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역사가 최악의 ‘못된 건축’인 이유
『못된 건축』 이경훈 저자와의 만남
지난 6월 24일, 서울 동숭동 벙커1에서 『못된 건축』 출간기념 토론회 ‘두 남자의 못된 건축 까부수기’가 열렸다. 이경훈 교수(국민대 건축과)와 구본준 기자(한겨레)는 DDP, 서울역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화여대 ECC를 갈 때면, 숨이 막힌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바깥의 캠퍼스와는 완벽하게 유리된 공간이어서일까. 대학에서 캠퍼스와 격리된 공간은 생뚱맞다. 동굴로 들어간다는 느낌도 든다. 인류사를 볼 때 동굴로의 잠입은 포근함을 상징할 수도 있지만, ECC라는 동굴은 그 느낌이 다르다. 차갑고 무미건조하다. 특히 강의실이나 연구실보다 상업 공간들이 먼저 눈에 띤다. 대학이 상징하는 캠퍼스의 낭만(물론 지금 어느 대학이나 낭만은 ‘없는’ 것이지만)은 이 지하 동굴에선 찾아볼 수가 없다. 도대체 이화여대는 왜 이런 건축물을 캠퍼스 한복판에 만든 것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못된 건축』을 통해 그 답을 얻었다.
“도시의 기능을 캠퍼스 안 지하에 모아둠으로써 대학은 근처의 커뮤니티와 소통할 수 있는 장치를 잃었다. 도시에 융합되고 참여하며 소통하는 형식 또한 상상의 차원에서만 가능하다. 상점마저 캠퍼스에 끌어들여 작은 도시, 특히 자족적이며 폐쇄적인 캠퍼스를 구성한다는 생각은 모더니즘의 자기 완결성을 연상케 한다.”(『못된 건축』173~174쪽)
지난 6월 24일, 서울 동숭동 벙커1에서 열린 『못된 건축』 출간기념 토론회 ‘두 남자의 못된 건축 까부수기’에서는 ECC를 ‘못된 건축’으로 꼽았다. 주변과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못하고 단절된 것이 그 이유였다. 이 자리, 이경훈 교수(국민대 건축과)와 구본준 기자(한겨레)는 DDP, 서울역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2011년 8월, “서울은 도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 교수의 강연은 도시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관련기사 -> “서울의 모든 거리를 가로수길처럼 바꾸자”-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이경훈)
서울이 도시가 아닌 이유
이 교수는 3년 전의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가 ‘건축의 변명’이었다면, 『못된 건축』은 ‘도시의 변명’이라는 말로 운을 뗐다. 그리고 전작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그 내용을 요약한다. 그것이 『못된 건축』과도 맞닿는다. 그에 의하면, 서울은 도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도시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녹지 비중에 적지 않은데, 자연을 도시에 심으려고만 한다. 자연은 도시가 아니다. 도시는 자연이 아닌 인공이다.
그가 꼽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도시적 거리는 ‘가로수길’이다. 이유는 이렇다. 첫째, 가로수길에는 공원이 없고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둘째 인도가 좁아서 인도에 주차되는 차가 없다. 가로수길을 보고 외국 같다는 표현을 쓴다. 정확하게는 ‘도시 같은’ 것이다. 도시는 모름지기 걷기 좋고 상행위가 일어나는 곳이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 이 교수가 찾아본 바로는 서울에선 딱 한 군데, 가로수길이다. 그밖에는 인도가 없거나, 인도가 넓어서 차가 주차를 하고 있다. 인도가 서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3%라고 한다. 정말 도시가 아닌 것이다!
“걷고 싶은 거리에 대한 일반의 생각은 넓어야 하고, 조경이 잘 돼 있어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걸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길과 거리를 구분하지 못한다. 길은 ‘한 지점을 향해서 가는 것’이다. 둘레길, 올레길 등이 길이다. 거리는 가는 것보다 과정의 경험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도시의 걷고 싶은 거리가 실은 ‘길’이다. 도시의 쾌적함이 조경 등의 것으로 생각하는데, 상가가 있고 볼거리가 있고 걷게 되는 것, 그게 도시의 진짜 쾌적함이다.”
공화의 정신으로 만들어야 할 도시 건축
그렇다. 우리는 도시를, 서울을 오해했다. 그러니 건축에 대한 이해가 미치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못된 건축』은 ‘도시가 말하는 비도시적 건축’을 다룬다. 저자는 책에 언급한 건축은 사심 없이 도시적으로 바라본 시각이라고 전제했다. 그렇다면 ‘도시적인 건축’은 어떤 것일까.
“지난해 여름 파리에 갔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을 봤는데, 빨간 신호등에 딱 서더라. 사람도 안 건너는데. 이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전거 타는 사람 대부분이 그렇더라. 역시 왕의 목을 벤, 프랑스 사람들이라 다르구나 싶었다. 그렇게 획득한 시민의식이라고 생각했다. 시민으로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부럽고 질투가 났다.”
그는 ‘공화’라는 개념을 꺼냈다. 개개인이 양보하면 공공의 선이 생겨나고, 공공의 선으로 자신이 가진 것보다 훨씬 큰 쾌락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공화라고 설명했다. 건축에서 공화가 구현된 사례로 유럽에서 볼 수 있는 광장을 들었다. 이탈리아의 중세도시 시에마의 캄포 광장. 캄포광장의 반원형의 광장을 만드느라 건물이 양보를 해서 구부러지고 비뚤어지고 찌그러졌다. 하지만 덕분에 광장이 생겼다. 이게 도시의 기본적인 이념이라는 것. 자연과 남향을 즐기고 고요함을 즐기려면 시골에 가야 한다. 도시에서는 ‘공화의 정신’으로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도시는 공화의 장소다. 공화란 근대 서구의 자유주의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생겨난 개념이다. 사회를 이루는 각각의 구성원이 조금씩 양보하면 ‘공공의 선’이 생겨나고 그 혜택으로 개인은 훨씬 큰 행복을 누린다는 것이다.”(『못된 건축』10쪽)
그런 면에서 ‘방음벽’은 반도시적이다. 이는 공동체의 쾌락과 무관하다. 방음벽의 메시지는 이렇다. 나는 조용해야겠다. 문제는 방음벽 때문에 도시도 후지게 된다. 개인에게도 좋지 않다. 소리가 완벽하게 차단되는 것도 아니다. 햇빛도 덜 들어온다. 반공화적 태도다. 서울이 ‘철갑도시’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방음벽이다. 학교마다 방음벽을 치고 육교가 나 있는 풍경은 나치의 ‘게토’와 유사하다. 게토는 유태인을 가스실로 보내기 전에 모아놓은 곳이었다. 나치의 가스실 벽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공포는 벽을 세우고, 희망은 다리를 짓는다’.
“우리는 도시가 공포스럽다. 도시로 왔는데, 도시에 대한 묘사는 대부분 부정적이고, 언젠가는 떠나야 할 곳, 전셋집 같은 곳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 우리는 이곳에서 오래 살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서울을 좋게, 도시처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이웃도 커뮤니티도 생긴다.”
서울의 못된 건축
이 교수는 못된 건축의 예를 들었다. 우선, 서울역. 새로 만든 서울역사는 옛 서울역과 비교하면, 역으로 가는 것인지, 기차를 타는 것인지가 애매하다. 서울역 간판을 보고 쫓아가면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도시의 관문은 랜드마크여야 한다. 덩치가 크거나 높거나, 양식이 특이해야 하지만, 지금의 서울역은 그렇지 않다. 주변 건물에 자연스럽게 묻어간다.
“서울역은 사라졌다. 기차 여행을 한 편의 모험으로 만들던 동화 같던 건축이 사라졌다. 나의 도시 서울을 상징하며 여행에 지친 나를 맞아주던 고전의 힘도 함께 사라졌다. 그 자리를 쇼핑센ㅌ너와 자동차에 밀려 왜소해진 토끼굴 기차역이 힘겹게 채우고 있다.”( 『못된 건축』67쪽)
구본준 기자가 서울역에 대해 덧붙인 말도 비슷했다. 구 기자는 최악의 못된 건축으로 서울역을 꼽았다. 이렇게 나쁘게 짓기도 힘들 정도라고 했다. 그래서 한국 최악의 건축주는 코레일이라는 말도 꺼냈다.
“그게 역인가. 백화점이지. 백화점을 위해 통로를 내 준거지. 청량리역도 그렇다. 우리의 추억이 배여 있는 허름한 역인 것도 좋은데, 롯데백화점이 들어오면서 역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서울역은 더 심하다. 도시의 첫인상과 마지막 여운을 느끼게 하는 공공건축인데, 최악이다. 동선도 개판이고, 화장실은 왜 그리 좁나. 늘 붐비고, 하이테크 기술은 없고 하이테크풍으로만 지었다. 공공의식을 바꾸려면 시민이 바뀌어야 한다.”
쇼핑몰도 못된 건축이다. 쇼핑몰은 미국에 있는 특히 도시가 아닌 교외, 전원(suburban)에만 있다. 그러나 한국에선 쇼핑몰이 지하철역과 붙어 있다. 때문에 동네 상권은 초토화됐다. 동네는 쇼핑몰로 들어가는 통로 역할만 한다. 쇼핑몰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바람에 거리엔 사람이 없고, 걷기 싫어진다. 악순환이다. 가장 큰 문제는 쇼핑몰을 현대적인 것, 도시적인 것이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쇼핑몰은 자동차를 기반으로 한 전원생활에서나 유용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쇼핑몰이 교외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인데, 이는 쇼핑몰이 기본적으로 전원 생활을 위한 건축 형식이며 도시와는 맞지 않는다는 의미다. 오히려 반도시적이다.” ( 『못된 건축』155쪽)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ECC도 대표적인 못된 건축이다. 쇼핑몰과 비슷한 맥락이다. 자족적인 단지를 만들어 주변과의 커뮤니케이션 없이 단절돼 있다. 이대 앞 상권이 때문에 죽었다.
“ECC는 지하 공간의 마법으로 모든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과잉된 의도를 갖고 출발한 건축이다. 이상적인 대학 캠퍼스라는 상상의 공간을 지켜내기는 했으나 그 대가로 일상의 공간이 분열되는 결과가 나타났다.(중략) 대학은, 특히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캠퍼스라면 스스로 땅 밑을 파고들어 가서 웅크리고 문을 걸어 닫을 게 아니라 문을 열고 담장을 낮춰 도시에 참여해야 한다.”(『 못된 건축』176~177쪽)
고급호텔도 마찬가지. 신라호텔 등을 보면 정문에서 본관까지 시간이 걸린다. 셔틀이 다닐 정도다. 외국의 최고급 호텔은 다르다. 현지인과 섞일 일 없게 만들었다. 이 교수는 남향의 아파트에 대한 환상도 꼬집는다. 집을 남향으로 향하게 만드느라 공용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마당은 영구적으로 음영이 드리우게 됐다.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 없는 환경이 돼버린 것.
그럼 ‘못된’이 아닌 좋은 건축은 없을까. 이 교수는 과거 한국일보사 자리에 들어선 광화문의 ‘트윈트리타워’를 도시적인 건축의 좋은 예로 들었다. 욕도 많이 먹는 건물이라 호불호가 분명하지만, 건물 자체가 전문용어로 ‘비물질화’하고 있다는 것. 단순한 패턴이 미묘하게 흐트러져 있어 고궁에 대해 도시적인 태도를 갖추고 있다는 것. 동십자각의 병풍처럼 건물이 들어서서 동십자각이 더욱 살아나면서 디테일도 돋보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경복궁의 조형과 잘 어울려 도시적으로 건축물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덧붙였다.
“트윈트리타워는 도시 건축이 갖춰야 할 조건을 보여준다. 역사와 도시의 역동적인 힘에 몸을 맡겨 스스로 제 형태를 깎아내고 개별적인 건축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합리하고 불리하더라도 도시라는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양보한다. 그 양보를 통해 ‘공공의 선’이 생겨나고 그 혜택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누리는 입장권을 확보했다. 그리고 그 공공의 선은 도시 전체의 자신이 되었다.”( 『못된 건축』45쪽)
“도시건축의 태도를 눈여겨보자. 도시건축은 대지의 모양이 굉장히 중요하다. 광장의 모양대로 건축물을 지어서 도시적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건물 모양은 찌그러져도, 그것은 태도다. 우리는 대개 대지의 모양과 상관없이 짓는다. 건축이 그런 태도를 갖는 것은 도시적이지 않다.”
구 기자는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길이라며, 길이 있어서 도시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즉 길과 도시의 관계가 도시를 좌우한다는 것. 그는 이 책의 장점으로 상업 건축을 제대로 대중에게 소개한 점을 꼽았다. 상업 건축이 도시를 망친다고 생각은 틀렸다. 도시의 활력은 상업 공간의 힘이라는 것. 그는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룰을 강조했다.
“도시는 욕망이 들끓는 장소여서 수많은 이해관계가 부딪힌다. 도시 사람들이 지켜야 할 룰이 있다. 룰을 지켰을 때 공공선이 커지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된다. 그러나 서울에는 그것을 학습하고 체계화하는 과정이 없었다. 서울은 상업화된 도시라고 생각하는데, 아니다. 보는 재미, 걸어가면서 느끼는 재미가 있으려면 상업 건축이 좋아야 하는데, 서울에선 이상한 상업 건축만 들어온다. 서울의 상업지역은 의외로 4% 밖에 안 된다. 공업지역은 5%인데. 어떤 도시가 좋은지 먼저 경험해본 사람들이 있다. 알맞은 높이로 하늘을 가리지 않고, 1층은 소상공인들이 공존하고 거리는 알맞게 복작거려서 걸어 다니는 재미가 있는. 그러나 서울은 반대로 간다. 쇼핑몰만 늘어나고, 걷고 싶은 거리는 지정되는 순간, 걷기 싫어지고. 우리가 건축을 잘 알아야 하는 이유다.”
DDP,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
DDP. 동대문운동장을 헐고 새로이 등장한 이곳을 놓고 말이 많다. 처음에 이곳은 100억 예산으로 공원(서울시 조경과)을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다가 서울시 산업진흥과에서 아이디어를 내면서 1000억 공사로 시작해 4500억원이 들었다. 역사적인 동대문운동장을 헐었다는 비판도 있는데, 동대문운동장은 이미 제 기능을 잃고 풍물시장으로 변해 있었다. 가끔 야구장에서 고교야구를 열릴 뿐이었다. 습식건축이다 보니 흉물로만 남아 있다시피 한 건물이었다. 건축적인 가치도 문화재로서의 가치도, 운동장 기능도 어려웠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DDP는 그런 배경 속에서 국내외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의 각축전 속에서 설계 공모가 이뤄졌다.
“DDP 당선작은 역동성이 돋보였다. 유체의 흐름 같은 것에 관심이 있다며 설계도를 갖고 왔더라. DDP가 가장 큰 비판을 받는 지점이 4500억원이다. 또 하나는 역사성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다. 다른 설계안과 비교해 역사성을 보자면, 당선작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주변 맥락을 무시했다는 비판에 대해선 정말 그럴까. 동대문 부근의 맥락에 이것만큼 잘 맞는 것은 없을 지도 모른다. 한국 건축의 치명적 약점은 오리지널리티다. 어디선가 본 듯한. 그런 면에서 DDP는 서울이 세계에 보여줄 만한 건축이다.”
DDP를 좋아한다는 구 기자의 말도 이어졌다. 그는 이곳엔 꼭 한 번쯤 가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공간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주며 서울에서 볼 수 없었던 건물이기에 그렇다는 것.
“서울시가 원했던 안은 지금의 DDP가 아닐까. 다만 그 과정에서 프로그램이 실종된 것은 뼈저리게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이 건물을 볼 때마다, 기술적인 완성도는 정말 훌륭한데, 무슨 용도로 쓸지 모르는 상태에서 4천억대 건물을 지은 것은 반드시 복기해야 하는 문제다. 이 건물이 욕을 많이 먹는 것은 특정인을 연상시키기 때문인데, 그것도 흥미로운 현상이다(웃음).”
도시를 묻고, 도시에 대해 답하다
도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좋은 도시는 어떤 요소를 갖추고 있어야 할까?
이경훈 : 사실 제목을 ‘매트릭스 서울’이라고 붙이고 싶었다. 왜냐하면 도시에 대한 오해가 더 중요하다고 봤다. 서울에 문제가 있으면 도시여서 그렇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도시가 아니어서 그렇다. 도시의 정의가 참 어렵긴 하다. 인구가 많다고 도시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도시적인 생활을 즐겨도 인구가 적을 수도 있고. 도시의 정의가 전 세계적으로 통일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오해는 분명히 있다.
첫째, 도시가 요즘 개념일 것이라고 보는데, 여러 문헌을 보면 인류의 발생과 함께 있었다. 인류가 동굴에서 나온 이후 도시가 생겼다. 둘째 도시와 자동차를 결합시키는 것은 위험하다. 미국이라는 특이한 나라에서 교외생활을 즐기기 위해 마련된 것이 자동차다. 도시는 오히려 걷는 공간이어야 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미국을 선진, 서양, 현대로 생각하도록 박혀서 그런 오해가 있지 않나 싶다. 그런 생각은 법규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도시에 대한 오해가 도시적인 건축을 가로막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좋은 도시는 ‘걷는 도시’다. 뉴욕은 전체 인구의 72%가 대중교통을 타거나 걷기를 한다. 미국 나머지 도시들의 대중교통 인구를 합친 것보다 많다. 뉴욕은 그래서 가장 ‘녹색도시’다. 탄소배출량은 많지만, 1인당 탄소배출량을 보면 뉴욕은 텍사스의 1/3 수준이다. 가장 녹색의 방법은 모여 쓰고 걸어 다니는 것이다. 그런 것을 바람직한 도시라고 본다.
나는 한국에서 보행자에겐 녹지가 없다고 보는데, 공개공지를 두는 것이 대안이 된다고 생각한다. 획일적인 공간이 문제이지, 다변적인 공간을 건물 앞에 두는 것은 좋지 않을까.
이경훈 : 서울은 어디서나 산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명동만 가도 남산이 보인다. 그럼에도 공지와 녹지를 강요한다. 도시를 좀 더 밀도 있고, 도시만의 쾌적함으로 가꿔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내가 아는 바로, 서울의 녹지율은 30%다. 한강도 녹지로 보면 30%가 넘는다. 서울의 녹지 표시를 보면 어마어마하다. 산지와 경사면이어서 접근이 어려운 면도 있는데, 공원의 도시라는 런던보다 2배 규모다. 서울은 밀도가 낮다. 그런데도 밀도가 높다고 답답해한다. 인도에 올라온 자동차 등등 때문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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