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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왕이 되려는 남자, 공개적 살인을 꿈꾸다 - 연극 〈수상한 수업〉

미스터리의 쾌감과 짙은 감성을 녹여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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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죄의 단죄는 무엇이며 그에 따른 죗값은 무엇인가?” 연극 <수상한 수업>이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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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수업’의 진짜 이유


아무도 살지 않는 등대섬, 두 남자의 <수상한 수업>이 시작된다. 오천만 원의 수업료를 대가로 49일간 이어지는 연극 연습. 수업의 목적은 분명하다. ‘리어왕’을 꿈꾸는 일흔의 노신사에게 연기를 지도하는 것.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노신사는 왜 ‘리어왕’이 되고 싶은 걸까, 변변한 이력조차 없는 15년차 조연출을 선생으로 선택한 이유는 뭘까, 연습 공간으로 무인 등대섬을 고른 저의는 무엇일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은 ‘수업의 진짜 목적’을 추리하게 한다. 그리고 작품은 좀처럼 진실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단서의 조각들을 흘리며 집요하게 관객을 끌어들인다.

 

노신사는 미스터리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인물이다. 을씨년스럽게 비가 내리던 밤, 검은색 비옷을 입고 극단을 찾아온 그는 ‘은행에서 훔쳤다는’ 오천 만원을 내민다. ‘리어왕’을 연기하고 싶다는 그에게 조연출 유진원은 묻는다. 늦은 나이에 연기에 도전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노신사는 망설임 없이 답한다. ‘공개적으로 살인을 하고 싶어서’ 순간 스치는 섬뜩함은 그 이유를 알 수 없기에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되며 노신사는 체력적 한계에 부딪히지만, 사랑하는 딸 ‘코딜리아’를 잃은 ‘리어왕’의 애끓는 감정을 연기할 때는 조금도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 유진원을 놀라게 한다. 연습이 진행될수록 ‘리어왕’에 가까워져 가는 노신사는 자신의 것인지 ‘리어왕’의 것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을 쏟아낸다.

 

유진원에게 있어 노신사는 조우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유년의 기억에 대해 묻는 노신사 앞에서 그는 자꾸만 도피하려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노신사는 조금도 물러설 마음이 없다는 듯 진원의 과거를 파고든다. 벗어날 수 없는 공간-등대섬 안에서 진원은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희곡을 집필한다. ‘유령’이라 이름 붙인 작품 속에서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죄책감의 그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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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러 진실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두 남자의 끈질긴 인연과 상처, 수업의 진짜 이유까지, 거대한 퍼즐이 맞춰진다. 그 앞에서 우리는 부성애를 발견하게 되고, 용서에 대해 묻게 된다. 극작가 오은희의 언어를 빌리자면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죄의 단죄는 무엇이며 그에 따른 죗값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연극 <수상한 수업>은 2014년 예술의 전당에서 기획?제작한 작품으로, 올해 1월부터 대학로 무대로 자리를 옮겨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기획 단계부터 배우 박웅을 염두에 두고 쓰인 만큼 노련한 배우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묵직한 감성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50여 년 동안 연극인으로 살아온 배우 박웅은, 이미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 반 남짓 이어지는 공연의 호흡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며 거장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그와 함께 극을 이끌어가는 유진원 역에는 배우 김재만과 박준이 더블캐스팅됐다. 김재만은 초연에 이어 또 한 번 <수상한 수업>에 합류했고, 박준은 아버지 박웅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2인극 특유의 강한 흡인력을 바탕으로 미스터리 작품만이 안겨줄 수 있는 쾌감, 짙은 여운을 남기는 감성을 모두 녹여낸 작품 <수상한 수업>은 오는 2월 28일까지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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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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