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다. 그가 추억이 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거리는 그의 노래로 메워지기도 하며, TV나 라디오도 그의 흐느낌과 외침을 옮겨내고 있다. 생전의 그가 자주 공연을 벌이던 대학로엔 수많은 후배 가수들이 그를 추모하는 공연을 벌이기도 하고, 통기타를 메고 있는 그의 모습과 함께 노랫말이 적힌 비석이 세워지기도 했다. 심지어 그가 살아있었던 나날들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도 그를 기억하며 추억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지난 지금, 소중한 그의 노래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자는 바람에 스무 곡을 선정해 리스트를 마련했다.
슬픈 우연
김광석의 각별한 노래들이 많기에, 그의 데뷔작은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다. 1집 수록곡이자 자작곡이기도 한 '슬픈 우연'은 그렇게 조용히 알려졌다. 동물원 시절 부른 '거리에서'와 닮은 구슬픈 보컬, 블루지한 반주는 이후 포크적인 히트곡들에서 들을 수 없는 특이점이다.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을 '슬픈 우연'이었다고 표현하며, 시작부터 헤어짐의 과정을 관조한다. 절절하게 울려 퍼지는 가창은 이별 후의 고독함을 파고들고, 징글 거리는 기타와 반복되는 신시사이저 소리도 외로운 분위기를 고조한다. 처량하고 쓸쓸한 순간, 어느 곡보다 거칠게 감정을 가르고 들어와 소주 한 잔과도 같은 노래가 되어줄 것이다. (정유나)
기다려줘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과 동물원 활동으로 대학가를 비롯한 대중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전한 김광석은 그만의 방식으로 새로이 노래에 전념하고자 솔로를 택했다. '기다려줘'는 80년대를 마무리하는 동시에 음유시인 김광석 시대를 여는 1집(1989년)의 수록곡으로, B면에서도 두 번째에 자리하고 있지만 타이틀 '너에게' 이상으로 깊이 사랑받아온 작품이라 하겠다. 동물원에서 동고동락했던 김창기가 곡과 가사를 썼으며, 쓸쓸한 독백의 마지막에 쏟아내는 한마디 외침은 언제 들어도 애달프다. (조아름)
사랑했지만
김광석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곡이지만 그의 색깔이 가장 연한 노래기도 하다. 그는 '사랑했지만'에서 유려한 보컬과 절창의 발라드를 들려준다. '김광석' 하면 떠오르는 포크적인 요소는 없다. 다만 애절한 멜로디와 절절한 가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이 곡을 작곡 작사한 한동준은 김광석이 노래의 가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라는 수동적인 자세를 답답해했단다.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에서 김광석의 성격과 스타일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그가 3집에서 성향이 바뀐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김반야)
꽃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가수가 탄생하고 소멸한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노래만이 불멸의 존재로 우리 가슴 속에 남는다. 김광석이 그러하다. 그의 '무엇'이 대중들의 공감을 자아낼까? 쓸쓸함, 그것이다. 투박하면서도 절절한 그의 감성은 우리의 마음 한편을 파고들어 울린다. 정규 2집의 두 번째 곡 '꽃'은 그의 정서를 대표한다.
도입부의 피아노 반주는 우울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느려진 반주에 읊조리는 가사는 듣는 이를 집중시킨다. 겨울을 견디고 봄이 다시 찾아와 꽃은 피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단조를 머금은 관악기의 선율이 슬픔을 고조시킨다. 폐부 속 마지막 한 줌의 숨까지 토해 자아낸 그의 진동음(vibrato)은 귓속까지 파고들어 애달픈 여운을 남긴다. (현민형)
사랑이라는 이유로
1991년 <김광석 2집>에 수록된 '사랑이라는 이유로'는 피아노 선율 중심에 풍성한 사운드를 장식한 세련된 팝 발라드였다. 90년대 초반 김형석의 작법이 그대로 묻어난 곡을 한층 특별하게 만든 것은 역시 목소리였다. 담백하게 말하듯이 소리를 내뱉어도 진한 감성이 배어 나와 순식간에 청중을 집중시키던 그 보컬. 비록 음반의 타이틀곡은 아니었으나, '사랑했지만'의 처절한 아픔만큼 '사랑이라는 이유로'의 담담한 저릿함에 상당수가 응답했다.
1993년 <다시 부르기 1>에서는 포근한 오케스트레이션을 더해 시린 마음을 좀 더 따뜻하게 감쌌다. 더욱 깊고 짙어진 그의 음색은 새로운 편곡과 어우러져 원곡을 능가하는 아우라를 형성했다. 보편적 공감을 자아낸 가사, 시대를 타지 않는 세련된 멜로디가 김광석을 만나 영원한 생명력을 얻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하얗게 새운 많은 밤”을 보낸 모든 이들 가슴에서 이 노래는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정민재)
그날들
김창기 작사/작곡으로 1991년 <김광석 2집>, 1993년 <다시 부르기 I>에 수록되었다. 음악 예능이 범람하는 현재 후배 가수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 익숙지 않은 이들에게도 '김광석' 하면 떠오르는 곡 중 하나일 테다. 청와대 경호실에서 펼쳐지는 사건에 고인의 노래를 담아내 재탄생한 창작 뮤지컬 <그날들>의 제목으로도 쓰이고 있다.
최소한의 반주에 잔잔한 독백처럼 얹히며 시작해 고조되는 감정선에 취하며 점진할 때, 울부짖듯 그대를 목 놓아 부름은 사랑의 속성과 닿아있다. 말은 쉬워도 정말 어렵지 않은가. 내가 당신을 잊는 것도, 당신에게 내가 잊히는 것도. (이기찬)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별 직후 상실감은 생활 전반에 스며든다. 그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을 뿐인데 혼자 하는 모든 일이 왜 이리도 낯설고 헛헛한 건지. 시간조차 더디게 흐른다. 이쯤 되면 믿지도 않는 신이 원망스럽다. '거기서 비웃고 계신 거, 맞죠?'
나의 사적인 공간에 들어와 문을 닫는 순간, 허전함은 파도가 되어 나를 덮친다. 정신을 차려 뭔가를 해보려 해도 통 되지를 않고 하루 종일 휴대전화만 열었다 닫을 뿐이다. 기운은 없고 온종일 멍하다.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생의 감각이다. '어제보다 커진 내 방 안에'라는 가사는 사람의 자리가 빠져 생긴 물리적 공간을 포함한 그 모든 감각을 아울러 말함이리라.
이런 노래를 자주 들을 수는 없다. 매번 이 감성에 이입하다가는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때문에 곡이 제힘을 발휘하는 순간은 역시 연인과의 이별 직후일 거다. 이별의 응어리가 남았다면 이 노래와 함께 하룻밤 한숨으로, 눈물로 모조리 토해버리자. 남은 감정을 다 쥐어짜 낼 수 있도록, 김광석 아저씨의 나지막한 읊조림이 도와줄 거다. (여인협)
나무
늘 김광석의 음악은 '나무'같다고 생각했다. 이 곡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목소리에 서린 삶에 대한 응축된 집념과 의지는 폭풍우가 몰아쳐도 꼿꼿하게 자기중심을 지켜내는 나무의 강한 생명력과 닮은 면이 있었다. 자신이 선 곳에 단단히 뿌리내리고서 흔들림 없는 부동의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시간의 흐름에 맞춰 필요한 변화를 일구는 불변과 가변의 조화도 그랬다. 그의 음악은 고고한 자태로 우뚝 솟아있으면서도, 언제나 곁에 있었다. 우리가 걸어가는 생의 길목마다 나란히, 다정히, 말없이 그저 놓여서 지치고 외로워진 마음을 기댈 자리를 언제든 내어주었다.
김윤성 시인의 시에 한동헌이 멜로디를 붙인 3집 수록곡 '나무'는 이러한 개인적 견해와 인상이 지나친 것이 아니라고 믿게 한다. 곡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고조되는 사운드는 박자마다 침착하고, 나무와 혼연일체 된 김광석의 목소리는 욕심 없이 뜨겁다. '누구에게 감사받을 생각 없이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 뿐이오'를 지나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고 하오'에 다다를 때마다 나는 전율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악기들의 웅장한 하모니! 그가 펼쳐놓은 무성한 가지와 그늘에 마음을 누이며 또 한 번 그를 느낀다. (윤은지)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가 특정한 사람들을 묶은 것처럼 입대를 앞둔 청년들은 집단적으로 일시적이나마 이 곡에 자진 포박당한다. 특수한 상황 변화에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파고드는 이런 공감 파워는 대한민국 대중가수 사상 거의 그만이 갖는 특전이다. 그룹 '종이연'에서 윤도현이 먼저 불렀고 원작자인 김현성, 전인권 등 다수가 음반을 발표했지만 1993년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 <다시 부르기 1>과 함께 비로소 노래 주인을 찾았다.
처연하게 노랫말을 읊조리는 김광석 특유의 보컬 톤은 휴먼터치로는 역대 최고급이다. 2000년 박찬욱의 영화 <공동구역 JSA>에 삽입, 김광석 사후 부활을 기폭 하면서 그에 대한 대중 동의는 더 깊어졌다. 그 때문에도 김광석 전설 구축에 가장 다대한 정서 지분을 갖는 곡. 2009년 12월, 입대를 며칠 앞둔 아들이 묻는다. “아버지, '이등병의 편지'라는 노래 아세요? 오늘 친구들과 처음 들었는데 가슴에 와 닿던데요.” “어떤 대목이 좋든?”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여기요!” (임진모)
일어나
대중에게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앨범이자, 본인이 가장 좋아했던 앨범인 <김광석 네번째 >의 첫 곡 '일어나'는 위안이 되는 가사뿐만 아니라, 선율을 적어내는 재능과 조동익의 완전한 편곡이 빛나는 곡이다.
인생은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물과 함께 썩어가는 것이라고, 아름다운 꽃일수록 빨리 시들어 간다고, 그는 삶에 대한 비탄을 애수 맺힌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에도 일어나라고 한다. 어떠한 다른 말도 없이, 봄의 새싹들처럼 다시 한 번 일어나라고 위로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그 날부터 2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이 외침은 우리들 마음속에서 끝없이 사랑받고 소비되고 있다. (이택용)
바람이 불어오는 곳
활기찬 퍼커션 라인이 시작을 알린다. 가벼운 기타 리프가 그 뒤를 잇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동감 있는 보컬 멜로디를 품은 김광석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여기에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햇살이 눈 부신 곳으로 가자는 가사는 여행을 연상시켜 산뜻하기도 하고 새로운 꿈을 얘기해 희망적이기도 하다. 1994년의 네 번째 정규 음반 <김광석 네번째>에 수록된 이 곡은 김광석 표의 밝은 노래를 얘기하는 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김광석의 음악 인생을 대표하는 곡 중 하나다. 노래뿐만이 아니라 곡은 2012년, 아티스트의 생애를 다룬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제목으로도 쓰여 전 세대의 사람들이 찾는 애청곡이 됐다. (이수호)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필생의 동료 김창기가 끼적여놓은 한 편의 시는 김광석의 한없이 서그러운 목소리로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생명력을 얻었다. 그래서인지 1996년 2월 23일, 49재를 맞아 30팀의 동료들이 연세대 대강당에 모여 추모곡을 늘어놓았을 때 김창기의 선택은 역시나 이 곡이었나 보다.
맞다. 인간 본성에 끌어 나오는 숙명적인 외로움은 어떠한 노래나 서신, 심지어는 벌거벗은 여인의 사진으로도 갈무리될 수 없을 테다. 단지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며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같은 평범함을 관조적으로 바라보기, 그렇게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을 때 그에 대한 그리움마저도 차근히 씻기지 않을까. (이기찬)
회귀
제자리로 돌아감, 그것이 회귀다. '젊은 날 빛을 뿜던 친구들'은 마치 '목련'처럼, 하얗게 '피고 흙으로' 돌아간다. '회귀'는 김지하의 시에 작곡가 황란주가 음률을 입힌, 김광석의 발라드곡이다. 그는 기타 대신 피아노의 유려한 선율에 맞춰 담담한 어조로 지는 젊음을 읊조리고, 응축된 감정은 점점 고조되어 노래의 절정에 달해 곡소리처럼 터져 나온다.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는 슬픔, 그리고 죽음에 대한 성찰은 감정의 완급조절을 통해 호소력 짙게 다가온다.
김광석은 4집 <김광석 네번째>에서 한층 넓어진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회귀'를 비롯해, 주체적인 삶과 연대를 희망하는 '일어나'와 '끊어진 길', 존재의 존엄성과 자유를 외치는 '자유롭게'까지, 그는 사랑과 이별뿐만 아니라 삶의 전반으로 제재를 확장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회귀'는 '타는 목마름으로'와, '노래를 찾는 사람들' 시절 '녹두꽃'을 부르던 청년을 떠올리게 해 민중 가수로서의 김광석을 다시 한 번 상기 시킨다. 우리네 인생과 희로애락을 노래하던 김광석은 낙화(落花)가 되어 흙으로 '회귀'했다. (정연경)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등병의 편지'나 '서른 즈음에'처럼 인생의 고비에서 부른 노래이다. 그대를 멀리 보내고 홀로 술잔 앞에서 눈물을 삭히는 사랑의 '고통'을 노래한다. '지울 수 있을까'하며 괴로워하다가 가만히 자신을 달래고 나무란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제목 자체가 하나의 명문이다. 한참을 울다가 결국 잠겨버린 것 같은 목소리로 애써 '사랑이 아니었다'고 결론을 낸다. 하모니카와 기타마저 흐느끼는 노래를 들으며 어찌 함께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음악 그 자체가 하나의 울음이다. (김반야)
서른 즈음에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이 어느새 청춘을 매듭짓고, 왠지 모를 섭섭함이 피어오를 때쯤 떠오르는 '서른 즈음에'는 세대를 위로해 왔다. 떠나간 시간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아쉬움은 멜로디에 베어 들어 가슴을 울리고, 쉬이 터놓지 못한 외로움은 노랫말 뒤로 묻어두었다.
소박했던 그와 닮은 연주는 기교 없이 수수하다. 오래된 통기타 위로 퍼지는 목소리는 뜨거운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잊힌 추억을 상기시킨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떠나온 것도 아닌데' 아득한 청춘처럼 멀어진 순수하게 노래하던 모습이 그리워진다. (박지현)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김광석의 노래 중에는 빠른 곡이 드물고 특히 빠르고 힘찬 사랑의 노래는 이 곡뿐이다. 전반적으로 느리고 사색적인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하는 팬들이 분위기를 바꾸고 싶을 때 애창하는 노래다. 이 곡 역시 김광석이 한국의 과거 대표적인 포크음악가들의 곡을 재해석했던 1995년 <김광석 다시 부르기 2>에 수록했던 곡이다.
이 곡은 1970년대에 포크 음악을 시작해서 2000년대 초반까지 창작을 이어갔던 이정선이 1985년 그의 7번째 음반 <30대>에 수록되었다. 이 음반을 통해 이정선은 순수한 자연의 세계에 자신의 이상을 투영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지극히 개인적인 심정을 블루스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사운드로 표현함으로써 성인 음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런 배경을 고려해볼 때 <김광석 다시 부르기 2>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선곡이다. 이정선의 원곡은 숨 쉴 틈 없이 휘몰아치는 기타의 피치카토 주법이 듣는 재미와 연주하는 재미를 안겨준다. 별다른 연주의 매력도 없이 이 곡을 수록한 이유는 빠른 템포의 사랑의 노래라는 점을 빼고는 설명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아쉬운 곡이다. (김형찬)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김광석이 과거 한국 포크의 중요 곡들을 재해석함으로써 자신이 한국 포크 음악의 적자임을 드러냈던 1995년 <김광석 다시 부르기 2>에 수록했던 곡이다. 이 곡은 1960년대 미국의 모던 포크를 대표했던 음악인 Bob Dylan이 1963년 <Freewheelin' Bob Dylan >에서 'Don't Think Twice It's Alright'라는 제목으로 최초로 발표했다. 변화와 개혁의 시대 1960년대를 살았던 미국 젊은이들의 심정을 대변한 명곡이었다.
이 곡의 두 번째 계보는 한국으로 이어졌다. 1974년 양병집이 그의 첫 번째 음반 <넋두리 >에서 '역'(逆)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시대 상황을 풍자하는 가사로 바꾸어내어 그가 한국에서 프로테스트 포크를 제대로 이해한 음악인임을 증명했다.
김광석은 이 곡에서 3절의 가사를 다시 슬쩍 바꿔 부름으로써 현실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만약 김광석이 살아서 흙수저와 헬조선으로 조롱되는 한국의 현실을 목격했다면 과연 어떤 노래를 했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김형찬)
불행아
원곡은 포크 가수 김의철의 '저 하늘에 구름 따라'다. 유신 정권이 가했던 문화 폭력으로 예술계가 신음하던 1974년, 이 곡 또한 제목마저 손상된 채 세상에 나왔다(원제는 '불행아'). 김광석이 다시 부른 '불행아'는 당시 공연윤리위원회의 가위질이 닿기 이전 원형을 최대한 살린 버전이다.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일원이었던 그가 애달픈 운명을 가진 노래에 관심을 가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운 부모 형제 다정한 옛 친구 / 그러나 갈 수 없는 신세
'이등병의 편지'나 '서른 즈음에',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와는 달리, '불행아'라는 노래가 한 인생에 스며드는 순간은 세대를 불문한다. 홀로 왔다가 홀로 떠나는 보통 사람의 얘기. 그러나 그 어떤 자극보다도 강렬하게 와 닿는, 우리 시대의 묘사화(?)다. (홍은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1960년대 소울가수 오티스 레딩의 곡 '리스펙트(Respect)'를 아레사 프랭클린이 가져갔듯 '한국 블루스의 명인' 김목경도 의도치 않게 이 회심작의 소유권을 김광석에게 이전 당하게 된다. 그만큼 김광석이 1993년, 1995년 연속으로 발표한 <다시 부르기>앨범은 상당수의 리메이크를 김광석의 원곡으로 오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것은 한편으로 뛰어난 재해석이 낳은 산물이며 사모와 사부의 애틋한 감성을 부르는 이 곡은 그것을 단적으로 잘 설명해주는 사례일 것이다.
감동과 회한의 내러티브는 후반부로 가면서 끝내는 눈물샘을 자극하며 최루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부모와 가정을 가진 모든 이들이 공감하는 가사도 가사지만 거기에 생물 같은 느낌을 부여해 나지막하나 꿈틀거리는 김광석의 스토리텔링은 너무나 절절하고 슬프다. 어떤 낭만적 공상 혹은 관념의 언어도 그의 입을 통하면 삶에 맞닿는 '사실의 언어'가 된다는 점에서 김광석은 위대하다. (임진모)
나의 노래
김광석 노래 중에 이만큼 흥겨운 도입부를 지닌 곡이 또 있을까. 드럼 사운드가 시동을 걸고, 이내 코러스의 '랄랄라'가 신명에 이르는 속도를 충분히 끌어올리고 나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가 애달픈 양식'이 되더라도 그리 초라하거나 허름하지 않다. 한동헌이 작사 작곡한 3집 타이틀곡 '나의 노래'는 김광석의 몸을 뚫고 나오면서 온전한 김광석의 외침이 된다. '나의 노래'를 부르는 김광석은 시종일관 힘차다. 가난한 마음을 노래하겠다는 그의 치열한 음악적 소명의식에 젖어들고 있노라면 '흔들리고 넘어져도 이 세상 속에서' 그를 꺾을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을 것만 같다.
원래는 한동헌이 소속돼 있던 서울대학교 노래패 '메아리'의 1집에 '노래'라는 제목으로 실렸던 작품이었다. 이후 김광석이 부르게 되면서 '나의 노래'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1992년에 발매되어, 그해 가요계를 평정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돌풍에도 휩쓸려가지 않고 살아남아 사랑받았다. 그리고서 노래는 세대를 거쳐 오랜 기간 가난한 청춘들과 동행해왔다. 역시 그의 노래는 그의 힘이고, 또 우리의 힘임이 분명하다. (윤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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