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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시대, 무엇을 할 것인가?

삶과 죽음 사이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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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의 지진이 실제 지진보다 더 심한, 이 흔들리는 시대에서, 갈수록 철학에 의존할 수밖에 되는 나에게 그는 철학이란 것이 실상 ‘별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철학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철학이 뭐라 말할 수 있는 것도 거의 없다는 것이다.

“전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그 이유는 …… 첫째, 제 과거 때문이에요. 전 고독에 길들여졌어요. 저는 늘 제가 고독을 혐오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고독을 너무나 쉽게 피할 수 있는 세계에서 살고 있어요. 그러자 제가 고독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중략) 두 번째 이유는 저의 현재에요.. 전 이제껏 한 번도 인생에서 행복해지리라고 기대한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전 행복해요. 전 제 성미와 취미에 맞는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요. 그 일이 너무 즐거워서, 이젠 더 이상 그게 즐겁다는 생각도 못할 정도예요.”
                                                       - 존 파울즈의 소설, 『프랑스 중위의 여자』

 

사라는 자신을 원하는 찰스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인생이라고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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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랑스 중위의 여자> 중 한 장면

 

존 파울즈의 소설 『프랑스 중위의 여자』의 결말은 세 가지로 열려 있다. 열린 결말을 통해 파울즈가 전하고자 한 것은 ‘실존적 깨어있음’이다. 틀에 박힌 사고나 운명에 자신을 내맡기지 말고 자유를 용기 있게 택하라는 설득이다. 이 소설이 차용하는 ‘메타픽션(Metafiction)’ 기법 역시 서술자가 끊임없이 독자에게 이 소설은 허구이니 정신을 차리라고 알려주기 위한 장치이다. 

 

세 결말은 이렇다.

 

첫 번째 결말은 찰스는 결국 사라를 단념하고 약혼녀 어니스티나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찰스는 사라와의 사랑이 일시적인 것이라 치부하고, 약혼녀와 결혼해 평범한 여생을 보낸다.

 

다른 결말은 어니스티나와의 약혼을 파기하고 사라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작가는 소설 속에 등장해 첫 번째 결말의 진부함을 비판하며 찰스의 선택을 지지한다.

 

그리고 사라와 찰스는 육체적 사랑을 나눈다. 경이롭게도 사라에게서 처녀성을 확인한다(제목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사람들이 그녀를 부르던 말로 “프랑스 중위 놈과 놀아난 년” 정도의 의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라는 곧 찰스를 떠난다.

 

여기서 다시 서로 다른 두 가지 결말이 펼쳐진다. 마치 존 파울즈의 분신인 듯한 사내가 소설에 등장해 찰스에게 두 가지 결말을 알려준다. 하나는 찰스가 온 유럽을 헤매 결국 사라를 찾는다는 것이다. 사라는 찰스의 아이를 데리고 나타나고 둘은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끝맺는다.

 

하지만 마지막 결말은 파격적이다. 둘의 정사 후, 사라와 찰스는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난다는 것이다. 제시한 사라의 고백은 자신의 실존적 결단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사랑이나 가족, 사회제도와 같은 낡은 가치를 버리고,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난다는 것이 마지막 결말이다. 실존주의에 천착했던 작가답게 파울즈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어떻게 존재하는 것이 옳은가를 되묻는다.

 

현대인이라면 어쩌면 파울즈가 제안한 마지막 길을 걷고 싶다는 열망을 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이란 본성이나 인습이 아닌, 실존을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므로. 하지만 우리는 통속적인 첫 번째 결말대로, 아니면 조금 스릴 있지만, 역시 뻔한 두 번째 결말대로 살아갈 때가 더 많을 것이다. 매순간 선택을 요구하기에 인생은 힘겨운 것이며, 남다른 선택은 더 어려운 법이다.

 

흔들리는 지구,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가 자기 내부의 열로 인간의 작음을 증명하는 지진시대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하찮음이나 헛됨을 현기증 나도록 빈번하게 목격한다.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죽어가는 인간들, 수많은 주검들을 목격하면서 우리가 매번 고민하고 선택하는 이 삶의 한계를 절감한다. 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계 상황에서조차 우리는 무엇을 택하고 또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근래 들어 내가 무척 아끼는 그림책 하나가 있다. 책은 나의 경험과도 깊이 닿아있다.

몇 년 전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나는 일순간 지난 불운들을 반추하는 버릇이 도졌다. 몇 년간 공들여 치료했던 우울증이 재발한 것이다. 온힘을 다해 가꾼 내 평정심은 존경했던 아버지의 죽음 앞에 무너졌다. 다시 생지옥에 선 느낌이었다. 그리고 서른 즈음, 그 저열한 작자들이 내 운명에 썩은 욕심을 뿌려대지만 않았다면 내 삶이 이토록 참담해지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뜻밖에 임종한 아버지 앞에서 나란 인간이 그토록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텐데 같은, 바보 같은 망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죽음은 언제나 스승이다. 내게 아버지의 죽음은 큰 가르침이었다. 자살충동이나 가족이나 소중한 이의 죽음 같은 죽음과 관련된 문제 때문에 힘겨워하는 내담자를 만날 때면 이 그림책을 펼친다. 볼프 에를브루흐가 그리고 쓴 『내가 함께 있을게』라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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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를브루흐는 우리에게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를 그린 이로 알려진,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이다. 그는 『내가 함께 있을게』에서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품위 있게 다루고 있다. 『내가 함께 있을게』는 죽음과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에 대해 알려준다. 이렇게 간결하고 명료하게 인간의 죽음을 알려줄 수 있는 능력이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그림책의 주인공은 의인화된 오리 한 마리이다. 그리고 그림책에 등장하는 또 다른 존재는 오리의 친구가 되는 ‘죽음’이다. 작가가 조심스럽게 그리기는 하지만, 친구 ‘죽음’의 해골 모양 얼굴은 섬뜩하다. 그런 까닭에 나 역시 죽음에 대해 물어야 하는 경우를 빼고는 이 그림책을 여간해 펼치지 않는다. 그 잔상이 짙게 남는 까닭이다.

그림책의 처음은, 

 

“얼마 전부터 오리는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대체 누구야? 왜 내 뒤를 슬그머니 따라다니는 거야?”/“와, 드디어 내가 있는 걸 알아차렸구나. 나는 죽음이야.”/죽음이 말했다.” 

 

와 같이 시작된다. 죽음은 생명을 가진 존재가 언젠가 한 번은 마주해야 할 친구로 묘사하고 있다. 죽음의 손에는 “만일을 대비해서” 항상 검은 튤립 한 송이가 쥐어져 있다. 
 
죽음을 처음 대면한 오리는 소름이 돋는 불안을 느낀다. 그러나 어느새 오리와 죽음은 친구가 된다. 함께 수영하고, 서로 추위를 막아주고, 신기한 체험도 같이 하면서 친구가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서늘한 바람이 깃털 속으로 파고들”던 날, 오리는 죽음을 맞는다. 오리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죽음도 강물에 죽은 오리를 떠내려 보내며 죽음을 애도한다. 

 

“죽음은 오랫동안 떠내려가는 오리를 바라보았습니다./마침내 오리가 보이지 않게 되자 죽음은 조금 슬펐습니다./하지만 그것이 삶이었습니다.”

 

삶을 위해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죽을 수밖에 없기에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죽음은 삶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자기다운 선택,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위한 용기를 잃지 말 것을 응원한다.

 

실존이 힘들던 서른 초반, 큰 외침으로 나를 인도한 스승인 하이데거는 겸손하고도 용기 있는 결단만이 생의 진리에 도달하게 함을 가르쳤다. 모든 가치와 의미들이 전도되고 지리멸렬해지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기에, 가치의 지진이 실제 지진보다 더 심한, 이 흔들리는 시대에서, 갈수록 철학에 의존할 수밖에 되는 나에게 그는 철학이란 것이 실상 ‘별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철학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철학이 뭐라 말할 수 있는 것도 거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논리학이 어떤 것을 구체적으로 성취하겠다고 약속하려고 하는 것은 철학에 대한 지나친 요구일 뿐만 아니라 오해이기도 할 것이다. 철학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철학의 본질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를 펼치는 대신 철학함에 속하는 한 가지, 즉 철학자는 잘못될 가능성을 감수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잘못(Irrtum)에의 용기는 그 잘못을 참아내는 용기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잘못을 시인하는 용기이기도 하다. 즉 이러한 용기는 듣고 배울 수 있음으로서 고요한 자기를 내적으로 해방시킬 수 있는 용기, 즉 적극적인 대결에의 용기이다.

 

저마다의 사람은 언제나, 학문적 연구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가능한 모든 양식의 인간적 실존에서도, 단지 자신이 용기를 내어 할 수 있는 바 그것이다.”
                                                      - 하이데거, 『논리학 - 진리란 무엇인가?』

 

 

그의 이 말은 여전히 나에게 죽비를 내리친다. 우리를 지금 이 순간 존재하게 해주는 덕은 다만 용기일 뿐이라고. 그것도 자신의 잘못에 대해 냉정히 말할 수 있는 용기일 따름이라고. 또한 말하자면 나라는 개체는 순간순간 작은 용기들의 결과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이 무엇이든 용기를 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있는 힘껏 용기를 내어 택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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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독서박민근 저 | 와이즈베리
저자는 수십 년간 책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했던 경험과 15년간 심리치료사로서 내담자들을 치유한 임상 결과를 토대로 실제로 치유 효과가 입증된 50권의 책을 《치유의 독서》에서 소개한다. 철학상담의 전통과 최신 심리치료 연구성과, 15년간의 독서치료 경험으로 입증된 치유서를 통해 내면의 힘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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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민근(심리치료사)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문학, 철학, 심리학이 융합된 독서치료를 연구하고, 또 임상에 적용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치유의 독서』,『성장의 독서』,『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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