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주 “김지영 씨에게 발언권을 줬으면 해요”
『82년생 김지영』 펴내 더 많은 보상과 발언권이 주어져야 마땅한 사람
이왕이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많이 언급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요. 요즘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으니, 역차별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하는데요. 사실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의 현실적인 이야기. 어쩌면 소설의 소재로는 썩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조남주 작가의 세 번째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픽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사실적이다. 내가 겪지 않았더라도 필히 목격했을 에피소드가 잇따라 등장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세 살 많은 남편과 딸아이와 함께 서울 변두리의 한 대단지 아파트 24평형 전세로 거주 중인 34세 주부 김지영 씨. 꽤 무난하게 살아온 그녀가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이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김지영 씨는 갑자기 시댁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친정 엄마로 빙의해 “아이고 사부인, 사실 우리 지영이 명절마다 몸살이에요”라고 말하고, 남편의 전 애인으로 빙의해 “그래, 너 좋은 남편인 거 다 아니까 지영이 이름 좀 그만 불러라”라고 보챈다.
짧은 경장편 소설. 극단적이지 않은데 통쾌한 문장들이 튀어나오니 독자는 김지영의 삶에 풍덩 빠져든다. 괜한 말싸움을 하기 싫어 눈을 감아버렸던 여자, 엄마, 아내, 딸, 여성 직장인 김지영의 과거가 별안간 익숙하게 다가온다. 작가는 소설을 쓰는 동안 참 즐거웠다고 말했다. 아직도 눈물이 나는 장면이 있지만 스스로 위로 받은 작품이었다고 한다. “자꾸만 김지영 씨가 어딘가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작가의 말을 읽지 않아도, 독자는 안다. 대한민국에 김지영 씨가 얼마나 많은지, 말하는 존재로 살지 못하는 여성이 얼마나 많은지. 실제 ‘지영’은 1982년에 태어난 여아 중 가장 많이 등록된 이름이다.
조남주 작가는 현재 여중생들이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있다. 평일에는 초등학생 딸아이와 함께 집을 나선다. 딸이 수업을 듣는 시간에 엄마는 소설이 될 재료를 찾고 글을 쓴다. ‘맘충’이라는 용어가 사라지길 바라며, 엄마가 아닌 이름으로도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길 바라며.
계속 마음 한 구석에 쌓여왔던 것
이 소설의 출발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쓰게 된 작품인가요?
재작년부터 여성혐오에 관한 콘텐츠가 눈에 많이 보였어요. 젊은 여성들이 정말 혐오를 당할 만한 사람인가? 그런 삶을 살았고 살아왔나? 의문이 들었고 아니라는 확신이 있어서 그들의 삶을 정리하고 싶었어요.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작년 9월부터였고요.
「여자라고 전교 회장 못 하나요」 등의 신문 기사를 비롯해 「인구 동태 건수 및 동태율」 「출산 순위별 출생 성비」 같은 통계청 자료가 소설에 등장합니다. 무척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에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도 들었어요. 집필을 위해 취재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소설을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취재를 하진 않았어요. 작년에 여혐이나 페미니즘 사건이 터졌을 때, 제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데이터를 모아놓긴 했고요. 소설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제가 실제로 겪은 것들도 있어서 취재가 굳이 필요하진 않았어요. 한국 여자라면 누구나 경험하거나 간접적으로나마 봤을 이야기니까요.
주인공 ‘김지영’이 놓인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해본다면 불행하다고만 볼 수 없어요. 꽤 괜찮은 남편과 결혼했고 경제적으로 어렵지도 않아요. 사람들은 김지영에게 ‘그 정도면 살만한 팔자’라고 말할지도 몰라요.
맞아요. 굉장히 극적인 사건을 겪은 것도 아니고 시댁이나 남편도 괜찮은 편이에요. 일부러 김지영 캐릭터를 이렇게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맘충이나 여성혐오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극단적인 사례”라고 치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에요. 일부가 아닌 사례를 다루려다 보니, 평범보다는 조금 괜찮은 상황의 인물을 만들었어요. 많은 사람이 여성이 불합리한 일을 겪을 때, “그건 지역 차이야, 학벌 때문이야, 경제력 때문이야”라고 말하잖아요.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으면 했어요.
소설을 읽다 보면 나의 상황, 또 주변인의 상황과 김지영의 처지를 비추어보게 됩니다. 작가의 말에 “김지영이 답답하고 안쓰럽다”고 쓰셨는데요.
김지영 씨가 겉으로 자기를 막 표현하고 말하는 인물이 아니잖아요. 사실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성격적인 부분도 있었겠지만 내가 겪은 일이 차별인가? 불평등인가? 자각하지 못한 부분도 있고요. 여성 스스로도 자각하기 전에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지내는 동안 뭐가 답답한지도 모르는데, 어느 순간 눈이 딱 떠지고 나면 억울하고 답답하죠.
특히 울컥했거나 감정이입이 많이 된 장면이 있었나요?
김지영 씨가 공원에서 ‘맘충’이라는 말을 듣고 남편에게 말하는 부분이 그랬어요. 쓰면서도 울었어요. 제가 써놓고 제가 이러는 게 좀 웃기지만, 지금도 그 부분을 읽으면 눈물이 나요. ‘맘충’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남편 돈 쓰고 다닌다, 집에서 놀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어요. 그럴 때면 김지영 씨와 똑같은 생각을 했지만 말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어요. 말을 건넬 틈이 없을 때도 있었고, 모임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넘기기도 했고요. 그게 계속 마음 한 구석에 쌓여왔던 것 같아요.
엄마를 뜻하는 ‘맘(Mom)’과 벌레를 뜻하는 ‘충(蟲)’의 합성어인 ‘맘충’은 제 아이만 싸고도는 일부 몰상식한 엄마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뚜렷한 어원을 찾기 어려운 말인데요. 막무가내로 이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느껴집니다.
민폐를 끼치는 엄마들에게 하는 말이라며, 그렇지 않은 엄마를 두고는 ‘맘충’이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이런 용어가 있음으로 인해서 누군가는 행동에 제약을 받아요. 아이 목소리의 데시벨이 몇까지 올라가면 맘충이라는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떤 사람은 아이가 조금만 시끄러워도 싫고, 또 누군가는 이해할 수도 있는 문제니까요.
‘1982년생 김지영’ 씨에 대한 보고서 형식으로 구성하셨어요. 김지영 씨를 상담해온 정신과의사의 이야기로 소설이 끝을 맺습니다. 처음부터 생각했던 결말이었는지 궁금해요.
보고서 형식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있었어요. 정신과의사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은 건, 글을 고치면서 추가한 부분이고요. 결국 정신과의사도 사례자 가족으로서는 김지영 씨를 이해하지만,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직장동료로 원치 않는다고 말하잖아요. 현실을 말해주고 싶었어요.
여성학자 김고연주 선생님의 작품 해설이 실렸습니다. 대개 소설은 문학평론가가 해설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요.
편집자님이 이 소설은 해설을 넣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가 해설이 다 있진 않은데,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이슈를 정리할 수 있는 분의 글을 받겠다고 하셨어요. 해설을 먼저 읽어 봤는데 너무 좋았어요. 김고연주 선생님이 “이런 세상에서 김지영의 회복을 바라야 할까?”라고 쓰셨잖아요. 저도 그 대답을 갖고 있지 않았는데요. 결국 김지영 씨가 치료될 문제가 아니구나, 김지영 혼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없겠구나, 생각했죠.
작가의 말에 “늘 신중하고 정직하게 선택하고,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김지영 씨에게 정당한 보상과 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다양한 기회와 선택지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쓰셨어요. 이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가 현실에서 불가능하니 이 문장 또한 낯설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이건 비단 여성 문제만은 아닐 거예요. 정말 신중하게 정직하게 선택해도 결과가 잘 나오지 않는 세상이잖아요. 이 소설을 쓰면서 자존감이 높아진 부분이 있어요. 제가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는 걸, 내 능력과 열정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소설을 쓰면서, ‘나 항상 열심히 살았는데 나에게 선택지가 너무 적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개인의 선택이지만 사회 문제이기도 한데요. 여자들이 결혼하기 싫어하는 가장 결정적 이유는 무엇으로 보시는지요?
맞벌이 가정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을 보면 남성이 40분, 여성이 3시간 14분으로(통계청, 2015 일,가정양립지표) 여성이 남성의 다섯 배입니다. 이 수치가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고 생각해요. 직장생활과 가사(육아)를 병행할 수 없는 구조에서 가사 노동이 여전히 여성의 책임으로 여겨진다면 여성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겠지요.
며칠 전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살림이 정말 싫다. 왜냐, 월급이 없으니까.” 할 말이 없더라고요.
수입이 많건 적건 있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소설을 쓰면서 들었던 생각 중에 하나인데요. 예전에는 내가 남편의 경제력에 기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남편이 나의 가사노동에 기대고 있다는 거예요. 제가 가사 일을 안 하면 남편이 입고 나갈 옷이 있나요? 없잖아요. (웃음)
김지영 씨는 오랫동안 참는 존재였어요. 오히려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의 희생에 대해서 ‘말하는 존재’였고요. 소설을 읽으면서 왜 오히려 세대가 역주행 할까, 싶었는데요. 여성 독자라면 필시 자신의 엄마를 떠올릴 것 같아요.
소설을 쓰면서 엄마 생각을 안 할 수 없었어요. 저희 어머니는 소설 속 엄마처럼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남자 형제에 비해 교육 혜택을 덜 받았지만 본인이 더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진 못했어요. 예전에 저는 엄마를 보면서 왜 이렇게 쉽게 현실에 주저앉았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소설을 쓰면서,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대로 사회생활을 안 해본 사람이 시골에서 농사만 짓다가 갑자기 서울에 와서 한 발을 내딛기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어요. 어쩌면 주어진 환경이 비슷했을지라도 할 말을 다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있어서 이런 엄마 캐릭터가 나온 것 같아요.
작가님은 실제 생활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털어내는 편인가요?
늦더라도 돌려서라도 말하려고 해요. 마음에 다 담고 참진 않고요. 다 기억하고 있다가 어떻게라도 말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내 문장으로 쓸 수 있는 이야기
서번트증후군에 걸린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귀를 기울이면』, 올해 6월 출간된 제2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고마네치를 위하여』도 현실과 밀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소설가로서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겠다는 의지가 있으신가요?
지금까지 출간을 약속하고 쓰거나 청탁을 받아 쓴 적이 없어요. 습작으로 갖고 있는 소설도 다 제가 쓰고 싶어서 쓴 소설이었고요. 예전에 책을 내고서 인터뷰를 했을 때, “그때 그때 생긴 질문들에 대해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제가 이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이상, 질문이 현실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세 권의 책이 나오면서 제가 느낀 건, 현실을 기반한 내용으로 소설을 쓸 때 제가 좋고, 출간으로도 이어진다는 사실이에요.
『82년생 김지영』도 투고한 작품인가요?
민음사에서 경장편 소설을 꾸준히 내고 있으니까요. 한 번 검토해봐 주시지 않을까 했어요.
문장에 대한 이야기도 여쭙고 싶습니다. 미사어구가 없고 굉장히 간결한 문장을 쓰시는데요.
첫 책을 내고 공백 기간 동안에도 계속 글을 썼어요. 투고도 하고 거절도 당했는데요. 그럴 때마다 내 문장이 문학적인 문장이 아니라서 그런가,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작가들의 책도 많이 읽고 쓰는 연습도 했는데요. 잘 안 되더라고요. 제가 내린 결론은 이거예요. 아름답고 문학적인 문장으로 쓰는 이야기가 있을 거고, 나는 내 문장으로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서 내 이야기를 써야겠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나요?
늘 대답을 잘 못하는 질문인 것 같아요. 평소에 문학보다는 인문, 사회 서적을 많이 읽는 편이에요.
소설 창작을 따로 배우진 않으셨나요?
없어요. 대학원이나 창작 교실을 다녀볼 마음이 있었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갈 시간이 없더라고요. 그냥 혼자 썼어요. 소설을 써보고 싶긴 했지만 막연했죠. 꼭 소설은 아니더라도 픽션인 내 작품을 쓰고 싶다는 예전부터 있었어요. 아마 방송작가를 계속했더라면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바빴을 테니, 소설을 쓰긴 어려웠을 것 같아요.
10년간 방송작가 일을 하셨어요. MBC <PD수첩>, <불만제로> 등을 만드시다 출산하면서 일을 그만두셨는데요. 아쉬움은 없었는지 궁금해요.
아이가 좀 크면 다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계속 유예를 했던 것 같아요. 경력 단절이 길어지면서 못 돌아가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출산 후에 간간히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지만, 방송작가는 방송국 직원이 아니니까요. 사실 첫 책을 냈을 때는 약력에 방송작가를 쓰지 않았어요. 그 때는 소설을 쓰는 일과 크게 관계가 없는 이력이라고 생각해서 안 썼는데, 두 번째 책에는 썼어요. 제가 가장 열심히 일했던 시기에 한 일이고, 저에게 중요한 가치관을 만들어줬고, 결국 이 시간을 거름 삼아 소설을 쓸 수 있었으니까요.
요즘 언론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방송작가 일을 했던 시기와 비교해본다면, 그 때는 원하는 정보를 공중파, 영향력 있는 언론에서 읽었다면, 지금은 그 언론에서 원하는 정보를 찾지 못하게 됐어요. 분명히 그 조직 안에서도 젊고 패기 넘치는 조직원들이 있을 텐데, 왜 이렇게 됐을까를 생각해보면, 개인 차원을 너머 한 조직의 정의감, 도덕성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사실이에요. 아무리 개인이 노력해도 되지 않는 시스템이 존재하니까요. 작게 생각하면 한 언론, 한 회사지만 크게 생각하면 우리 전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체 시스템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야 그 안의 세부 구성원들이 자기 목소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평소에 자료를 많이 찾아 놓는다고 하셨는데요. 최근에는 어떤 사건을 눈여겨보셨나요?
가장 최근에 정리한 자료는 이화여대 시위 관련 자료예요. 학내 투쟁의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물론 이 방식이 완벽한 대안도 아니고 모든 투쟁 현장에 적용될 수도 없겠지만, 참고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딸하고 기분 좋게 볼 TV프로그램이 없어요
초등학교 1학년생 엄마로 사는 요즘은 어떤가요?
학부모가 된다는 사실이 겁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몰랐던 아이의 모습을 알게 된 기간이 된 것 같아요. 욕심에서도 좀 벗어나 오히려 편안해진 것 같아요.
글 쓰는 시간을 정해 놓았나요?
약속이 없을 때는 딸아이 학교를 데려다 주면서 저도 나가요. 집에 있으면 청소라도 하게 되고 빨래라도 하게 돼서요. 최대한 밖에 나가려고 해요. 딸아이 학교 마치는 시간에 집에 들어 오고요. 저는 제가 소설가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책이 나왔기 때문에 책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지만, 제가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은 딸과 딸 친구 엄마들과 함께하니까요. 누군가 제게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전업주부”라고 말해요.
문단 활동은 거의 안 하시는 것 같아요. 최근 문단 내 성폭력 논란이 독자들에게 큰 실망감을 줬는데요.
출판계에 아는 사람이라곤 제 책을 내주신 편집자 분들 뿐이에요. 아는 작가도 없고 모임을 가본 적도 없고요. 책을 막 냈을 때 터진 사건이라 더 관심을 갖고 볼 수밖에 없었는데요. 나 역시 과거에 성폭력을 목격했음에도 간과했거나, 2차 가해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이런 사건이 터졌을 때, 왜 수치심과 반성마저도 여성의 몫인가, 화가 났고요. 하지만 예전에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던 문제가 공론화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억울해 하는 남성도 많아요. 주위를 둘러보면 실제 상식적인 남자들도 적잖이 있고요. 저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여자들이 읽어도 좋겠지만 남자들이 읽으면 더 좋겠다 싶었어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굉장히 편협하고 가부장적인 남자들도 많이 보지만, 적어도 내 가정 안에서는 합리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하는 젊은 아빠들도 많아요. 저는 이왕이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많이 언급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으니, 역차별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하는데요. 현실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입장, 생각을 발언하는 여성들이 ‘역차별’이라고 대꾸하는 현실에 대한 인식을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이 정도면 나아졌지, 예전보다는 낫지’라고 생각하면 자꾸 주저앉게 돼요. 아직 다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면 하고 저도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소설의 효용을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삶을 확장하는 것? 물리적으로, 시간적으로, 심리적으로 내가 닿지 못하는 곳까지 경험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아요. 소설을 통해서 나 자신을 더 깊게 들여다볼 수도 있고, 타인을 이해할 수도 있고요. 저는 이런 이유에서 소설을 읽어요.
만약 지금 방송작가 시절로 돌아가. 어떤 아이템도 취재해서 방송할 수 있다면, 어떤 주제를 다루고 싶나요?
여자들끼리 잘 먹고 잘 사는 얘기요. 여자들만으로 이루어진 회사, 학교, 취미모임, 사회단체 등이 어떻게 운영되고, 의사결정을 하고, 신뢰를 쌓아가고, 사회와 소통하면서 세상을 건강하게 변화시키는지 방송을 통해 전달하고 싶어요. 남자 멤버들끼리 모험을 즐기고, 요리하고, 토론하고, 두뇌싸움 하고, 어쩌다 나오는 여자 게스트들은 그들의 파트너로만 소비되며 얼굴 품평, 몸매 품평 당하고 애교 강요당하는 방송들이 이제 지겹습니다. 딸하고 기분 좋게 볼 TV프로그램이 없어요.
작가님이 꿈꾸는 세상, 세계는 어떤 사회인가요?
누구에게나 주거, 교육, 의료가 보장되는 사회를 기대해요. 사실 너무 기본적인 조건이지만. 요즘 우리나라도 그렇고, 미국 대선 결과도 너무 절망스러운 부분이 많은데요. 그래도 전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믿는 사람이라서요. 자꾸 한숨이 나오지만 결국 가야 할 방향으로 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절로 되는 건 아니고 그 방향으로 이끄는 힘을 키워야겠죠.
앞으로 꿈이 있으신가요?
아직 마흔도 안 됐는데, 사는 게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전업주부가 될 줄도 몰랐고, 소설을 쓰게 될 줄도 몰랐고, 이렇게 인터뷰라는 걸 하게 될 줄도 몰랐는데 그렇게 됐어요. 그 중에는 싫지만 해야 하는 일도 있었고, 정말 하고 싶은 일도 있었는데, 어쨌든 제 최선을 다했어요. 제가 지금 작은 성과라도 이룬 게 있다면 그 결과라고 생각해요. 구체적인 꿈을 향해 노력하는 방식보다 주어진 대로 열심히 하는 방식으로 살았고, 당분간은 그래야 할 것 같아요. 크던 작던, 나와 맞던 안 맞던,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이를 키우는 일과 병행할 수 있는 한, 뭐든 해보려고 해요.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죠?
‘82년생 김지영’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떤 사람일까요?
오늘을 살고 있는 평범한 대한민국 여성, 더 많은 보상과 기회와 발언권이 주어져야 마땅한 사람이요.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저 | 민음사
서민들의 일상 속 비극을 사실적이면서 공감대 높은 스토리로 표현하는 데 재능을 보이는 작가 조남주는 이번 작품에서 1982년생 '김지영 씨'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고백을 한 축으로, 고백을 뒷받침하는 각종 통계자료와 기사들을 또 다른 축으로 삼아 30대를 살고 있는 한국 여성들의 보편적인 일상을 완벽하게 재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