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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5월, 소년이 온다

한강 『소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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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정도의 염치 있고 겸양한 나라를 우리가 만들 수 있다면, 나는 그리고 우리는 너에게 덜 미안해질 것 같다.

노비 문장

 

묵묵히 쌀알을 씹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한강, 『소년이 온다』 85 쪽, 5월의 광주에서 살아남은 은숙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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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너는 그때 중 3이었다. 16 살이었다. 너와 같은 해에 태어나, 너와 같은 동급생이었던 나는 그 해 5월에 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남쪽에서는 어떤 이야기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전 해에 대통령이 부하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뉴스를 듣고, 대통령 각하도 죽는다는 사실을 신기해하며 어른들을 따라서 비통한 척 하다가 맞이한 1980년은 대체로 편안했고 TV 광고는 여전히 흥겨웠다. 12시에 만나요 브라보 콘과 하늘에서 달을 따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그녀의 손에 담아드리는 오란C의 어디에도 난리의 기미는 없었다.

 

조용필의 「창 밖의 여자」를 듣고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 트로이카 중에 누가 제일 예쁜지를 친구들과 수다 떨고 성룡의 ‘취권’을 흉내 내며 그 전 해에 있었던 세계 여자농구 대회의 박찬숙, 강현숙 과 같은 농구 스타들에 열광했던 시절이었다.

 

딱 한번, 어른들이 소곤거리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아버지였던가, 옆 방에 세를 살던 아줌마였던가, 어른들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아랫동네 광주의 버스 안에서 임산부는 배가 갈리고 여고생의 가슴은 칼로 도려졌다더라.” 나는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한 잔혹한 어른들의 말을 들으며 배가 갈라져 죽은 여자와 그 배에서도 꿈틀거리는 생명을 떠올리고, 교복 입은 여고생의 가슴이 도려지는 것을 생각했지만 그 상상은 도저히 구체적일 수 없었다. 우리들은 그런 것을 그림으로라도 그려낼 수 없었던 고작 열여섯살이었다. 어른들은 곧 단호하고 냉정하게, 이런 말 하는 것도 유.언.비.어라며 다시 각자의 방과 부엌으로 돌아갔고 티브이를 틀면 여전히 흑백 브라운관에서는 나만이 알고 있는 사랑의 비너스, 아름다운 비너스의 노래 속에 란제리를 입은 누나들이 나왔으므로 나는 안도하며 유언비어를 잊을 수 있었다.

 

친구들과 공부한다는 구실로 영등포 시립 도서관을 놀러 다닐 때, 영등포 로터리에서 대학생 형과 누나들은 데모를 하고 우리는 그 데모대를 피해 도서관을 가거나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는데 우리 눈에 그들은 그저 시끄러운 노래를 부르거나 이상한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너의 죽음, 그리고 네 고향 사람들의 학살과 관련된 일이었다는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너의 살이 땅 속에서 썩고 네 뼈와 머리가 백골이 될 때까지 나는 너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

너는 너의 집에 세 들어 살던, 네 친구 정대가 총맞아 쓰러지는 것을 봤다. 중절모를 쓴 노인부터 열두어 살의 아이들, 색색의 양산을 쓴 여자들까지 인산인해를 이뤘던 그 광장에서 정대는 총에 맞아 쓰러졌고 너는 달아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네가 집에 들어왔을 때, 아버지의 등을 밟아줄 때, 네 방에 들어가 잠이 들었을 때도 너는 네 눈 앞에서 죽어간 정대의 죽음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았다.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누이를 위해 칠판 지우개를 훔쳐오던 착한 아이, 너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정미 누나의 동생, 그의 죽음을 받아들였을 때 너는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되어있었다.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내 나라 군인이 네 친구를 쏘아 죽인다는 것에 대해서 단 한번도 공상조차 한 적이 없었던 너는, 물가에서 놀던 아이가 순식간에 쓰나미를 만나는 것처럼 너무 큰 충격에 휩싸였다. 무엇보다 너는 친구를 버리고 혼자 달아난 너의 비겁함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그리고 그 대상이 정대가 아니라 형이거나 아버지거나 엄마라고 해도, 너는 공포에 눌려 달아났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혐오했다. 혼자 있다가는 그 혐오가 너를 짓눌려 죽일 것 같았기에 너는 상무관 강당으로 갔다. 그곳에서 형과 누나들을 도와 총에 맞아 실려온 시신들을 덮어주고, 유족들에게 시신을 확인시켜주는 일을 했다. 그것이 정대를 향한 최소한의 너의 속죄였고 네 죄의식을 더는 본능적 의식이었다.

***

도청에서 마지막 날 새벽 너는 총에 맞아 죽었다. 정대에 대한 너의 죄의식도 함께 죽었다. 그러나 너의 죽음은 또 다른 사람들의 죄의식이 되었다. 너의 가족과 상무대에서 만났던 형과 누이들. 수피아여고 3학년이었던 은숙 누나의 영혼은 도청에 너를 두고 나온 그날 새벽 산산이 부서졌다. 혼자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스러움이 누나를 평생 쫒아다녔다. 누나는 먹는 다는 것과 허기를 느낀다는 것에도 치욕을 느꼈다. 누나는 그날 이후 고기와 생선이 구워지는 것에도 거부감을 보였다.

 

네가 좋아했던 진수형은 더 비참했다. 네가 마지막 밤, 도청에 숨어있는 것을 발견한 형은 화를 냈다가 애원하듯 말했다. "적당한 때 너는 항복해라. 손들고 나가. 손들고 나가는 애를 죽이진 않을거야" . 그러나 몇 시간 후 진압군은 형의 등에 발을 올려놓고, 형의 말처럼 양쪽 손을 올리고 항복의 자세로 도청의 2층 계단을 내려오던 너희들을 향해 드르륵 방아쇠를 당겼다. 너희는 그림처럼 나란히 그 자리에서 죽었다. 진수형의 영혼도 그때 이미 사라졌다. 치욕의 수용소를 겪고, 감옥을 갔다 나온 후 결국 자살로 인생을 마감한 것은 형이 가진 너에 대한 죄의식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너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오히려 너를 죽음으로 떠밀었다는 자책감. 형이 죽었을 때 형의 유서 옆에는 직선으로 쓰러져 죽어 있는 너희들의 사진이 있었다.

 

그때 22세의 미싱사였던 선주누나는 도청에서 잡혀간 후 빨갱이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성고문을 당했다. 사람들은 누나에게 증언을 요구했지만 누나는 차마 그때의 기억을 단 한글자의 언어로도 발화할 수 없었다. 30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 들어왔다고, 소총 개머리 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2년 동안 하혈로 영구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그 끔찍한 경험을 차마 되살릴 수 없었다. 누나는 너를 남겨두고 왔다는 자책감으로 이렇게 독백하고는 했다. “ 그래서 나에게 (꿈 속에서) 오곤 하는거야? 왜 아직 내가 살아 있는지 물으려고?”

 

너의 작은형은 날다람쥐처럼 달아다던 너를 도청에서 잡아 데려오지 못한 것을 평생 후회했다. 너의 어머니는 작은형과 함께 너를 찾아 도청에 갔을 때, 이미 어둠이 찾아오고 죽음의 그림자가 시시각각 밀려오는 그 기운을 모성으로 감지하며, 그나마 작은형이라도 살리고자 형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렇게 평생을 자식을 죽음 속에 놔두고 왔다는 죄의식에 눌려 죄인처럼 살다가, 돌아가셨다.

***

살아있었다면 너는 올해 시흔 두 살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그렇듯 너도, 훌쩍 커버려 성인이 된 아들이나 딸이 있었을 것이고 친구처럼 덤덤해진 아내의 손을 잡고 봄 산책도 할 것이며 어느새 중년이 돼버린 자신을 거울 속에서 확인하며 홀로 회한에 잠기기도 했을 것이다. 

 

너는 지금 없지만, 동호야.

 

살아있는 우리들은 죄의식이라는 돛단배를 타고 세월의 강을 건너온 세대인 듯하다. 숱한 선배와 후배와 동무들이 맞아 죽고, 고문당해 죽고, 너처럼 총에 맞아 죽고,  스스로 제 몸에 불을 지르고 민주를 외치며 죽어갔을 때, 우리는 살아있다는 것을 죄스러워하며 하숙방에서 홀로 참 많은 소주를 마셨었다.  군대를 갔다가 복학한 후 최루탄 날리는 교정을 피해 도서관으로 걸어갈 때 등 뒤로 날아 오던 죄의식의 화살은 언제나 묵직했고 어깨를 펼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사회에 나와 북창동 단란주점에서 접대를 했던 어느 밤, 비 오는 거리를 망연히 보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를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먹고 산다는 핑계로, 나이가 들어간다는 변명으로,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거나 대놓고 변질하며 이렇게 늙어왔다.

 

돌이켜보면 죄의식은 괴로움의 자학일 수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한 개인과 사회를 올곧은 방향으로 추진시키는 동력이라는 생각을 나는 한다. 부끄럽다는 것은, 부끄러운 세상을 살아남은 사람이 반드시 가지고 가야 할 예의였고 삶의 윤리였다. 재작년 세월호가 바다에 잠길 때 우리 어른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어른이어서 미안하다고 울었다. 아이들만 남겨두고 달아나는 사회, 누구 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는 나라를 만든 것이 미안해 울었다. 그나마 그것은 희망이었다. 개인과 시대의 양심이 함께 수장되지 않았다는 징표로 보였다. 

 

늙어가는 우리들은 여전히 죄스러워야 하고, 더 많이 미안해야 할 것이다. 덜 산 사람에게, 덜 살았다는 이유로 훈수나 훈계 따위를 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더 좋은 세상, 더 사람 냄새 나는 사회를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것을 그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그러할 때, 우리의 후배들도, 그들의 후배와 자식들에게, 죄의식을 지갑처럼 챙기며 살아갈 것이다.  그런 정도의 염치 있고 겸양한 나라를 우리가 만들 수 있다면, 나는 그리고 우리는 너에게 덜 미안해질 것 같다. 

 

다시 5월이 온다. 만개한 꽃들이 하나씩 떨어진 풍장의 길을 따라 너는 영원한 소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온다. 해맑게 웃으며 온다. 잘 살고 있냐고, 안녕하냐고 천진하게 물으며 온다. 나는 차마 너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햇살 밝은 쪽으로, 여전히 꽃 핀 쪽으로  달려오는 너의 발 만을 본다. 내려치는 죽비 소리 같은 너의 발소리만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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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용인(<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저자, 노매드 대표이사)

<딴지일보> 편집장을 거쳐 현재 노매드 힐링트래블 대표를 맡고 있으며, 심리에세이 《어른의 발견》,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 《사장의 본심》, 《남편의 본심》, 여행서 <<시가 있는 여행> <발리> 등의 책을 썼다. 또한 주요 매체들에 ‘윤용인의 심리 사우나’, ‘아저씨 가라사대’, ‘남편들의 이구동성’ 등 주로 중년 남성들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럼을 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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