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를 살리는 16가지 아이디어
『세운상가 그 이상』
국내 최초의 세운상가와 그 일대를 조명한 책으로 단순히 세운상가의 역사와 현재에 집중하기 보다, 세운상가 개발을 두고 새로운 국내외 도시계획과 개발 관련 전문가가 모여 이행 전략을 종합적인 시각으로 탐색해 본다. 책 제목대로 세운상가만을 이야기 하지 않고 그 ‘이상(beyond)’을 다룬다.
고성장 시대를 풍미한 대규모 물리적 개발의 한계는 그간 여러 관점에서 드러났다. 대표적으로는 기존 도시조직의 파괴, 공간 가운데 켜켜이 쌓여온 역사적 흔적의 일시적 소멸,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공공 또는 민간의 공급 위주 개발 방식, 그 가운데 소외되는 공간 사용 당사자들의 이해, 개발의 결과로 들어서는 슈퍼 블록과 기능 간 분리의 부작용 등이 있다. 전후 반세기 안에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한국은 이제 그 수도 서울을 비롯해 중소도시는 물론 주요 도시마다 저성장, 인구고령화, 저출산의 여파를 빠른 속도로 경험하고 있다. 수도 권의 인구 집적과 규모의 경제 효과로 서울은 원도심 쇠퇴가 상대적으로 덜 하긴 하지만, 중심상업지구 사이에 위치해 그 입지의 편익이 높다고 볼 수 있는 세운상가군 역시 1970년대 강남권의 부상과 2000년대 세계적 금융위기와 유동성 위기, 부동산 건설 경기 쇠퇴의 영향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이제는 대규모 개발계획에 대한 한계를 논의하고 비판하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그러면 어떻게 할지를, ‘이상’과 ‘다음’을 논할 때이다. 기존 물리적 재개발의 대안을 이야기하는 요즘, 그 실체에 대해서는 논의가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거대한 도시 변화의 흐름과 공론의 장 가운데 그 빈약함을 조금이나마 보완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특히 세운상가 지역의 미래를 그릴 때 대규모 개발계획 ‘그 이상’의 조건으로 꼭 한번 함께 고민 해봐야 할 주제들을 한 책에 모았다. 곧 ‘젠 트리피케이션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과 사전대비’, ‘소통 및 시민참여의 구체화’, ‘기존 산업과 주민에 대한 존중’, ‘점진적 재개발의 방법론과 가이드라인’, ‘개발 이익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분배’이다.
청계상가
ⓒ건축전문 사진작가 노경
‘고급화’로 번역되기도 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한국 도시의 개발행정이 사실상 오래 전부터 조장해왔다. 남루하고 퇴락한 시설이 반짝반짝한 시설로 대치되고, 기존에 살던 이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임대료를 기꺼이 낼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면, 그 지역의 개발 또는 재생은 성공한 것이라 여겨졌다. 만약 세운상가 지역 재활성화가 계획대로 ‘성공’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이 곳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날 수밖에 없으리란 걸 예측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추세대로 갈 때 과연 이 지역이 시민이 원하고 누리고 싶어하는 공간으로 남을 수 있을지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정당화하고 조장하는 빅 플랜에서 어떻게 하면 기존 사람들과 함께 지속해서 가치를 창출하며 그 가치를 다시 지역에 투자하는 계획으로 전환 할 수 있을지, 그 전환의 가능성을 탐구해본다.
기존의 대규모 개발계획이 차질 없는 개발, 즉 위로부터 부과한 계획대로의 실행을 지향했다면, 이제는 차질 없는 개발 이면에 묻힌 시민의 목소리와 무시되어온 온 다양한 이해관계 자들의 이해를 돌아볼 때다. 이는 계획과정의 혁신을 요구한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소통’에 접근하고, 개발 과정을 설계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시민참여형 마을 만들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여전히 대규모 계획의 도시 스케일로 실현하기에는 아직 힘들기에, 더 더욱 다른 개발 프로세스, 즉 ‘소통’과 ‘시민참여’가 가져올 도시 스케일의 영향력에 대해 이 제는 기대해봐야 한다.
세운상가는 특히 도심 산업의 내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시간의 켜들을 하나씩 세어볼 수 있 는 곳이기도 하다. 도심 산업 역사를 밀어버리기보다는, 이를 어떻게 지역의 자산으로 보존하 고 계승시켜나갈지 고민이 필요하다. 도심 산업, 특히 창의적 제조업은 도심의 문화적 활기와 균형잡힌 사회경제 생태계 조성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 때문에 그 중요성이 점점 더 크게 인식 되고 있다. 도심 산업과 관련한 근대 건축물 역시 그 가치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따라서 소 상공인들을 지역내 가치창출의 주인공으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며, 기존의 공간과 새로운 필 요의 공존을 모색한다면, 산업역사와 호흡하는 도시 공간을 함께 가꿔갈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는 세운상가 지역을 ‘짐진적 개발’로 접근하겠다고 공언하였다. 점진적 개발을 위해서는 확고한 비전과 틀을 제시하고, 그에 기반을 둬 소규모 프로젝트들을 조화롭게 조율하여 점차 안내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럽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장기 계획과 조정을 통한 점진적 개발이 한국에서는 아직 낯설다. 세운상가를 거닐고 들여다본 유럽 출신 전문가들이 그 경험과 사례를 참고하여 세운상가에 어울릴 프로세스와 지침을 제시해보았다.
세운상가 내부
ⓒ건축전문 사진작가 노경
이 모든 논의 가운데 개발이익의 창출과 분배 문제를 피해갈 수가 없다. 대규모 개발계획의 실패는 개발이익에 대한 허황된 기대와 대규모 자본 위주의 무리한 투자와 결부되어 있다. 몇년 전까지 국가적으로 회자된 여러 PF사업의 부실화와 저축은행 부도 등을 돌아보면, 외부 충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실수요 위주, 특히 사용자 위주의 새로운 재정조달 방식 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세운상가지역의 개발이익은 앞으로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분배 될까? 장소의 질을 높이는 투자가 이뤄지고, 장소의 인기가 높아지고, 개발 활동이 늘어날 수록, 토지가치는 높아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지나치게 높게 매겨진 토지가치가 장소성을 지키고, 균형잡힌 개발을 하는데 방해 요소가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업의 재정적 타당성과 상생의 가능성을 높이는 개발 방식과 그 철학적 토대를 살펴보았다.
이 16편의 글은 세운상가와 그 주변 지역을 직접 방문한 저자들이 그곳의 미래에 관한 고민을 함께 나누며 세운상가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에서 쓰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 책에 실린 글은 세운상가에 딱 맞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서울 곳곳에서 씨름하는 문제들과 세운상가 지역 상황의 특수성을 연결해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펼치고, 답을 함께 찾아가고자 하였다. 궁극적으로는 도시를 생각하는 건축가, 개별 건물의 의미에 주의 깊게 천착하는 도시설계가, 또 건축과 도시를 오가는 사유 속에 활동하는 이들이 많아질 때, 삶의 장으로서 사람들에게 위안을 전하면서 소박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도시 공간이 늘어날 것이다. 한때 그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의 일상과 영세한 산업 네트워크를 뒤흔들 개발은 신중하게 논의되고 전개되어야 마땅하다. 이 책 이 감히 세운상가 지역의 미래에 대한 공론의 장을 조금이나마 두텁게 하기를, 또한 앞으로 한국의 도시계획 환경을 이해하고 그 환경 내에서 대안적 접근을 구체적으로 시도해보고 자 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의미있는 영감이 되기를 기원한다.
강빛나래
세운상가 그 이상김성우,이영범,제프 헤멀,케이스 크리스티안서 등저 | 공간서가
『세운상가 그 이상』은 본격적인 국내 최초의 세운상가와 그 일대를 조명한 책으로 단순히 세운상가의 역사와 현재에 집중하기 보다, 세운상가 개발을 두고 새로운 국내외 도시계획과 개발 관련 전문가가 모여 이행 전략을 종합적인 시각으로 탐색해 본다. 『세운상가 그 이상』은 책 제목대로 세운상가만을 이야기 하지 않고 그 ‘이상(beyond)’을 다룬다. 건축가와 도시계획가가 꿈꿨던 ‘이상(ideal)’적인 건물인 세운상가를 현재 진행형과 미래의 시제로 접근하고, 세운상가뿐 아니라 세운상가 일대에 대한 종합 전략을 소개한다.
<김성우>,<이영범>,<제프 헤멀>,<케이스 크리스티안서> 등저20,700원(10% + 5%)
“거대 담론과 거대 건설에서 잃어버린 도시의 디테일과 이야기를 찾는 사람들은 바로 이 책 속에서 길을 찾을 것이다” 세운상가는 종로3가에서 퇴계로3가에 이르는 긴 상가단지다. 폭 50m, 길이 1km에 육박하는 거대한 구조물로 1968년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건물로 완공돼 당시 국내 유일의 종합 가전제품 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