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불후의 칼럼 > 하지현의 마음을 읽는 서가
어떤 형태의 가족
나카자와 히나코의 『아버지와 이토 씨』를 읽고
그날 저녁도 ‘아, 이번 주에는 뭘 가지고 쓰지?’라는 고민 속에 책을 찾다가 좌절하고 그냥 소설이나 읽으면서 마음을 가볍게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책 일단 재미있을 뿐 아니라 딱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그런 소설이었다.
‘하지현의 마음을 읽는 서가’를 자주 읽는 독자들은 눈치 챘겠지만, 그 동안 이 칼럼에서는 소설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심리나 사회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인문서가 반 정도고, 나머지는 에세이이거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만화를 소개했다. 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 개인적 취향도 있지만 막상 딱 이런 방향으로 쓰고 싶다는 책이 없었다는 것이 변명이라면 변명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집어 들은 소설 한 권 『아버지와 이토 씨』. 저녁에 읽다가 ‘야, 이거로 마음을 읽는 서가를 써야겠구나’라고 마음을 먹었다. 솔직히 2년 이상 격주로 연재를 하면서 나름대로 칼럼 시리즈의 결을 유지한다는 것은 갈수록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결에 맞는 책을 만나지 못하면 글로 풀어내기 참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도 ‘아, 이번 주에는 뭘 가지고 쓰지?’라는 고민 속에 책을 찾다가 좌절하고 그냥 소설이나 읽으면서 마음을 가볍게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책 일단 재미있을 뿐 아니라 딱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그런 소설이었다.
아르바이트로 ‘급식 아저씨’를 하고 있습니다
사설이 길었나? 오늘 소개할 책은 일본 소설로 나카자와 히나코의 『아버지와 이토 씨』다. 저자는 원래 희곡작가인데 이 작품은 그의 첫 소설인데 ‘제 8회 소설현대장편신인상’을 수상하며 대중적으로 큰 반응을 얻었다. 바로 영화화가 결정되어서 타나다 유키가 연출을 맡았고 우에노 주리와 릴리 프랑크가 출연해서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표지의 그림이 배우를 많이 닮았다.)
34세의 ‘아야’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난 남성 ‘이토’ 씨와 동거 중이다. 아야는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만 아르바이트를 할 줄 알았는데, 그게 길어져 지금은 동네 서점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직업이다. 남자 친구 이토 씨도 역시 지역 초등학교 급식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두 사람은 작고 초라한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 살지만 단조롭지만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다만, 이토 씨의 나이가 54세로 아야보다 20살이 더 많다는 것만 빼고는.
이때 사건이 발생한다. 아야의 오빠 ‘기요시’가 갑자기 전화를 한 것이다. 아야의 아버지는 오빠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야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몇 번의 심장수술을 받았고 몸이 급격히 쇠약해지자 집을 처분하고 아들과 동거 중이었다. 기요시는 동생 아야에게 전화를 걸어, “쌍둥이 딸 둘이 모두 사립중학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아버지까지 모시는 것을 네 올케 리리코가 너무 힘들어하고 있으니 한동안만 아버지를 모시라”고 말했다. 아야는 난처해했지만, 이윽고 아버지는 이야 커플이 살고 있는 아파트로 난입을 하고, 이후 세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아야 34세, 이토 54세, 그리고 아버지 74세.
평생을 초등학교 교사로 살다 정년 퇴직한 아버지는 단 하나뿐인 딸이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노동자로 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더욱이 동거 중인 남자가 있다는 것, 거기다 그가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인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토 씨와 아버지의 첫 만남은 이랬다.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지금은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교사인가!?”
탁! 하고 아버지가 탁자 위에 양손을 짚고서 몸을 앞으로 쑥 내밀었다. 두 눈이 기대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아뇨, 저기, 선생은 아닙니다.”
“음? 그럼 사무직이나 잡역부인가?”
“그쪽도 아닙니다.”
“그럼, 교사도 아니고 사무직이나 잡역부도 아니라면.”
“아르바이트로 ‘급식 아저씨’를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두 어깨가 부르르 흔들렸다. 옆에서 보기에도 급속도로 눈의 반짝거림이 사라져 가는 게 느껴진다. 쉰네 살의 남자가 아르바이트 생활이라. 아버지가 느끼고 있는 환멸이나 경멸이 강하게 전해져 온다.
그러나 이토 씨는 막상 아무런 동요가 없다. 이전에 뭘 하고 살던 사람인지 알 수 없지만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고, 하루하루의 삶에서 즐거움을 찾아가면서 살아간다. 두 사람이 볼링을 치러가기로 한 B날, 못 가게 되어도 화를 내기 보다 “뭐, 꼭 내일이 아니어도 왜. 볼링은 도망가지 않으니까”라는 식으로 느긋하게 반응한다. 아버지의 그동안의 삶의 가치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이다. 거기에 아야가 물들어서 함께 그런 하류층 루저의 삶을 살아가게 될까봐 걱정이 되지만, 아버지는 절대 그 부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다만 가까이 하고 싶지 않고, 자신의 평소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며 돈가스 소스는 오직 ‘우--스타 소스’여야 하듯이 그대로 살아가고 싶어할 뿐이다.
이 소설은 이 세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이어지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담고 있다. 결국 어떻게 결말이 나는지는 밝힐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꽤 속도감 있게 전개가 이루어지고, 희곡작가답게 짜임새 있는 구조로 한 편의 재미있는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그들은 가난해 보이지만 가난하지 않다
오빠 기요시와 올케 리리코는 전형적인 21세기 중산층이다. 큰 제약회사의 경리로 근무하는 오빠는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사립중학교부터 넣으려고 무진 애를 쓴다. 리리코는 좋은 엄마이며 아내이고 싶어하고, 동시에 좋은 며느리까지 되기 위해 혼자가 된 아버지에게 먼저 동거를 제안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실패한다. 리리코는 아버지를 보기만 해도 토할 정도로 힘들어하고, 기요시는 자신에게 떨어진 이 아버지란 짐을 처리하지 못해 전전긍긍할 뿐이다. 과거 세대에는 당연히 여기던 삶의 방식이 이제 그대로 ‘복붙’해서는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것을 저자는 말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최소한 분명한 것은 이들은 행복하지 않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만.
반면 아야와 이토 씨는 비록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아르바이트 비정규직이고, 너무나 작은 낡은 아파트에서 살면서 앞의 텃밭에서 작물을 길러 먹고, 식기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 살지만 행복하다. 아야가 54세인 이토 씨와 사는 것을 보고 누군가는 “이토가 나중에 늙으면 의존해서 살려고 동거 중이다”라는 의심을 하지만 그런 먼 미래는 두 사람 모두에게 중요하지 않다. 두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하고, 욕망의 기대치를 낮추고 살아간다면 그만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가난해 보이지만 가난하지 않다. 먹고 잘 곳이 있고, 가끔 나가서 동네 주점에서 술 한 잔 마시고, 먼 곳을 갈 때는 차비가 아까워 걸어 갈 때도 있지만 볼링도 치고 영화관을 간다. 그리고 규칙적으로 섹스를 한다. 이 정도면 됐다고 여긴다. 중산층이 되기 위해 차를 사고, 남들이 부러워할 집을 융자를 얻어 사서 수십 년 동안 갚아나가고, 아이를 낳아 애써 키우느라 고생을 하는 것을 포기하고 얻은 존재의 자유다. 이런 그들의 삶에 작가는 어떤 판단적 태도를 갖지 않는다. 가족들 중 하나를 빌어 그들을 비난하거나, 멸시하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더 열심히 살라고, 인생을 반성하라고, 루저를 인정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들의 현재를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이런 태도가 이 소설이 갖는 미덕이자 장점이다.
아버지도 그렇다. 과거 세대로서 열심히 살아왔고 성취를 했다. 연금도 충분하다. 처음에는 과거 세대가 그랬듯이 자식들에게 기대를 했으나 그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차츰 깨달아나간다. 평생 살아온 생각의 큰 틀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아버지는 서서히 그러나 결국 현실적인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긴다. 옹고집의 외곬수인 듯 하지만 사실 건강한 자아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제 노년을 앞두거나 진입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아버지의 삶에 한 번 감정이입을 해가면서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일본사회를 살아가는 현재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 안에서 중요하게 뽑아낼 덕목은 ‘요구와 욕망의 적절한 조절’을 하는 것, 그리고 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 보다 일단 현실의 현재성에 충실 하려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토 씨와 아야의 삶이 가능한 것은 물론 일본의 경제시스템이 두 사람의 단기직으로도 어느 정도 운영이 될 수 있는 덕분임은 분명하기에 바로 우리의 삶에 대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아버지와 이토 씨』는 반 나절 웃으면서 휙휙 보고 넘길 대중적 소설을 넘어선다. 앞으로의 삶의 태도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비판적이지 않은 따뜻한 시선으로 제시하고 있기에 마음의 서가에 꽂아둘 만한 책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이토 씨 나카자와 히나코 저/최윤영 역 | 레드박스
서른넷 아야. 그녀의 남자친구인 스무 살 연상의 돌싱남 이토 씨. 그리고 이토 씨보다 스무 살 많은 아야의 아버지. 이 세 사람의 좌충우돌 동거기를 담은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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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나카자와 히나코> 저/<최윤영> 역11,7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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