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파는 데 지친 이들에게 - 뮤지컬 <곤, 더 버스커>
뮤지컬 <곤, 더 버스커>
꿈을 이루기 위해 원치 않는 경쟁을 해야 하는 모두에게 뮤지컬 <곤, 더 버스커>가 보내는 응원은 뜨거우면서도 시원하다.
당신의 꿈을 삽니다
뮤지컬 <곤, 더 버스커>를 통해 본 이곳은 꿈이 거래되는 공간이었다. 무대를 보고 있노라면 자리에서 일어나 힘껏 외치고픈 생각도 든다. ‘당신들이 뭐라고, 그들의 꿈을 사려 하냐고!’ 그러나 끝내 삼키고야 마는 것은,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는 꿈을 사거나 팔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라는 쓴 자각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엄혹한 현실 앞에서 <곤, 더 버스커>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과연 또 다른 선택이 있기는 한 걸까. 강한 호기심이 뒤따른다.
거리에서 음악을 하는 청년 ‘곤’은 스스로를 당당하게 ‘버스커’라 소개한다. 언젠가 유명한 가수가 되겠다는 호언장담이나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한탄 같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 같은 건 없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맘속에 너무나 많아” 거리로 나섰고 “노래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 마음에 기대” 노래했을 뿐이니까. 거창하거나 옹색한 변명 따위는 필요 없다.
그런 그의 앞에 우연인 듯 운명처럼 나타난 ‘니나’는 음악을 ‘만지는’ 영혼이다. 청각장애를 갖고 있어 음악을 들을 수는 없지만 기타의 울림으로 곤의 음악을, 공기의 떨림으로 쌍둥이 동생 ‘원석’의 연주를 느끼며 춤을 춘다. 그녀는 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거리로 나섰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어릴 적 헤어진 엄마를 찾고 싶다는 것.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니나는 온 몸으로 세상에게 말을 건다.
곤과 니나, 원석은 밴드 ‘니나잘해’를 결성하고 니나 남매의 엄마를 찾기 위해 공연 모습을 유튜브에 공개한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실력과 사연에 관심을 가질 때 누군가는 그들을 먹잇감으로 바라봤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열풍을 이용해 시청률을 올리려던 방송국 SKS가 접근해 온 것. 그들은 본선 진출을 보장해 주겠다는 달콤한 말로 유혹하며 ‘니나잘해’ 밴드에게 출연을 제의한다.
‘니나잘해’의 인기에 편승해 자신들이 기획한 프로그램 ‘게릴라 버스커 k’를 성공시키려는 그들은 스스럼없이 말한다. “중요한 건 시청률”이라고. “방송이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그들에게 진실이란 어리석은 자들이나 지켜내는 것이다. ‘우승자를 미리 정해놔야 각본을 쓸 수 있다’고 믿는 그들에게 밴드 ‘니나잘해’는 쓸 만한 미끼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니나 남매의 사연을 이용해, 흔히 말하는 ‘감성 팔이’를 함으로써 시청률을 올려보겠다는 계산인 것이다. 그 사실을 전혀 알 길 없는 ‘니나잘해’는, 불공정한 경쟁을 거부하고 싶지만, 니나에게 엄마를 찾아주기 위해 출연을 결심한다. 실력으로 우승하면 된다는 각오로.
시원하게 ‘깽판’ 한 번 쳐주세요!
방송에 출연하면서 밴드 ‘니나잘해’는 거리의 예술가에서 거대 권력의 꼭두각시로 전락한다. 그들과 함께 경쟁에 참여한 이들도 마찬가지다. 시청자를 유혹할 수 있도록 더 극적인 그림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요받고, 때로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이도록 주문받는다.
누군가는 이 상황을 ‘윈-윈’이라 부를 지도 모른다. 출연자는 명성을, 방송사는 시청률을, 시청자는 재미를 얻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라고. 그러나 “그래. 기왕에 상금은 타면 좋겠고, TV에 나가는 것도 좋아. 하지만 적당히 해줘. 우린 장난감이 아니잖아”라는 버스커들의 외침 앞에서도 ‘이건 모두가 승자인 게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조작된 진실 앞에 기만당한 시청자도, 각본 뒤에 자신을 감춰야 했던 출연자도, 모두가 패자인 건 아닐까.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 앞에서 하나의 대답만은 흔들림이 없다. 어떤 경우든 방송국은 승자일 뿐이라는 것.
뮤지컬 <곤, 더 버스커>가 남기는 진한 여운은 이 이야기가 버스커들만의 것은 아니라는 데에서 비롯된다. 꿈을 이루려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해야 하는 것이 그들만의 운명은 아닌 까닭이다. 결코 동의할 수 없는 ‘게임의 룰’을 이유로 경쟁을 거부해봤자 뒤따르는 건 ‘루저’라는 평가뿐이기에, 어쩔 수 없이 짜여진 판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은 모두의 현실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존재’가 아닌 ‘가치’로 평가받는다. 그저 나인 채로 살아가고 싶지만, 그렇게 해서는 꿈을 팔 수 없다. 꿈을 사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의 입맛에 맞게 스스로를 덧붙이고 잘라내야 한다. 우리 모두, 그렇게 꿈을 판 대가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이쯤 되면 <곤, 더 버스커>의 무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강한 열망이 담긴다. 객석의 우리를 대신해 세상을 향해 통쾌한 한 방을 날려주기를, 시원하게 ‘깽판’ 한 번 쳐주기를 기다리게 된다. 대리만족이라고 불러도 좋을 법한 그 마음은 관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강하게 빨아들이는 <곤, 더 버스커>의 힘이다. 록 발라드 힙합으로 구성된 넘버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와 관객을 자유자재로 웃고 울리는 매끄러운 스토리 역시 이 작품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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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