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짓기는 유전자 재분배의 과정이다. 짝짓기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유전자와 타인의 유전자를 섞고 다시 나눈다. 마치 각자 가져온 반찬을 한 그릇에 붓고 비벼서 다시 각자 떠가는, 어릴 적 학교에서 해먹던 비빔밥이 곧 성性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유전자의 일부를 수정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치며, 내가 가지고 있지 않던 형질을 얻기도 한다.
짝짓기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다. 수컷은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같은 종의 수컷과 경쟁한다. 암컷은 더 나은 수컷을 선택하기 위해 같은 종의 암컷과 경쟁한다. 암컷은 수컷을 선택하고 수컷은 암컷을 선택한다. 하나의 가족을 이룬 암컷과 수컷은 같은 종의 다른 가족과 경쟁을 하고, 생태계의 비슷한 지위를 가진 다른 종과 배타적 경쟁을 한다. 또한 생물뿐 아니라 기후 및 지형과도 투쟁한다. 오직 하나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리기 위한 노력은 다른 모든 개체와의 경쟁으로 귀결된다.
짝짓기는 다양성이다. 짝짓기를 통해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던 새로운 유전자를 얻고, 내가 가진 유전자를 준다. 짝짓기를 통해 단세포생물은 직접적이고 당세대적으로, 다세포생물은 간접적이고 차세대적으로 유전자의 풀pool을 확대한다. 이를 통해 진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지구상의 모든 곳에 더욱 다양한 생물이 생겨났고 어우러졌다.
짝짓기는 애정이다.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애초에 유전자를 서로 교환하기 위해 시작된 짝짓기지만 많은 동물에서 짝짓기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거의 평생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늑대의 경우도, 난교를 즐기는 보노보의 경우도, 페로몬으로 서로를 유혹하는 곤충의 경우도 짝짓기는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발전한다.
짝짓기는 진화다. 핵막도 없는 원핵생물부터 현재의 인간에 이르기까지 서로의 유전자를 섞고 그를 통해 촉발되는 변이를 통해 지구 생명의 진화는 더욱 거세게 이루어졌다. 짝짓기를 통해 같은 종에서도 다양한 변이를 가진 개체들이 서로 경쟁을 하게 되었고, 그를 통해 더욱 빠르고 다양한 형태로 진화가 이루어졌다. 짝짓기가 없었다면 진화의 속도는 지금보다 훨씬 느렸을 것이다.
짝짓기는 관계다. 다양한 동물들에게서 성은 무리 안의 나와 타자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다. 또한 둘 사이에서 성은 둘의 관계를 유지하고 더욱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게 한다. 인간만이 아니라 많은 영장류와 포유동물 그리고 파충류와 조류에 이르기까지 성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유지하는 언어이다.
첫 책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멸종』 이후 꼭 1년 만에 두 번째 책을 내게 되었다. 이 책은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년의 비밀> 4부 ‘반쪽을 위한 전략, 짝짓기’를 기초로 하고, 1부 ‘소리 없는 지배, 식물’ 편의 내용도 반영하고 있다. 방송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이야기와 방송 이후 새로 밝혀진 연구 결과들도 최대한 덧붙였다. 끝없는 진화의 역사처럼, 다큐멘터리와 책의 긍정적이고 끝없는 되먹임을 통해 생명진화의 신비로운 세계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길 바란다.
2015년 8월
지은이 일동
짝짓기김시준,김현우,박재용 등저 | MID 엠아이디
자연계에 존재하는 가장 신비하고 경이로운 남과 여에 관한 이야기를 종의 보존, 즉 생존을 위한 진화의 코드로 읽어 본다. 최초의 남과 여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25억 년 전 성이 탄생한 순간을 단세포 녹조식물인 클라미도모나스 실험을 통해 재연했다. 짝짓기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변이를 조합해 내는 방법!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해 성(性)을 나누고 짝짓기를 택한 생명들의 진화론적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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