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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글쓰기, 공부의 결과가 아닌 과정”

부제: 『창작과 비평』 창간 50주년 기념 ‘공부의 시대’ 연속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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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독서란 텍스트를 통해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읽고, 그것에 공감하거나 대립하면서 세계와 나를 이해하는 나만의 시야와 태도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 써볼 때 진정한 공부가 됩니다.”

1월 28일, 창비 서교빌딩 지하 2층에서 전 복지부 장관이자 현재는 ‘지식소매상’으로 돌아온 유시민 작가의 특강이 열렸다. 대중들에게는 정치가로 더 알려졌지만, 유시민 작가는 사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어떻게 살 것인가』 등의 저서를 통해 작가로서의 커리어도 튼튼히 쌓아온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이번 강연에서 ‘공부와 글쓰기’라는 주제로 그의 이야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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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독서, 그리고 글쓰기


유시민 작가는 먼저 이번 특강의 주제어인 독서, 공부, 글쓰기 각각에 대해 정의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독서란 다른 사람이 자기 생각과 감정을 문자에 심어 놓은 것을 읽고, 그것을 이해하고 공감하거나 때로는 반박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것이다. 공부란 이렇게 독서를 통해 얻게 된 그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세계와 인간, 더불어 자기 생각과 감정까지 이해하는 자기 나름의 시각과 태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글쓰기는 그러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문자에 심는 일이다. 그는 책 속 글쓴이의 생각과 감정을 읽지 못하면 독서의 의미가 없다고 역설하며 구체적으로 자신이 책을 어떻게 읽고 진정한 독서의 경험이란 어떤 것인지 사례를 통해 설명을 이어갔다.

 


텍스트를 매개로 한 감정의 교류


유시민 작가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속 구절을 예시로 들며 자신의 독서 중에 찾아온 특별한 순간들을 소개했다. 그가 인용한 『코스모스』의 구절에는 지구 둘레를 최초로 측정한 사람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었다.


“이 부분은 칼 세이건의 생각과 감정이 압축되어서 드러나 있는 단락입니다. 이 문장들은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이 정보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문장들에 칼 세이건이 이 정보를 처음 알았을 때 느꼈던 감정이 드러나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자 칼 세이건에게 이 정보는 특별한 지식이 아닐 것이지만, 저는 아마 그가 어린 시절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즉 소년 칼 세이건이 느꼈을 충격이 이 단락에 드러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자가 아닌 제가 마흔 넘어서 느꼈던 이 감정은 아마 열 살 소년 칼 세이건의 감정일 것입니다. 저는 과학자 칼 세이건이 아니라 과학 소년 칼 세이건에게 감정 이입을 한 것입니다. 아마 제 과학 지식이 소년 칼 세이건의 그것과 비슷해서 그랬던 것이겠죠.”

감정을 직접 담은 글도 아니며 어떤 논리적 추론의 과정을 담은 글이지만, 유시민은 그 글 뒤에 숨겨진 작가의 감정에 공감했고, 그때 비로소 의미 있는 독서를 경험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된 칼 세이건이 어린 시절의 감정을 담아 이 글을 썼고, 제가 이 글을 읽으며 ‘아 정말 좋아’하며 감탄하게 되는 이런 경험이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합니다. 과학 책을 통해 많은 과학적 사실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공부가 되는 것은 저자가 텍스트에 적어놓고 있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혹은 그것을 적었을 때 품었던 그 감정을 읽어내는 순간에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와 유대감과 동질감, 연대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텍스트에 담겨 있는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읽어내고 공감하는 것이 공부가 되는 진정한 독서의 경험인 것입니다.”


이어 유시민 작가는 이러한 공감과 이해의 과정 없이 단지 비판할 거리를 찾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은 어떠한 발전도 없는 독서라 지적했다. 비평이라 하는 것은 이렇게 단지 비판 거리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우선 그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독서의 과정에서 텍스트를 통한 감정의 교류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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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그만두기까지


“책에서 얻게 된 정보와 지식, 감정을 참고해서 내가 세상과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정하게 됩니다. 어떤 책을 읽고, 그 책을 어떻게 읽었느냐에 따라 생각과 태도가 바뀝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위인전을 많이 읽었습니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고 심지어 목숨을 바치며 희생한 분들이 훌륭하다고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저도 모르게 세상의 일과 나의 일을 별로 구분하지 않는 문화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세상의 일과 나의 일을 구분하는 것이 훌륭하지 않다고 외부 세계를 대하는 태도를 형성해왔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태도의 연장 위에서 오랜 시간 데모를 했고, 정치에 참여해왔습니다.”


이어서 유시민 작가는 자신이 현실 정치에 참여해왔던 이력과 그 과정에서 겪었던 좌절감을 이야기했다. 그런 좌절 속에서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으며 느낀 새로운 감정과 생각들을 담아낸 책이 바로 『청춘의 독서』다. 그 과정에서 그는 똑같은 텍스트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세 번 낙선하며 정치계를 은퇴하려 고민하고 있을 때 그를 위로해주었던 것들도 독서를 통해서다. 유시민 작가가 이제 정계에서 은퇴하며 자기 삶의 방식을 바꾸려고 할 때, 책들은 그에게 일종의 위안이 되어 그의 선택을 지지해주었다고 한다. 물론 그것이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는 비로소 그 구절들을 통해 자신이 정치가로서 대중들에게 선택받지 못했다는 결과를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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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중요성


이어 유시민 작가는 독서와 공부의 경험을 토대로 한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독서를 통해 구축된 자기 생각과 감정들을 직접 글로 써보아야 그 생각과 감정들이 진정으로 ‘자기 것’이 되기 때문이다.


“문자로 표현하기 전까지의 내 생각과 감정들은 진짜 나의 것이라는 증거가 없습니다. 『사피엔스』라는 책을 읽어보면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인류 종들을 제치고 가장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지 혁명의 결과라고 합니다. 즉 언어를 말합니다. 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믿는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을 기반으로 수많은 사람이 협력체계를 만들고 공동행동을 합니다. 신, 인권과 같은 것은 우리의 믿음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인지 혁명의 요체가 바로 언어입니다.”


즉, 우리는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언어라고 믿지만, 사실 생각과 감정은 언어와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언어라는 체계가 없다면 어떤 생각과 감정도 표현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떤 생각과 감정이 진정한 자신의 것이 되게 하려면 언어로 표현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두루뭉술하게 지나가는 생각과 감정의 덩어리들을 언어화할 때 그것은 비로소 나의 것이 된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공부의 결과로 생기는 능력이 아니고, 글쓰기는 공부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리하자면 독서를 통한 공부란 텍스트를 통해 타인의 감정, 지식, 생각을 읽고 그것과 교감하고 공감하고 대립하는 과정이자, 이와 동시에 내가 세계와 나를 이해하는 나만의 시야, 접근법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글쓰기라는 중요한 단계를 놓치면 안 됩니다. 각각의 공부의 수준에서만 그 수준의 글쓰기가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매 수준에서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표현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내 생각과 감정이 되고 장기 기억장치 속에 보관됩니다.”


마지막으로 유시민 작가는 책을 읽다가 어떤 감정의 동요에 멈칫하게 되는 순간들을 자주 경험하는 것, 그리고 그 순간들을 어떤 식으로든 글로 남기는 것이 바로 공부의 비법이라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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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질문과 답변


Q. 기자를 준비하는 학생입니다. 저널리즘 글쓰기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나요?


A. 기자의 글쓰기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저널리즘 글쓰기의 특징은 자신이 그 기사나 칼럼 안에 전달하는 정보와 견해가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가를 항상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글쓰기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권력에 휘둘리지 않으며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 판단력이라고 생각합니다.


Q. 작가님은 글도 잘 쓰시지만 달변가이시기도 한데, 말하기는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까요?


A. 글쓰기와 연관해서 말하면, 초고를 정확하게 쓰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말하기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말하기란 글과 달리 퇴고의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하기란 초고에 빗댈 수 있습니다. 말을 정확하게 잘하고 싶다면, 글을 쓸 때 초고를 비교적 정확하게 쓰려는 습관을 들이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토론의 기회를 자주 가지면서 계속 반복해서 말하는 연습도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하기보다 글쓰기에 익숙하도록 교육받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일부러라도 말할 기회를 자주 만들고 많이 말해야 합니다.


Q. 책을 읽으시면서 위로를 받았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저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해주어야 하는 순간에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작가님은 누군가에게 위로할 때, 어떻게 위로를 하시나요?


A. 저는 위로를 잘 안 합니다. (웃음) 사실 위로는 아주 친밀한 사이에서 오고 가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모르는 사이에서 위로 잘 못 받습니다. 감정의 교류가 가능한 사이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위로라고 생각합니다. 책은 이것과는 좀 다릅니다. 제가 위로받았던 책들의 작가들은 저를 모를 겁니다. 위로는 제가 느꼈던 거니까요. 그 작가가 저를 위로해준 것이 아니라 제가 위로를 받은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 위로받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 그러한 위로의 순간이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위로 받으려고 하지 마시고, 쉽게 위로해주려고 하지 마세요. 외로움이란 감정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견딜 만큼 견뎌보고, 도저히 못 견딜 때 위로를 구하세요. 지금은 피차간에 위로가 남발하는 사회가 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책을 통해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능력을 기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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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유시민 저 | 생각의길
글쓰기가 두려운 그대에게 ‘대표 글쟁이’ 유시민의 맞춤형 특강! 데뷔작 [거꾸로 읽는 세계사]부터 최신작 [어떻게 살 것인가] [나의 한국현대사]까지, 출간한 거의 모든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유시민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글쟁이’로 자리매김했다. 그 덕분에 저자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글 잘 쓰는 비결이 있나요?” “어떻게 해서 그렇게 잘 쓰게 되었나요?” 하는 질문을 수없이 들어야 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그 물음에 대한 유시민의 대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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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보경(예스24 대학생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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