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현 “김광석 형처럼 혼자 공연하는 게 소원이었다”
5년 만에 솔로 앨범 발표한 가수 윤도현 『노래하는 윤도현』쇼케이스 현장
가수 윤도현이 5년 만에 솔로 미니앨범 『노래하는 윤도현』으로 돌아왔다. ‘밴드 YB’ 안에서 그의 감성이 뜨거운 여름날에 어울리는 것이었다면, ‘솔로 윤도현’의 노래에서 묻어나는 것은 서늘한 가을의 정서다.
‘노래하는 윤도현’ 예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 기록
지난 9월 16일, 가수 윤도현이 5년 만에 발표하는 솔로 앨범 『노래하는 윤도현』의 발매일에 맞춰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장소는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예스24 무브홀’. 방송인 김제동의 소개로 무대에 오른 그는 이번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은 ‘밴드 YB’의 기타리스트 허준과 함께였다. 록밴드의 보컬리스트가 아닌 포크 뮤지션으로 홀로 서는 무대가 어색하지는 않을까. 그것이 기우라는 것을 입증하는 듯 흔들림 없이 묵직한 목소리가 허공을 채웠다. 담담하게 노래하는 축축한 가을의 정서는 공연장을 가득 메우며 취재진을 사로잡았다.
『노래하는 윤도현』에는 더블 타이틀곡 「빗소리」 「우리 사랑했던 시간만큼」을 비롯해 「요즘 내 모습」 「가을 우체국 앞에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등 총 다섯 곡이 수록되어 있다. 기자간담회를 통해 라이브로 만나볼 수 있었던 곡은 총 세 곡-어쿠스틱 기타의 선율이 듣는 이를 사로잡는 「우리 사랑했던 시간만큼」과 전형적인 모던 포크록 성향의 「빗소리」, 그리고 95년 발매된 데뷔 음반 수록곡을 20년 만에 리메이크한 「가을 우체국 앞에서」였다. 때로는 이별을, 때로는 세상살이를 이야기하는 그 노래들은 기타 선율과 윤도현의 목소리라는 두 개의 축 위에 서 있다. 격정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호소력 짙고 절절하지 않으면서도 애잔하게 와 닿는 목소리, 거기에는 모자라지도 않고 과하지도 않은-적당하게 우울한 가을의 분위기가 담겨 있다.
사실 이번 앨범은 발매 전부터 화제가 되며 팬들의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다. 선공개 된 「요즘 내 모습」은 에픽하이의 타블로와 케이윌의 참여로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고, 더블 타이틀곡인 「빗소리」와 「우리 사랑했던 시간만큼」의 뮤직비디오는 『노래하는 윤도현』의 색깔을 강렬한 이미지로 각인시켰다. 특히 「빗소리」의 뮤직비디오는 본편 없이 2분 남짓한 트레일러 형식으로만 제작된 데다, 윤도현의 무반주 노래와 내레이션이 더해져 궁금증과 기대를 증폭시켰다. 함께 출연한 모델 김태환과 뮤지컬 배우 이다은의 감각적인 연기 역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에 반해 「우리 사랑했던 시간만큼」의 뮤직비디오는 짧은 로드 무비를 보는 듯한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영상미, 직접 출연한 윤도현의 연기로 큰 화제가 되었다. 최근 영화 <족구왕>으로 관객의 시선을 훔친 배우 황승언이 여자 주인공으로 열연하기도 했다. 「빗소리」 「우리 사랑했던 시간만큼」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이는,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비켜줄께」 정엽의 「Without You」 미쓰에이의 「Good-bye Baby」 등을 통해 섬세한 영상미를 인정받은 송원영 감독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화제가 된 것은, 윤도현의 첫 단독 콘서트 <노래하는 윤도현>의 전회 매진 소식이었다. 다음달 2일부터 19일까지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진행될 이번 공연은 티켓 판매 오픈과 동시에 전회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앨범 발매 이전에 이루어진 예매였는데도 불구하고!) 싱어송라이터로서 윤도현의 무대를 기다려온 팬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에게 『노래하는 윤도현』의 발매와 공연 소식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콘서트 ‘노래하는 윤도현’은 윤도현이 데뷔 이후 처음으로 혼자 오르는 무대이자, 앨범 『노래하는 윤도현』에 실린 전곡을 라이브 무대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무대다.
아울러 이전의 솔로 앨범과 밴드 YB의 앨범에 실린 곡들도 만나볼 수 있다. 이 의미 있는 만남을 위해 윤도현은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는 등,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관객들과 음악적 교감을 나누기 위해 여타의 활동을 최소화한 채 공연 준비에만 집중하고 있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20년 만에 다시 불러 보니…
2005년 솔로 프로젝트앨범 『Difference』를 시작으로 2009년 솔로 미니앨범 『Harmony』을 발매하고,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솔로곡들로만 채워진 음반 『노래하는 윤도현』을 발표한 가수 윤도현. 그에게 이번 앨범과 동명의 콘서트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언론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옮겨갔고, 윤도현은 솔직담백한 고백을 들려주었다.
이번 앨범의 제목을 『노래하는 윤도현』으로 지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노래하는 윤도현’은 제 사인이에요. 처음에 누군가가 저한테 사인을 해달라고 했을 때, 그때가 대학로 시절인데요, 사인이 없었으니까 그냥 ‘윤도현’이라고 썼다가 집에 가서 고민한 끝에 만든 거예요. 조금 촌스러우니까 그때는 더 멋있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노래하는 윤도현’ 만큼 저한테 어울리는 이야기가 없는 것 같더라고요. 이번 앨범은 ‘윤도현’에 집중해서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자켓 사진도 전부 제 사진으로 채웠고, 앨범 제목도 『노래하는 윤도현』으로 지었어요. 공연 타이틀로도 어울리는 것 같았고요. 김광석 형처럼 혼자 공연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번에 할 수 있게 됐어요.
콘서트 ‘노래하는 윤도현’의 무대로 학전블루 소극장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공연장을 선택할 때 많은 고민을 했어요. 이곳 ‘예스24 무브홀’처럼 좋은 공연장이 참 많이 있는데요. 그래도 저는 학전 소극장을 고집했어요. 제가 초창기 때 ‘노래하는 윤도현’ 사인을 처음 만들고 그 사인을 한 곳이 대학로거든요. 대학로에서 공연도 많이 했고 학전 소극장에서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리고 저한테 아버지 같으신 김민기 선생님께서 계속 학전 소극장에 계시니까 의미가 있을 것 같았고요. 그곳에서 김광석 형 공연도 봤었고 게스트도 해봤어요.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그때로 돌아가는 느낌으로 공연을 해보고 싶어서 학전 소극장을 고집하게 됐습니다.
타블로, 케이윌을 비롯해서 옥상달빛, 에스나와 함께한 작업은 어떠셨나요?
에스나, 옥상달빛과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같이 음악 할 기회가 없을 것 같더라고요. 밴드 YB의 음악은 온전히 YB 안에서만 만들어지니까요. 특히 여자 후배들하고는 작업할 기회가 전혀 없어요. 옥상달빛과 에스나는 제가 너무 팬이기도 하고, 이번에 같이 작업하면서 그 친구들을 통해서 제 음악에 실려 있는 남성적인 면을 빼고 싶었어요. 조금 더 달콤하고 부드럽게 만들고 싶어서 함께 했죠.
데뷔 앨범에 실린 많은 곡들 중에서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리메이크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리메이크 작업이 끝난 후의 느낌은 어땠나요?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부를 때 가슴에 뭔가가 꽉 차오르는 미묘한 감정들이 있었어요. 오래 전 곡을 리메이크하는 것이라서 그렇기도 했고, 그동안 공연장 곳곳에서 이곡이 가지고 있는 힘을 느껴봤기 때문에 그렇기도 했어요. 녹음을 마치고 모니터링을 할 때는 코끝이 시큰해지더라고요.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라는 구절만 나오면 코끝이 시큰해지는 거예요. 정말 이 곡의 가사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곡은 사랑하는 연인들한테도, 그리고 헤어진 연인들한테도 충분히 어떤 감정을 줄 수 있거든요. 제가 이 곡을 부르면서 처음으로 눈물 흘렸던 무대가 ‘양심수 석방의 밤’이었어요. 무기수로 복역하시던 분이 출소하셔서 어머님을 만나는 모습이 영상으로 나오면서 이 곡을 부르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가을 우체국 앞에서」는 정말 명곡 중의 명곡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리메이크하게 됐고요.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20년 만에 다시 불렀는데, 달라진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의 통 큰 소리보다는 목소리 자체가 허스키해진 부분이 있죠. 반면에 표현력이 풍부해진 부분도 있고요. 그런 것들이 제가 변화를 꿈꿨다기보다 저절로 변한 것 같아요. 그 변화가 싫지도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변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도 또 다른 모습일 것 같은데요. 그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해요.
데뷔 앨범에서 윤도현 씨는 포크 뮤지션에 가까워 보였는데, 이후에 밴드를 만들고 록 음악을 추구했어요. 그러다가 지금 다시 포크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헤비메탈 밴드로 처음 음악을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때 헤비메탈에 빠져 있었거든요. 이건 웃긴 대답일 수 있는데, 밴드를 할 기회가 없다 보니까 혼자 통기타를 치면서 음악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포크 팀에 들어갔고 그러면서 포크 음악에 매료됐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데뷔 앨범이 포크 록 감성이 가미된 앨범으로 나온 거예요. 저는 원래 밴드를 꿈꿨기 때문에 밴드를 해오고 있지만, 곡을 쓸 때도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를 사용해요. 요즘 음악하는 후배 분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곡을 쓰지만, 저는 아직도 통기타와 피아노를 치면서 곡을 쓰거든요. 그렇게 나온 곡들이 자연스럽게 많이 쌓이게 됐어요.
그리고 제가 볼 때는 포크 음악과 록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자연스럽고, 가사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힘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죠. 그러니까 제가 포크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을 계속 참고 있다가 드러냈다기보다는, 계속 가지고 있는 감성인데 YB 안에서는 하지 않는 것뿐이죠. YB만의 정체성이나 색깔도 지켜가야 하니까요. 그러다가 이번에 『노래하는 윤도현』이 기회가 돼서 포크 음악을 하게 된 거예요.
『노래하는 윤도현』의 기자간담회 사회를 맡은 방송은 김제동은 “이번 앨범이 많은 분들에게 가을날의 편지 같은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처럼 『노래하는 윤도현』은 평범한 가을의 어느 하루와 그런 날의 어떤 감성을 속삭인다. 불어오는 쌀쌀한 바람에 마음이 허전한 것 같고, 발밑에 나뒹구는 낙엽에 ‘사는 일’을 생각하게 되는, 평범한 가을날에 우리가 떠올리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 사랑했던 시간만큼」 「빗소리」 「요즘 내 모습」 안에서 그건 오래 전 혹은 얼마 전 떠나간 연인이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에서는 가야할 때를 알고 떠나는 ‘아름다운 것들’의 모습이고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그것은 빛바랜 영화 속 처절하게 사랑했던 연인들에 대한 기억이다. 그래서 『노래하는 윤도현』은 이 가을과 참 잘 어울리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