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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또 올 것이다 - 김정미 <봄>

봄노래들은 봄이 왔을 때 말고 겨울에 들어야 제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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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봄이 곧 올 것이라고 노래한다. 이 땡 겨울에 봄이 뭔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꿈결처럼 감탄해야 하는 계절 아니겠나. 우리에게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고 할 만한 것이 과연 얼마나 남았는가. 지금은 봄뿐이다. 봄이 어서 와야 하는 것이다.

초강력 한파 후일담으로 입을 열겠다. 따듯하다는 대만, 홍콩 등의 아열대에서 동사자가 발생하고 포근한 오키나와에도 눈이 내렸다고 한다. 제주도에도 32년 만의 황당한 폭설로 수만 명이 고립되고, 서울 기온이 모스크바를 이겨 먹는 이변도 벌어졌다. 나는 뉴스를 볼 때마다, 바깥에 나갈 때마다 으아 이게 말이 되냐 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겨울이 그냥 넘어갈 리 없겠지만 이번 겨울 이 자식 유독 못되게 굴었다. 물론 먼저 시비를 건 건 인간들이겠지. 자연을 꾸준히, 열심히, 격렬하게, 상습적으로 괴롭혀 왔으니 요런 식으로 역관광 당해도 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지구 최강의 지능이 있긴 한 걸까 자괴감마저 든다. 
 
겨울마다 동남아로 쨌던 여파로 나는 돈이 떨어져 이번에 꼼짝 못 하고 당했다. 우리 집은 한파경보 기간에 보일러 온수관이 얼음땡 놀이를 해 샤워도 못 하고, 설거지도 못 했다. 그쯤이야 카리스마로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급기야 하수관이 팅팅 얼어붙어 버려 아예 물도 쓸 수 없게 되었다.
“아아 집에서 세안도 못 하게 만들다니, 체면 좀 세워줘….”
결국 외모가 꾀죄죄해지기까지 해 짧지 않은 인생에 큰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게다가 한 번 발동된 강추위가 눈썹 한 가닥 까딱하지 않는 카리스마를 부리는 와중에 나는 이사까지 겹쳤다. 
 
이사 갈 집이 마침 비어있어 거지 같은 체리색(아 수능에 미술을 필수로 좀 넣든가 하자 좀) 마감재들과 인테리어 전면전을 시작했는데 몇 초 만에 멘붕이 오더라. 이건 뭐 손이 곱아 하는 공사마다 삐뚤빼뚤했다. 삼 년간 애인 없이 버틴 솔로의 한 많은 정신력으로 정교한 칠 작업을 간신히 마쳤으나, 붙어서 얼은 마스킹테이프가 벽지와 함께 메롱 메롱 하며 벗겨지자 멘탈이 남아나질 않았다. 왜 자꾸 일어나니? 벽지니, 습자지니? 계속 우는소리를 하며 카리스마를 잃어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창을 열면 너무 춥고, 닫으면 페인트 냄새가 독해 골이 아팠다. 거울 보면 꾀죄죄했다. 돈 좀 쓰면 친환경 페인트를 살 수 있었는데 올겨울엔 내 지갑도 한파경보였다. 
 

크기변환_김정미 앨범(출처 maniadb.com).jpg


사설이 길었고, 역시 대책으론 음악이 있었다. 오늘 소개할 곡은 아주 옛날 음악이다. 나는 작업현장에 난로 대신 조그만 블루투스 스피커를 챙겨갔다. 난로가 없어서였다. 그런데 듣던 음악 중에서 아주 오래된 어떤 노래가 추위 속에서 경직된 내 맘을 한없이 따사롭게 위로하는 것이었다. 무슨 음악이 이토록 달큰하고 몽롱한 이불 속 같지? 싶었는데 그게 김정미의 <봄>이었다.
 
음악이 강추위에 노가다 뛰는 무명 소설가를 위로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음악은 음악 그 자체로 강력하고 독립적인 존재성을 과시하는 아름다움의 영역 아닌가. 기능성 따위의 말은 내복에나 써야 한다. 그런데도 김정미의 <봄>은 내게 난로나 내복보다 더 따스한 감각을 기능적으로 쪼여준 축복이었다. 음악이 원적외선 같을 줄이야. 나는 촌스러운 꽃무늬가 돋을새김 된 벽을 박박 칠하며 하염없이 <봄>을 들었다.

 

 

 새파란 나뭇가지가 호수에 비추어지면
 노랑새도 노래 부르며 물가에 놀고 있구나

 

순간적으로 뭐라 그러는지 모르겠는 노랫말이지만 희한하게 몽롱한 톤과 색채감이 좋았다. 파랑과 노랑을 섞으니 사이키델릭이 되는 것이었다. 과연 한국 사이키델릭 록의 여제라 불릴 만한 음색이었다. 
 
이 곡은 역시나 한국 록 음악의 교장 샘인 신중현 할아버지가 만들었다. 여러 가지 장르를 넘나들었던 신중현 사단 목소리 중에 가장 현실을 초월한 목소리가 김정미라고 생각한다. 가장 감상적인 목소리는 박인수, 가장 롹적인 목소리는 김추자. 가장 못 부르는 건 신중현. 나는 신중현 음악을 들으며 자란 세대가 아니다.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도 옛것보단 새것만 좋아했다. 그런데도 신중현 할아버지의 음악들에 어느 날 홀라당 빠져버린 건 가공할 몽환성 때문이었다. 술 같은 걸로 이완된 흥에다 현실을 살짝 부정하는 정신세계가 결합한 듯한 그 특유의 환각적이고 끈끈한 음악성이 너무 매혹적이었다. 
 
몽환 하니까 이 얘기를 하고 싶다. 나는 돈 떨어지면 인테리어 알바를 가끔 뛰는데 공사 현장에서 만나는 목공, 금속, 전기 사장님들과 달리 확연히 구분되는 존재가 도장(塗裝)하는 사람들이었다. 계약서에 찍는 도장(圖章)이나 무예를 닦는 도장(道場) 말고 뭔가 색칠을 맡는 사람들 말이다. 재미있는 건 도장하는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정신의 나사 하나가 빠진 몽환적인 느낌을 풍긴다는 점이다. 좋게 보면 현실에서 좀 벗어난 것 같고, 나쁘게 말하면 사람이 좀 이상하다. 모든 도장공이 그렇진 않겠지만 내가 본 표본에선 희한하게 그랬다. 아무래도 휘발성 용제가 포함된 도료 냄새를 지속해서 맡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초점이 나갈 수도 있고, 아름다운 색채를 다루는데 현실은 노가다인 카오스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도 셀프 인테리어의 기본인 페인트칠 작업을 추워서 창문도 안 열고 일주일 째 하다가 좀 사이키델릭해졌다.  
 

크기변환_김정미1.jpg


날씨마저 이상해진 지구 위에서, 사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업무 스트레스, 속박감, 압박감, 의무감, 책임감, 통장이 썰매장인 줄 아는 개 같은 월급 등등 갖은 지독한 냄새들로 인해 실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이 몽환적인 음악 <봄>과의 공감대가 있을 것이다. 
 
<봄>은 봄이 곧 올 것이라고 노래한다. 이 땡 겨울에 봄이 뭔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꿈결처럼 감탄해야 하는 계절 아니겠나. 우리에게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고 할 만한 것이 과연 얼마나 남았는가. 지금은 봄뿐이다. 봄이 어서 와야 하는 것이다.


신중현 님의 퍼지는 어쿠스틱 기타 소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김정미 님의 봄에 대한 몽롱한 표현력은 이 겨울 인테리어 하다 얼어 죽기 직전이었던 내게 참 따듯한 구원이었다. 
 
어딘가 뭔가 살짝 이상한 것이 반드시 이상한 것은 아닐 테다. 인간이 지나간 자리는 다 황폐해지는데 우리가 과연 제정신인가 싶기도 하다. 
 
이제 몽롱한 상태로 봄을 기다리겠다는 얘길 하며 입을 닫겠다. 무례한 인간들에게 관대한 자연은 또 봄을 줄 것이다. 다만 언제까지 관대하진 않을 거라는 걸 이번 한파로 카리스마 넘치게 교훈을 준 건 확실하다. 
 
김정미 님은 유신 이후 신중현 사단의 금지곡 파문에 휩싸이며 방황하다 이민을 갔다고 들었다. 뒤 소식은 알 수 없다. 현실의 압박감을 벗어나기 위해 몽롱함을 선택한 사람이 견딜 수 없는 건 맹렬한 겨울일 것이다. 바짝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얼어 죽을 수도 있는 겨울일 것이다. 
 
아무튼 봄노래들은 정작 봄이 왔을 때 말고 겨울에 들어야 제맛인 것 같다. 음악을 들으며 조금만 더 봄을 기다릴 용기가 생기는 맛이 그게 또 아름답지 않겠는가. 채널예스 독자님들도 좋아하는 봄 노래들과 함께 막바지 추위 잘 견디시길 빈다. 우리 집 하수도는 아직 안 녹았지만, 이기적이고 못된 정치인들은 또 거짓말을 해대고 있지만 두고 봐라, 결국 봄은 또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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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상 (소설가)

소설가. 장편소설 『15번 진짜 안 와』, 『말이 되냐』,『예테보리 쌍쌍바』와 소설집 『이원식 씨의 타격폼』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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