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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힐링’과 ‘진짜 우울증’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우울과 불안, 강박에 찌든 자신의 몹쓸 머리를 잘라내고 깨끗한 머리로 바꿀 수는 없다. 몰로니의 주장과는 반대로, 현명한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누구든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사람이 꼭 심리상담을 전공한 상담가거나 정신과 의사일 필요는 없다.
“맨 처음 클라이언트의 머리를 도끼로 자르고, 쏟아져 나오는 피를 틀어막기 위해, 신선한 양배추를 머리가 있던 자리에 올려놓는다. 이렇게 클라이언트는 진정하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 잘려진 머리통은 ‘반죽이 되고 밀가루를 그 위에 뿌리고 “기적의 크림”을 바른 다음 오븐에서 구워 불순물을 제거한다.’ 신선하게 다시 구워진 머리통을 제 주인의 어깨 위, 원래의 자리에 다시 올려놓는다. 정신정화라는 상당히 투박한 방식이지만, 심리과학의 시대에 정신치유를 위해 우리가 하는 일에 비하면 훨씬 더 정직하고 직접적이다.”
- 폴 몰로니, 『가짜 힐링』
폴 몰로니는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원래 머리통을 다른 머리통으로 바꾸는, 이 살벌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 심리과학 시대의 범람하는 가짜 힐링들보다는 훨씬 더 정직하다고 이야기한다. 영국에서 사회유물론적 심리학 운동을 펼치고 있는 폴 몰로니는 치료 효과가 있다고 자임하는 주류 심리치료에 대해 날 선 비판을 가한다. 그는 아론 벡 등이 창시한 CBT를 위시한 인지치료와 최근 대세가 되는 긍정심리치료, 불교 명상에 기초하는 제3세대 인지치료들과 또 그 치료법들이 의존하는 대화치료 방식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정신의학자, 심리치료사, 카운슬러들 대부분이 제대로 짚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진실, 심리문제가 개인의 부조리한 정신구조가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사회적 현실에 더 좌우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인간의 모든 것을 훼손하는 사회구조는 당연히 개인에게 심대한 심리문제를 초래한다. 한 사람이 맺는 많은 사회연관을 무시한 채, 외적 억압들을 외면한 채, 오로지 개인에게 생각만 바꾸면 우울과 불안에서 벗어날 거라고 말하는 것은 억지이며, 많은 증거가 이런 방법이 효과가 없음을 증명한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영국의 철학자 로먼 크르즈나릭 역시 『공감하는 능력』에서 지난 세기가 심리학의 시대였지만, 그토록 번성한 심리치료가 늘어나는 우울증의 경감에 도움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심리치료가 취하는 내성(內省, Introspection)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내성적 방식, 세상과 담쌓은 채 자기 안에서 생각과 심리문제를 풀고자 하는 방식은 어려울 뿐 아니라 효과도 없다는 것이 크르즈나릭의 판단이다. 그는 모순을 해결하자면 “자기 자신 밖으로 나가 타인들의 시각으로 그들의 삶을 탐구함으로써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알아”내는 외성(外省, Outrospeciton)의 방법이 필요하며 21세기는 외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아니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심리는, 또한 사회적 산물이다.
거의 매일 상담실에서 나는 사회가 유발하는 통증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만난다. 얼마 전 상담했던 한 청년은 심한 우울증을 겪는데다, 낮은 자존감의 소유자였다. 그는 상담실에 들어서 앉자 말자 대뜸 자신이 상담료를 낼 여력이 없어서 매주 상담 받으러 올 수 없고, 언제 다시 상담을 받으러 올지 기약할 수 없으므로, 최대한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자가 치료법을 알려달라고, 또 도움이 되는 책도 추천해달라고 사정했다.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전문대학도 미처 졸업하지 못했고, 몇 번 취직했지만, 배운 기술도, 또 능력도 모자라 매번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으며, 그래서 지금은 조금이라도 경제활동 능력이 있는, 육체노동을 하는 어머니 대신 집에서 가사 일을 돌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상담을 받기 위해 내는 상담료는 그동안 어머니가 주신 용돈을 여러 달 치 모아 마련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잡생각이 들지 말라고 미친 듯, 없는 집안일도 만들어서 하는데, 가끔 일하지 않는 자투리 시간에 자살 충동이 생겨 견딜 수 없다고 고백했다. 서른이 가깝도록 해놓은 일이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할 때 가슴이 찢어진다는 것이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던 그는 처음부터 남보다 뒤처진 출발선에서 인생을 시작했고, 도무지 자기 인생은 만회되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나는 그에게 심리 관련 서적보다는 진로 탐색이나 철학책 목록을 곱절 이상 더 적어주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고 운명의 방향을 다시 정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심리치료보다는 사회적 지지와 경제적 도움임이 확실했다. 그러나 세상이 돕지 않으니 스스로라도 도와야 했다. 운명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울 뿐이니. 나의 조언 역시 사회경제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다. 지나친 비관주의를 덜어내 우울증을 제압하고, 다시 직장을 구하라고, 작은 돈이라도 제 손으로 벌라고 당부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버는 일 자체가 영혼이 부서지는 체험이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 수 없는 자만큼 영혼의 파괴를 빨리 맞이하는 존재도 없는 까닭에.
찰리 채플린의 영화 <골드 러시> 중 한 장면
그런데 몰로니가 짚지 못한 것이 있다.
세상의 모순은 여전하고, 사람들은 우울증을 더 자주 앓는다. 미숙한 자본주의는 우울증을 유발하는 심리 상자이다. 그러니 우울증은 운명이고 신의 징벌이며, 세상이 인간답게 변하기 전에는 약자들은 우울증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인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대작, 『21세기 자본』의 결론은 인간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한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에 빈부 격차가 더 가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압력이 너무 높고, 인류가 어렵게 이루어온 복지나 사회안전망 역시 갈수록 훼손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이다. 그의 예언이 맞는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절망과 불안이 더 늘 것이고, 개인의 삶을 짓밟는 우울증 역시 더 많이 유행할 것이다.
나는 상담실에서 거의 매일 ‘진짜 우울증’을 겪는 사람을 만난다. 나 역시 진짜 우울증을 경험했고, 그것이 얼마나 인간을 무력하게 하는지 똑똑히 알고 있다. 우울증이 무서운 이유는 개인이 가진 모든 재능과 잠재성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고, 그 사람에게 타인의 비난과 세상의 멸시와 무능한 삶을 자신의 몫으로 족쇄 채운다는 점이다.
깊은 우울증은 생각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진성 우울증은 낭만보다는 지옥이다.
피터 D. 크레이머는 『우울증에 반대한다』에서 우울증을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문화나 우울증의 실체를 부정하는 억지주장들이 우울증을 세상에 더 확산시킨다고 비판한다. 문학가나 예술가들이 창조와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던 우울증은 냉정히 따지면 오히려 그 예술가가 가진 다양한 잠재성을 온전히 펼 수 없게 했던 잠금장치였다는 것이다. 우울증의 본질은 무기력이나 무능이다. 그는 “우울증은 하나의 질병이며, 우리가 온 힘을 다해 막아야 할 질병”이라고 단언한다. 우울증은 실체를 가지며, 더욱 나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근절되어야 할 대상이다.
인간 문명은 불만을 선사한다. 불만은 절망과 자기 비하를 낳고 우울증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바라는 직업, 원하는 보수를 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 우울증은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일까? 성공을 이루지 못한 이에게, 삶에서 이루어지길 바랐던 것을 얻을 수 없었던 사람에게 탈출구는 막혀 있을까?
그렇지만은 않다. 우울과 불안, 강박에 찌든 자신의 몹쓸 머리를 잘라내고 깨끗한 머리로 바꿀 수는 없다. 몰로니의 주장과는 반대로, 현명한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누구든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사람이 꼭 심리상담을 전공한 상담가거나 정신과 의사일 필요는 없다. 몰로니 역시 효과가 있는 치료에서는 무슨 치료법이냐 보다는 상담가의 인품이 중요했다고 말한다. 상담가가 진실한 인간이어야만, 지혜와 선의를 가진 사람일 때에만 치료가 조금이나마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일 테지만, 우리는 진실한 상담가보다는 돈벌이에 급급한 심리치료 업자를 만나기가 쉽다. 만약 현명한 사람이 눈 씻고 찾아도 주변에 없거나 상담료가 없어 상담을 받을 수 없다면, 결국 도움을 책에서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서치료에서는 이를 치유서라고 칭한다. 나 역시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상담가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대 나는 그때 수십 명이 넘는 현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허접스러운 상담가보다는 좋은 책이 나은 치료사일 것이다. 틱낫한, 달라이 라마, 스캇 펙, 웨인 다이어, 빅터 프랭클, 야스퍼스, 월리엄 제임스 등등 많은 현자들이 내가 우울의 잠에서 깨도록 용기와 치유력, 지혜를 선물했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지난 세기와 금세기를 통 털어 가장 명석한 비평가 가운데 한 명으로 존경받는 해럴드 블룸은 『해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에서 그 온당한 이유를 들려준다.
“책을 잘 읽는 유일한 방법은 없지만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있다. 정보는 무한히 널려 있다. 그런데 지혜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운이 좋다면 선생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혼자이며 남의 도움 없이 해결해 나가야 한다. 잘 읽는 것은 고독이 제공하는 크나큰 즐거움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치유의 효과가 가장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독서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이나 친구, 또는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 속에 있는 타자성(他者性)을 일깨워준다. 상상에 의한 허구의 문학인 순문학은 타자성이며, 바로 그러한 이유로 고독을 경감시켜 준다. 우리가 읽는 이유는 사람들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정이 너무 취약하고, 위축되거나 사라지기 쉬우며, 공간과 시간과 불완전한 연민, 그리고 가정과 애정 생활의 온갖 슬픔으로 짓눌리기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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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문학, 철학, 심리학이 융합된 독서치료를 연구하고, 또 임상에 적용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치유의 독서』,『성장의 독서』,『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