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글 읽기다
흔하지만 옳은 대답
언어와 글의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말을 잘 하기 위해서 글을 읽을 필요는 없다. 학교를 다니지 않은 사람도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러나 글쓰기는 훈련이다. 배우지 않고 글을 잘 쓸 수는 없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써요?” “영작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흔히 듣는 질문이다. 흔한 질문에 흔하지만 옳은 대답을 하자면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필자는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영어를 잘 쓰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필자가 지금까지 보아온 글 잘쓰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많이 읽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2007년인가 어떤 신문의 신춘문예에 당선된 단편소설 중에 ‘달려라, 그만’이란 아주 흥미로운 작품이 있었다. 심사평에 따르면 당시 심사위원들의 압도적인 관심을 끈 작품이었다고 한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가가 절대로 국문과 출신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고. 실제로 이 당선자는 대학을 가지 않은 고졸 출신의 도서관 기숙자(?)였다. 작가의 당선 소감에 의하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매뉴얼 빼고는 거의 모든 소장 도서를 읽었다고 한다. 이 신춘문예 당선 작가뿐 아니라 거의 모든 작가들이 놀라울 정도로 많은 책을 읽을 것이다. 문예창작과 학생들도 쓰기 전에 읽을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마크 트웨인이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재미있는 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 아침에 사무실에 나와 커피를 느긋이 마시면서 생각을 하지만 무엇을 써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타자기를 천천히 움직여 철자 T를 쓴다. 점심시간이 되도록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점심을 먹고 와서 또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T자 뒤에다 h를 쓴다. 또 계속 상상력을 발휘해보지만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른 저녁을 먹고 다시 사무실에 와서 Th뒤에다가 e를 덧붙인다. 마침내 흰 종이 위에 The라는 한 단어가 생겨난다. 이 뒤에 무엇을 쓸 것인지는 아마도 다음 날 떠오르겠지, 하며 트웨인은 집으로 돌아간다.
그는 왜 그 많은 단어들 중에서 하필이면 정관사 The를 썼을까? 정관사 The가 영어의 50만 단어 중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일단 그걸 써두면 다음에 어떻게든 스토리를 전개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어려움을 고백한 글치고는 참으로 생기발랄하고 기발한 글이다. 필자가 이 글을 읽은 것이 벌써 30년 전인데도 아직 생생하게 생각나는 것을 보면 굉장히 인상적인 글이었다.
필자가 대학생이 되기 전 무렵에 전국의 학생들이 필독서처럼 본 영어 교재가 『성문종합영어』라는 것이었다. 20개위 장으로 구성된 교재에 각 과에 최소 2개씩의 명연설문이나 글이 포함된 책이었다. 케네디, 마틴 루터 킹의 연설문 등을 포함해서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문학가의 글까지 다양한 글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참으로 학습자에게는 불친절한 책이었지만, 그러한 명문장들을 암기하고 쓰고 하면서 영어 공부를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필자 세대 이전의 많은 사람들은 영어 문장을 많이 외고 있는 편이다. 70이 넘은 분들도 영시나 명문 몇 개 정도는 언제든 암기하고 있다가 젊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요즘은 문장을 외는 노력보다는 생활 영어를 훈련하는 방향으로 영어 교육이 바뀌어서 한편으로는 씁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어야 한다. 영어를 잘 쓰기 위해서는 영어를 많이 보아야 한다. 언어와 글의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말을 잘 하기 위해서 글을 읽을 필요는 없다. 학교를 다니지 않은 사람도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러나 글쓰기는 훈련이다. 배우지 않고 글을 잘 쓸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읽지 않고 글을 잘 쓰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좋은 글귀를 암기하고, 다양한 글을 보면서 훈련을 하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양에서 학교를 grammar school이라고 불렀던 이유도 처음에는 글 쓰는 법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서당에서 천자문을 가르친 이유는 글을 익힘으로써 글 쓰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스트렁크 역시 『글쓰기의 요소』에서 다양한 문장들을 예로 보여주고 있다. 좋은 글의 본보기, 나쁜 글의 본보기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모방해야 할 전범과 모방하지 말아야 할 보기들을 보여주고 있다. 표본들은 물론 너무나 적다. 따라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다양한 글을 읽고, 흉내 내고, 내 것으로 소화해야 할 것이다.
정민의 『미쳐야 미친다』에 보면 글 읽기를 무척이나 좋아한 어떤 양반이 하인에게 시 한수를 지어보이면서 자신의 시 창작 실력이 어떠냐고 자랑을 했더니 하인이 조심스럽게 ‘주인님, 그건 주인님이 지은 것이 아니고 누구누구의 시입니다’라고 이실직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양반은 기억력이 나빠서 한 책을 십만 번 이상씩 읽기 때문에 옆에 따라다니던 하인조차 그 시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기억력이 나쁜 그 양반은 너무 많이 읽어서 해당 작품이 마치 자신의 작품인양 느끼는 실수를 하기는 했다. 그러나 비록 그 양반이 창작자로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그 이름과 이야기가 남은 이유는 그의 노력 덕분이다. 좋은 작품을 수만 번씩 읽어서 마침내 그 글이 자신의 글인지 남의 글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은 좋은 글쓰기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스트렁크 역시 영문학자로서, 글을 많이 보았고, 예리한 관찰력으로 작품을 분석하고, 학생들의 작문을 수도 없이 살펴보았다. 그렇기에 글쓰기의 정수를 써낼 수 있었다. 필자는 글을 많이 보는 것만이 좋은 글을 쓰는 충분조건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을 많이 읽는 것이 필요조건임은 분명하다. 남의 글을 전혀 읽지 않고 훌륭한 혹은 유명한 작가가 된 경우를 생각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국내 최고의 촘스키 전문가.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논문 집필 당시 세계적 언어학자인 노암 촘스키에게 논문 지도를 받으며 그의 제자로 이름을 알렸다. MIT와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 방문학자로 활동했고, 중앙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현재는 오르고라는 필명으로 활동한다. 저서로는 『한국어가 사라진다면』 (공저), 『언어의 비밀』 , 『그램그램 영문법 원정대』 시리즈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촘스키, 끝없는 도전』, 『번역과 번역하기』, 『영어에 관한 21가지 오해』, 『최소주의 언어학』 등이 있다.
<윌리엄 스트렁크> 저/<장영준> 역14,850원(10% + 5%)
『글쓰기의 요소(Elements of Style)』는 영어의 기본을 오직 18가지 핵심 원칙으로 제시한 영어 학습서다. 1918년 초판이 출간되어 약 100년간 1,000만 부 이상 팔린 전설의 책으로, 영미권 사람들이 잘 쓴 영어와 잘못 쓴 영어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통용되고 있다.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