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흔한 여자 인생?! 그런 게 어디 있죠?
감사함과 미안함이 공존하는 워킹맘과 대리 육아의 삶의 시작 『82년생 김지영』를 읽고
이 세상에 당연히 여자가 해야 할 일, 당연히 남자가 해야 할 일의 경계가 없기를, 누군가가 억울하게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지금 이 순간, 김지영씨처럼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빛나는 순간이 올 수 있기를 소망한다.
워킹맘이 된지 이제 곧 1년이 되어간다. 작년 10월, 얼떨결에 엄마가 되고 짧은 4개월의 휴가 후 이른 복귀를 선택했다.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지만, 아직은 내 이름을 버리고 싶지 않았고, ‘경단녀’라는 타이틀을 얻고 싶지 않았다. 그 덕에 여전히 왕성한 사회 생활 중이던 나의 엄마가 기꺼이 딸 대신 육아인의 길에 들어섰다. 감사함과 미안함이 공존하는 워킹맘과 대리 육아 삶의 시작.
워킹맘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건,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게 가장 어렵다는 거다. 물론 육아의 8할은 엄마가, 집안일의 상당 수는 신랑이 도와주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내 시간 갖기가 참 어렵다. 즐겨 읽던 책 한 권 읽기도 힘들고, 특히 그 좋아하던 복잡한 류의 소설책은 왜 그렇게 머리에 안 들어오는지. 그렇게 소설책만큼은 ‘나중에 읽자’며 뒤로 미뤄두었던 1년.
그러다 문득, 무언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내 기준에서의) 책 전문가, 옆 자리에 앉은 대리님께 SOS를 청했다. 가볍게 읽기 좋은, 쓱 읽히는 책 한 권을 추천해달라고 말이다. 대리님은 그 자리에서 바로 나에게 책 한 권을 쥐어줬다. 『82년생 조남주』가 바로 그 책이었다.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갔다. 복잡하지 않은 문체도 그러했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내용이 와 닿았다. 지금 이 시대의 흔한 30대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이었다. 82년생 김지영이라지만, 85년생의 나도, 좀 더 나이든 누구라도 이 사회에서 ‘여자’로 태어나면 으레 겪게 되는 편견과 그 안에서 버텨내야 하는 현실, 때로는 적당히 포기해야 하는 여자의 삶이 담겨있었다.
또한, 김지영 씨의 엄마에게서 나의 엄마의 모습을 보며 그 역시도 참 마음을 치게 했다. 6남매의 둘째 딸, 큰 오빠의 공부를 위해, 어린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그 먼 전라도에서 스무 살이 되던 해 일찌감치 서울로 올라왔던 엄마. 외할머니 말로는 엄마가 참 총명했고, 똑똑했고, 그림도 잘 그리며 재주가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게 못내 후회스럽다고도 하셨다. 그 아쉬움이야 나의 엄마는 더 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자신 딸이 하고 싶어하는 걸 항상 응원했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나는 다행이 하고 싶은 공부, 하고 싶은 여행 다 해가며 적당히 이기적으로 컸다.
거기다 내 커리어를 위해 아이까지 엄마에게 턱 하니 맡기고 이렇게 직장 생활도 하고 있으니, 여전히 이기적으로 살고 있다고 해야 할까? 이런 얘기를 할 때면, 나의 엄마는 그저 본인의 선택이니 걱정 말고 네 일이나 잘 하면 그걸로 된 거다라고 말하곤 한다.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모든 걸 포기한 김지영씨보단 내가 나은 삶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아이는 다행히 할머니 손에서 더 없이 건강하고 밝게 훨씬 잘 크는 중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김지영 씨처럼 적당히 포기하고 타협하며 살아가는 순간이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선택이 기꺼이,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 세상에 당연히 여자가 해야 할 일, 당연히 남자가 해야 할 일의 경계가 없기를, 누군가가 억울하게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지금 이 순간, 김지영씨처럼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빛나는 순간이 올 수 있기를 소망한다.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저 | 민음사
서민들의 일상 속 비극을 사실적이면서 공감대 높은 스토리로 표현하는 데 재능을 보이는 작가 조남주는 이번 작품에서 1982년생 '김지영 씨'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고백을 한 축으로, 고백을 뒷받침하는 각종 통계자료와 기사들을 또 다른 축으로 삼아 30대를 살고 있는 한국 여성들의 보편적인 일상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관련태그: 여자, 워킹맘, 대리 육아, 82년생 김지영
철저한 프리덤 속에 살던 ‘유여성’에서 ‘유줌마’의 삶을 살며 본능을 숨기는 중이다. 언젠가 목표하는 자유부인의 삶을 꿈꾸며.
예스24 홍보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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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성과 다양성, 참신성을 기치로 한국문학의 미래를 이끌어 갈 신예들의 작품을 엄선한 「오늘의 젊은 작가」의 열세 번째 작품. 서민들의 일상 속 비극을 사실적이면서 공감대 높은 스토리로 표현하는 데 재능을 보이는 작가 조남주는 이번 작품에서 1982년생 '김지영 씨'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고백을 한 축으로,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