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
사랑스러운 여자들
고정된 이미지로 파악당하는 것을 격렬하게 거부하고 싶다
한국에서 자기 이름 내놓고 일하는 여자들에 대한 분류를 가만 보면 두 가지밖에 없는 것 같다.
며칠 전 방송인 사유리씨를 만났다. 사회적 기업 ‘아름다운 가게’가 마련한 ‘좋은 이별 프로젝트’에 함께 참가했던 것이다. 버리자니 아깝고 쓰자니 볼 때마다 생각이 나는 전 연인과 관련된 물품들을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는 행사였다.
우리는 이별을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본래도 그녀의 팬이었지만 실제로 만나고 나서 그녀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는 ‘좋은 이별,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하기도 하고, 남자들이 늘 자신으로부터 도망간 이야기나 5년 전 헤어진 남자친구에 대한 미움을 솔직하게 토로하는 등, 한 마디로 ‘겉핥기’ ’좋게 좋게’식의 이야기는 요만큼도 하지 않아 너무 좋았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대기실에서 ‘결혼제도는 없어져야 한다’고 논지를 펼치는가 하면 한국의 ‘불륜에 대한 이중잣대’를 예리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사유리씨는 JTBC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출연해서는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던 바가 있다. 인종차별이 없어져도 같은 민족까리 차별을 할 것이고, 상대방에게 차별의 잣대를 댈 수 있는 것은 많기 때문에 차별주의자들은 어떻게든 앞으로도 계속해서 차별할 것이라고. 그녀의 소신있는 생각과 올곧은 가치관이 보기 좋았다. 만남 때 선물로 받은 사유리씨의 에세이 『눈물을 닦고』를 지금 재미있게 읽고 있다.
『눈물을 닦고』에 받은 사유리 씨의 친필 사인
얼마 전에 읽은 에세이스트 김현진씨의 『육체탐구생활』도 흥미진진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책들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마치 한 권의 소설같던 산문집 『뜨거운 안녕』(정말로 통렬하게 ‘뜨거운’ 책이었다)이지만 신간 『육체탐구생활』도 못지 않게 즐겁게 읽었다.
김현진씨도 솔직한 걸로 따지면 사유리씨 못지 않다. 자신의 치부를 다 드러내는가 하면, 남자친구가 때린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연들, 부모님과의 적나라한 애증관계, 자신의 진보적 정치성향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진보를 비판할 수 있는 줏대있는 객관성을 보여준다. ‘육체탐구생활’이라는 선정적인 제목과 섹시한 커버사진 때문에 엉뚱하게 야한 쪽으로 현혹될 수 있지만, 내용은 느끼함 하나없이 몸뚱아리 하나로 이 세상과 ‘현피’뜨는 치열하고 씩씩한 생존분투기였다.
한국에서 자기 이름 내놓고 일하는 여자들에 대한 분류를 가만 보면 두 가지밖에 없는 것 같다. 예쁜 여자 혹은 센 여자. 예쁜 여자에 대해서는 그 미모예찬 하나로 모든 것이 단순화되고 끝. 한데 후자의 ‘센 여자’들은 또 한 번 왕언니, 무서운 여자, 야한 여자, 비호감 여자, 못생긴 여자, 등으로 나뉘며 웃음, 배척, 두려움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내가 보는 ‘센 여자’는 다르다. ‘세다’는 것은 말 그대로 ‘강하다’라는 뜻이며 그것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솔직함과 개방성’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하고 개방적이기 때문에 그녀들은 수십가지의 다채롭고 복합적인 모습들(순진, 엉뚱하기도 하며, 웃음도 눈물도 많고, 귀엽다가도 치열한) 을 보일 수가 있는 것이다. 아마도 나 역시도 사유리, 김현진과 더불어 ‘센 여자’ 카테고리 안에 들어갈 것 같은데 겉으로 보이는 고정된 이미지로 파악당하는 것을 격렬하게 거부하고 싶다!
책소개
눈물을 닦고
후지타 사유리 저 | 넥서스BOOKS
이 책은 방송인 사유리를 넘어 일상인 사유리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유리는 트위터를 통해 글로써 진지하게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녀의 글을 처음 본 사람들은 방송에서의 모습과 달라 당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그녀만의 무심한 듯, 담담한 듯 정직하게 세상을 바라보며 전하는 이야기에서 그녀의 진심을 발견한다. 그녀의 짧은 글 속에서 우리는 나 자신의 일상을, 생각을, 편견을, 오해를, 사랑을, 친구를 찾곤 한다. 너무 무겁지 않지만 때론 독특한 표현으로 전하는 그녀의 이야기가 문득문득 우리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육체탐구생활
김현진 저 | 박하
김현진은 말한다. “슬픔과 기쁨, 모든 기억들은 죄다 몸에 새겨져 있었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몸을 지니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 마구 함부로 해왔던 내 육신이 이제는 나를 용서하기를. 그리고 당신의 육체에도 부디 축복이 있기를. 사랑에 빠지고 또 상심하시길, 우리가 끝내 어딘가에 닿을 때까지. 또 그 여정 동안 당신의 육체가 영혼을 지탱해줄 만큼 튼튼하기를.” 이제 《육체탐구생활》과 함께 영혼을 담는 그릇, 육체 속에 새겨진 당신도 기억 못할 내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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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나의 남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