣는 거라면 뭐든 달려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중 바다가 으뜸이다. 수영을 못 하는 나는 팔뚝에 어린이용 튜브를 끼고 파도타기 놀이를 한다. 간혹 성인 팔뚝에 달린 조그만 튜브를 보고 웃는 사람도 있지만 낄낄낄 웃으며 파도를 타다 보면 남들 시선을 신경 쓸 틈이 없다. 그렇게 나의 물놀이를 즐긴다. 매일 질리지도 않고 바다를 즐길 수 있는 ‘바다용 에너지’가 내 몸 어딘가에 비축되어 있다.
휴양지로 유명한 푸켓. 프라이빗 해변이 달린 고급 리조트에서 한 달을 머물 순 없는 노릇이니 섬 한가운데에 분리형 원룸의 신축 콘도를 구했다. 수영장과 헬스장을 이용할 수 있는 만족도 높은 숙소였지만 가까운 바다로 나가려면 오토바이를 타고 30분은 가야 한다. 남자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 전에 그 남자의 ‘세상 무거운 엉덩이’를 언급해야겠다. 언젠가 지구력은 최고이나 집중력은 제로인 자신을 셀프 디스하며 ‘학창시절에 나만큼 엉덩이가 무거운 애는 없었는데 공부는 왜 못했을까’라며 한탄조로 말했다. 연애 때 흘려 들었던 남자의 이런 성향이 결혼을 하고 여행을 하면서 깊은 빡침을 선사할 줄이야!
인정한다. 그 남자는 ‘세상 무거운 엉덩이’를 가졌다. 그래서 좋은 점부터 말해볼까? 의자에 앉아 인터넷으로 온갖 잡다한 정보를 습득하는 그는 모르는 게 없는, 그래서 트랜드에 민감한 사람이 됐다. 작은 결혼식부터, 세계 여러 도시에서 한 달씩 살아보고, 현지인과 집을 바꿔 사는 등의 범상치 않은 행보는 그의 예민한 촉수와 구글링에 의해 발견된 것들이다. 물론 그가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검색의 파편을 캐치해 내어 실천으로 옮기는 건 나이니 좋은 생각을 품었지만 실천과는 거리가 먼 그는 ‘세상 무거운 엉덩이’라는 불명예만 얻게 된 것도 사실이다.
‘바다를 가니, 안 가니’로 여러 차례 씨름이 오간다. ‘가기 싫다’는 이유를 백번 들어도 백번 이해할 수 없다. 푸켓까지 와 놓고 바다를 안 가겠다는 이유가 뭔데? 그럼 도대체 서울에 있지 왜 여기까지 온 건데? 숙소에서 인터넷이나 할 거면 굳이 푸켓이 아니어도 될 텐데 그 남자, 정말 맥 빠지게 하는데 뭐 있다. 오토바이 타고 가는 길에 코코넛을 사 주겠다느니, 내일은 에어컨을 종일 틀어 주겠다는 등의 사탕발림 조건들을 내걸고 겨우 남자의 허락을 구한다. 강력본드로 붙여놓은 남자의 엉덩이를 조금씩 떼어내며 사는 일, 많이 피곤하다.
하지만 나는 엉덩이 무거운 남자로 인하여 가장 많은 혜택을 보고 있는 사람이다. 다음 날, 구글신과 영접한 남자는 푸켓의 가장 멋진 해변 리스트를 뽑아온다. 마음만 급해 정신이 혼미해진 내 옆에서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사전 정보를 철저히 수집하는 남자. 그래서 지구력은 최고이나 집중력은 제로인 남자와 지구력은 떨어지나 집중력만은 충만한 여자가 만나 ‘대체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나 보다.
바다 가자. 바다.
집 밖에 이런 바다가 있어도 나가냐 마냐로 아웅다웅
‘멍 때리기’대회가 있다. 풀밭에 앉아 그저 멍 잘 때리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인데, 나는 엉덩이 붙이고 있기라면 인간계 1등 먹을 자신이 있다. 엉덩이가 무거운 나는 신발에 흙 묻히는 게 싫다. 여행 짐을 싸고 문밖을 나서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도시를 거닐다가 카페에 앉아 에어컨 바람 쐬며 책을 읽거나 수다를 떠는 게 나의 여행 방식이다.
태국 푸켓은 지하철은 물론이고 대중교통도 마땅치 않아 스쿠터를 타고 다녀야 한다. 분명 도시는 아니고 번화한 읍내가 많은 섬이라고 하면 좋을까? 실제로 1967년 연륙교가 생기기 전까지 푸켓은 섬이었다. 해변 마을과 조금만 멀어지면 가까운 슈퍼를 가려고 해도 스쿠터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 외출 준비를 해야 하니 일상이 여행 같은 곳이자 일상에 지친 이들이 휴양지로 찾는 곳이기도 하다. 안다만 해 the Andaman Sea의 에메랄드빛 파도를 배경으로 해변을 따라 풀빌라 리조트가 즐비하다. 바닷가 식당에 앉아 막 잡아 올린 신선한 해산물로 요리한 맛있는 태국 음식을 실컷 맛볼 수 있다. 백사장에 앉아 노을 지는 바다를 보고 있자면 이곳이 천국인가 싶은 착각마저 든다. 그렇다. 푸켓은 시작부터 끝까지 바다를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이곳은 내 취향이 아니다.
집 밖을 나서야 하는 그 여자와 집 안에 머물러야 하는 내가 아웅다웅할 수 밖에 없는 곳이기도 하다. 섬이니 온통 바다이다. 늘 덥고 습해서 물놀이하기엔 최적의 환경이다. '바다 가자. 바다. 바다 가자. 바다.' 자기가 무슨 바다사자인 줄 아는지 물놀이 좋아하는 그 여자는 아침마다 바다에 가자고 노래를 부른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발에 흙 묻히는 게 싫고, 운동 외에 땀 흘리는 일은 더욱 싫어한다. 푸켓은 에어컨이 없는 곳은 모두 발에 흙이 묻고, 집 밖에 나서기 무섭게 옷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슬리퍼 끌고 갈 수 있는 숙소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싶다. 해변을 옆에 두고 달리길 꿈꾸지만 역시 숙소 안 피트니스센터의 트레드밀에서 뛰는 게 제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바다로 향할 수밖에 없던 것은 에어컨을 켜주지 않는 그 여자의 고집 때문이다. 아침 해가 뜨면 이내 건물이 달궈진다. 햇볕을 받은 만큼 집안은 불타오른다. 에어컨을 켜야 하지만 ‘에너지 절약’, ‘환경 운동 실천’을 외치며 그 여자는 에어컨 리모컨을 빼앗는다. 그리고 ‘바다 가자. 바다. 바다 가면 안 덥다.’로 노래가 이어진다.
살기 위해 집을 나선다. 스쿠터를 타는 동안 헬멧 안에서 땀이 흘러도, 백사장의 모래가 내 발가락 사이까지 침범해도 바다로 뛰어들면 살 만했다. 모두 빼앗겨도 엉덩이의 의지만은 지키고 싶었다. 수영하지도 않고, 물장구를 치지도 않고 그저 튜브 하나 붙잡고 가만히 물속에서 숨만 쉬었다. 사실 물에 들어가면 나도 좋았다. 거기까지 가야 하는 불편한 과정이 번거로울 뿐이다. 그 여자는 그런 나를 보고 물속에서도 엉덩이 무겁다고 놀려 댔지만 ‘내 엉덩이 보고 뭐라 하지 마라. 수치심 느낀다 말이다.’
두 사람은 늘 함께 하는 부부작가이다. 파리, 뉴욕, 런던, 도쿄, 타이베이 등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도시를 찾아다니며 한 달씩 머무는 삶을 살고 있고 여행자인 듯, 생활자인 듯한 이야기를 담아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를 썼다.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일상을 여행하듯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