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마포 김 사장의 야매 책방
괴수는 픽션일지라도 탐험은 논픽션
남들이 가지 않는 곳에 가서,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
남들이 다 재미있다고 하는 것은 별로고 남들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일에서 재미를 찾아낸다는 것이 스무 살 때 이후로 시작된 다카노 씨의 일관된 삶의 자세다.
봄의 첫날, 절판된 책을 구해 볼 일이 있어서 도서관에 갔다. 서울역 11번 출구로 나와 가파른 언덕을 따라 도서관까지 걸어가는 이 코스를 나는 좋아한다. 슬렁슬렁 걷다보면 적당히 땀도 나고 시간을 들여 뒤쪽으로 돌아가면 산책코스로도 그만이다. 무엇보다 이 도서관의 구내식당 밥맛은 어지간한 음식점들보다 별 한 개 반만큼 더 훌륭하다. 도서관 홍보대사도 아닌 마당에 이렇게까지 얘기하려니 다소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은 느낌도 아니 드는 건 아니지만, 매일 메뉴가 바뀌는 백반이 기가 막히다. 밥도 주걱으로 양껏 담을 수 있다. 가격은 단돈 4,000원, 하는 정도로 마무리할까.
그날 점심으로 나온 제육볶음 정식을 먹고 내가 빌린 책은 『움베르토 에코 평전』이었다. 너덧 시간 앉아서 읽다보니 “에코가 『장미의 이름』에 수많은 라틴 어 인용구를 포함시킨 이유”는 수박겉핥기식의 피상적인 독서에 만족하는 독자들에게 ‘빅엿’을 먹이기 위해서였다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 주간지 『레베느망 뒤쥐디』와의 인터뷰에서 그런 취지의 얘기를 했다고 한다. 이 대목을 마주하며 ‘나도 빅엿을 먹은 독자 가운데 한 명이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물론 예전에 읽었을 때는 그딴 걸 먹었다는 것조차 몰랐기 때문에 이번에는 기분상 알고나 먹자 싶어서 『장미의 이름』 상하권과 『장미의 이름 창작 노트』, 『움베르토 에코를 둘러싼 번역 이야기』를 빌렸다.
도서관 대출권수가 총 여섯 권인데 다섯 권만 들고 나오려니 뭔가 아쉬워서 살까 말까 고민하던 『기예르모 델 토로의 창작노트』를 마저 대출했다. 그리고 열 페이지가량 읽었을까, 폐장 시간이 다가와서 나가려는데 아 글쎄 지난달에 문학과 지성사 주일우 대표가 ‘재미있으니까 시간 날 때 한번 읽어보라’고 했던 책이 눈에 띄는 게 아닌가. 삼 초가량 고민하다가 『기예르모 델 토로의 창작노트』는 구입할 요량으로 일단 반납하고, 주 대표가 권한 책을 빌리기로 했다.
“저기, 이거 방금 전에 대출한 건데 반납하고 대신에 이 책 빌려도 되지요?” 물었더니 마음씨 좋아 보이는 사서분이 방긋 웃으며 “아, 당연히 되죠” 하고 『기예르모 델 토로의 창작노트』에 바코드 인식기를 갖다 댔다. 그러고는 화면에 뜬 내 대출기록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 책은 왜 그냥 반납하세요? 이미 읽으신 건가요?” 묻길래 나도 어색하게 웃으며 “그 책보다 이 책이 더 재밌을 것 같아서요”라고 대답했더니 “음, 『기예르모 델 토로의 창작노트』도 굉장히 재밌는데. 그럼 이것도 빌려가세요. 대출권수 초과지만 이 정도 편의는 봐드릴 수 있어요” 하며 또 방긋 웃는다. 봄바람이 살랑, 부는 느낌으로. 아아 친절하신 분이네. 그리하여 그날 도서관에서 본의 아니게 일곱 권을 빌리게 되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괴생물체 이미지
이쯤에서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두 분 정도 계셨으면 좋겠는데, 마지막 순간에 도서관 사서분의 호의에 힘입어 빌린 책이 뭐였냐면 『환상의 괴수 무벰베를 찾아라』라는 제목의 논픽션이었다. 콩고의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텔레호에서 목격되었다는 ‘모켈레 무벰베(일명 콩고 드래곤)’를 찾아 떠나는 와세다대학 탐험부의 여정을 담고 있다. 탐험부의 좌장격인 다카노 히데유키에 따르면, 무벰베는 18세기부터 여러 차례 목격되어 유럽 문헌에도 등장한 바 있고, 1981년에는 미국인 허만 레거스터스(전 NASA 소속 항공우주기사)가 목격담을 보고서로 작성하기도 했으며, 현지에 사는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무벰베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만 여지껏 누구 하나 영상이나 사진으로 기록하지 못했다.
다카노가 꽂힌 것은 바로 이 ‘소문은 무성하지만 실체가 없다’라는 대목이다. 어린 시절부터 각종 미스터리 소설과 유에프오와 초능력 및 수수께끼적 불가사의에 심취했던 그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늘 이런 생각을 한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목격했다는 네시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목격했다는 무벰베도, “그런 게 있을 리 없어”라고 말하는 건 간단하지만 당연히 “있을 리가 없다”면 대관절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책의 말미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괴수 실존을 주장하는 광신자가 아니기에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여 현실적으로 이 수수께끼를 풀어갈 필요가 있다. 텔레호의 괴수는 정글에 사는 어떤 부족의 전통과 밀접하고 연관되어 있다. 그것을 무시한 채 과학적인 조사를 실시해 ‘있다’, ‘없다’고 판단해 봤자 거기에는 설득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하나의 장소에는 세계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그곳에만 있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 그걸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수수께끼 괴수의 배경에는 특수한 ‘이유’가 감춰져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벰베와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 호수, 정글, 전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결코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
무벰베를 찾아 콩고에 다녀온 이후로 다카노는 지구상의 각종 희한하고도 기이하고도 미스터리하다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탐험(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하여 미얀마의 마약지대, 중국의 설산, 아마존의 습지, 환각제를 제배하는 콜롬비아의 작은 마을 등을 전전한다. 한번은 ‘후세인 독재하의 이라크에서 1년간 살아보자’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적도 있는데 대관절 왜 후세인 독재하의 이라크에 가려고 했느냐면 ‘남들이 가지 않는 곳에 가서,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자신의 탐험철학적 테마에 어울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재미있다고 하는 것은 별로고 남들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일에서 재미를 찾아낸다는 것이 스무 살 때 이후로 시작된 다카노 씨의 일관된 삶의 자세다. 이런 인간으로 인해 세상이 바뀐다고까지 얘기하진 않겠지만, 세상에 이런 인간이 한 명쯤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은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그렇게 다녀와서는 ‘혹시 전직이 개그맨 비슷한 게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재기 넘치는 입담으로 여정의 시작과 끝을 유려하게 풀어낸다.
특히 내가 무릎을 치며 감탄한 건 탐험을 위해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방법이다. 이건 다카노의 또 다른 명저인 『별난 친구들의 도쿄 탐험기』에 서술되어 있는데 대략 이러하다. (1) 후세인 독재하의 이라크에서 생활하기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아랍어를 배우기로 한다. (2) 이라크에 가니까 이라크인에게 배우자고 마음먹는다. (3) 아는 인맥을 총 동원하여 일본에 거주하는 이라크인을 소개받는다. (4) 단기속성으로 열심히 배운다.
이런 식으로 습득한 언어는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아라비아어, 링갈라어, 타이어, 베트남어 등인데 링갈라어를 배울 때는 일본에 체류하고 있는, 딱 두 명밖에 없는 콩고인을 찾아갔을 정도이니 실로 대단하다. 한데 더욱 대단한 것은 이런 대단한 일화들을 전혀 안 대단해 보이도록 술술 풀어쓰는 필력이다. 덕분에 다카노의 모험담은 무엇을 읽어도 ‘나는 아무나 흉내 내기 어려운 일을 하는 특별한 인간’이라는 식의 더부룩한 대목이 없다. 부디 그가 쓴 모험담이 좀 더 많이 팔려서 종래에는 유에프오의 정체도 밝히고 7대 불가사의의 비밀도 파헤쳐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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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이고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책을 만든다. 가끔 이런저런 매체에 잡문을 기고하거나 라디오에서 책을 소개하거나 출판 강의를 해서 번 돈으로 겨우 먹고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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