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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쓰기는 관찰에서 시작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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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의 루비비통 가방에 실밥이 하나 뜯어져 있다면 과연 그걸 매장에서 팔 수 있을까? 99.99퍼센트 아니 100퍼센트의 루이비통 제품이지만 그 실밥 하나 때문에 전체를 망치는 것이다. 훌륭한 문장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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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천재 아닐까?’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늘 이런 생각이 든다. 소설가든 시인이든 에세이 작가든 글쟁이들은 정말 아는 것도 많고 상상력도 풍부하다. 필자가 작가와 기자 사이에서 느끼는 차이는 바로 이것이다. 기자와 작가가 둘 다 아는 것이 많지만 상상력에 관해서라면 역시 작가를 따를 사람이 없다는 것. 예외적인 사람도 있긴 하다. 일본의 다치바나 다카시가 그런 예라 할 수 있다. 동경대를 나와서 기자를 하다가 다시 동경대 문예과를 다니고 전문 작가가 된 사람 말이다.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이자 지성인이라고 소개되는 그의 책들 중 제목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이란 책이다. 간단히 말하면 독서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200권의 책을 참고한다고 한다. 참 일본인다운 철저함이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새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필자는 지금 좋은 글쓰기를 위해 관찰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알렝 드 보통도 『여행의 기술』에서 관찰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필자도 졸저 『안녕, 마그레브』에서 보통의 그러한 주장을 인용해두었다. 특히 여행기에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모든 훌륭한 글쟁이들은 사실 관찰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다. 다만 어떤 사람은 그것을 명시적으로 언급했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았을 뿐이다. 윌리엄 스트렁크도 관찰에 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는 구두점, 아포스트로피, 철자, 문장의 형식과 기능 등을 다룬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어떤 고매한 작가들은 이런 쪼잔한 문제들에 대해 못 본 체할 개연성이 높다. 너무나 사소하므로. 그런데 바로 거기에 좋은 글쓰기의 핵심이 있다.

 

문장을 잘 관찰하고 세상을 잘 관찰해보면 의외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디테일이 약하면 완벽하다고 할 수 없으니까. 고가의 루비비통 가방에 실밥이 하나 뜯어져 있다면 과연 그걸 매장에서 팔 수 있을까? 99.99퍼센트 아니 100퍼센트의 루이비통 제품이지만 그 실밥 하나 때문에 전체를 망치는 것이다. 훌륭한 문장도 그렇다. 아무리 명문이라고 구두점 하나를 잘못 쓰면, 띄어쓰기를 잘못하면, 그건 이미 훌륭한 문장이 아니다.

 

많은 학생들을 보면 애정의 부족인지 단순히 관찰력의 부족인지 모르겠지만 영어를 대충 보는 경향이 있다. 필자가 father의 뜻을 물어보면 대개 이런다. ‘아버지?’ 아니 그걸 중학생도 아니고 대학생에게 왜 물어보겠는가? 좀 관찰력이 있는 학생이 ‘신부?’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만약 이 단어가 동사의 위치에 있다면 뭐라 해야 할까? 그땐 ‘아버지가 되다, 아이를 낳다’ 정도의 뜻이 된다. English teacher의 뜻을 물어보면 역시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영어선생 아닌가요?’ 역시 내 대답은 똑같다. 그게 영어 선생이란 뜻이라면 왜 물어보겠는가? ‘영국인인 선생’을 물어본 것이다. 영국인인 선생은 수학 선생일 수도 있고 한국어 선생일 수도 있다. English란 단어는 두 가지 뜻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모든 단어는 기본적으로 다의어다. 따라서 항상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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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어떤 중요한 국가고시를 내는 중에 있었던 일이다. 커피를 제조하는 방법을 소개한 글이 있었는데 거기에 strong body란 단어가 나와 있었다. 일부 선생님들이 킥킥거리기도 했지만, 대개는 그냥 넘어갔다. 뭐 궁금하지도 않았나 보다. strong의 뜻도 알고 body의 뜻도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일부가 킥킥거리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중 정말 관찰력이 대단한 한 분이 사전을 찾아보았다. 대학 교수가 body의 뜻을 몰라 사전을 찾는다! 그분도 겸연쩍었는지 혼자 몰래 찾아보셨다. 그리고는 꽤 시간이 지나 다른 문제를 토의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까 커피 얘기를 다시 보자면서 strong body의 뜻이 뭐냐고 도전적으로 물어보셨다. 20여 명의 저명한 학자들이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는데, 그분이 점잖게 그러나 자랑스럽게 ‘강한 향’이라고 알려주셨다. ‘강한 몸’이 아니고. 아, body에 그런 뜻이 있었구나. 드립커피가 아직 생소할 무렵의 옛 이야기이지만, 필자가 깨달은 것은 관찰의 중요성이었다. 아무리 익숙한 단어라도, 아무로 확실한 사전 지식이 있더라도 조금이라도 미심쩍으면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였다. 요즘에는 맥주 광고에도 ‘strong body’니 ‘바디감’으로 마시느니 하는 표현을 들을 수 있다. 아무튼 그분을 제외한 많은 사람들은 일거에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아는 체를 하고 넘어갔던 게으름이 폭로되었기 때문이다.

 

글 읽기에서와 마찬가지로 글쓰기에서도 관찰은 중요하다. 콜론과 세미콜론이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설명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례들을 자주 보아서 느낌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아포스트로피가 어떻게 쓰이는지 설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용례를 보는 것이 훨씬 더 편리하다. Jesus'에서는 뒤에 s를 붙이지 않는데, James's에서는 왜 s를 붙이는 것일까?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러니 관찰해서 익히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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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특히 필자의 선입견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대 담론을 더 높이 쳐주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집안에 먹을 것이 없어 식구들이 굶든, 세간 살림이 홍수에 떠내려가든 상관없이, 대장부는 천하를 논하고 우주를 걱정하는 이상야릇한 습관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렇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글에서도 너무나 지당하고 중요한 말만 내세우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소한 근거나 표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쓰는 경향이 있다. 필자가 여기서 서양식 글쓰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영어 글쓰기에 관해서 말하자면, 좋은 글쓰기는 우선 디테일이 강해야 하고, 단계적이어야 하며, 사소한 증거라도 반드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는 것이다.

 

소위 대학생들이 SOP(statement of purpose)를 쓰거나 대학 입학생이 입학 에세이를 쓰는 경우 우리나라 학생과 미국 학생을 비교해 보면 이러한 차이점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밑도 끝도 없는 주장이나 일방적 주장, 확인되지 않은 소문의 나열, 이런 것들은 반드시 배격되어야 한다. 좋은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면 우선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일독하기 바란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코넬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던 영문학 교수가 쓴 『글쓰기의 요소』에 나타난 세세한 용법들에 주의를 기울여보라. 훌륭한 글쟁이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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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요소

윌리엄 스트렁크 저/장영준 역 | 윌북(willbook)
정확한 문장을 쓰는 핵심 규칙을 명쾌하게 정리한 책이다. 영미권 사람들이 잘 쓴 영어와 잘못 쓴 영어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책으로,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도서’이며, 스티븐 킹, 댄 브라운 등 대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꼽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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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장영준

국내 최고의 촘스키 전문가.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논문 집필 당시 세계적 언어학자인 노암 촘스키에게 논문 지도를 받으며 그의 제자로 이름을 알렸다. MIT와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 방문학자로 활동했고, 중앙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현재는 오르고라는 필명으로 활동한다. 저서로는 『한국어가 사라진다면』 (공저), 『언어의 비밀』 , 『그램그램 영문법 원정대』 시리즈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촘스키, 끝없는 도전』, 『번역과 번역하기』, 『영어에 관한 21가지 오해』, 『최소주의 언어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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