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최민석의 영사기(映思記)
편견의 힘 <베테랑>
베테랑 작가에 대하여
영화는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상대가 베테랑인지 아닌지 알아낼 수 있다는 걸 전제하는데, 나는 작가인 만큼 ‘과연 사람들은 베테랑 작가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품기에 이르렀다.
<베테랑>에서 유아인은 황정민을 만나자마자 몇 분 뒤, “형사님, 베테랑이시네요”라고 한다. 초면끼리 고작 2-3분 대화를 나누고서 “베테랑이라니”! 이를 어찌 안 단 말인가. 말콤 글래드웰은 자신의 저서 『블링크』에서 우리의 첫 인상은 불과 2-3초 내에 결정된다고 했다. 이는 심리학 용어 ‘초두 효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더욱이, 이 때 형성된 첫 인상은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다. 고로, 유아인은 꽤 오랜 시간 황정민을 베테랑 형사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초두효과’만큼이나 잘 알려지고 식상한 것은 ‘후광효과’다. 바로 황정민이 입고 있는 전형적인 형사풍의 점퍼, 청바지, 운동화를 보는 순간 유아인은 ‘음. 경력이 상당하군’ 하며 자신의 인식을 강화했을 수 있다. 반면, “형사님, 베테랑이시네요”라는 말을 들은 황정민은 베테랑 형사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이때 ‘피그말리온 효과’가 작용할 수 있는데, 이는 알려진 바대로 ‘상대에게 긍정적 기대를 품으면, 상대는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결국 황정민은 ‘피그말리온 효과’에 의해, 출중한 베테랑 형사로 활약하며 유아인을 체포해버린다. 그렇게 영화는 끝나버린다. 이번 주 영화 소개 끝.
그럼, 본격적인 딴 소리 시작. 영화는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상대가 베테랑인지 아닌지 알아낼 수 있다는 걸 전제하는데, 나는 작가인 만큼 ‘과연 사람들은 베테랑 작가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품기에 이르렀다. 한데, 마침 이 원고를 쓰는 현재, 할 일 없는 프랑스 친구가 내 옆에 앉아 있는 까닭에, 나는 지면이나 채울 요량으로 그녀에게 “프랑스에서는 베테랑 작가들에 대한 이미지가 어떠하냐?’고 물었다(‘베테랑’이 불어이므로, 끼워 맞췄다). 이 친구는 ‘마침 할 일이 없는데, 메시 부끄(고맙다)’라는 표정으로 프랑스 작가들의 고정관념에 대한 설(說)을 풀어놓았다. 경제적 글쓰기를 지향하는 내가 과감하게 추려낸 핵심 요소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베테랑 작가들은 큰 사각 안경을 낀다.
작가가 작고 둥근 안경을 끼는 건 어쩐지 존 레논 같다. 아울러, 두껍고 둥근 안경을 끼는 건 어쩐지 김구 선생 같다. 그렇다 해서 금테 안경을 끼는 건 왠지 사업가 같고, 큰 뿔테안경을 끼는 건 이탈리아 마피아나 철학과 학생 같다. 가늘고 긴 테는 다소 사기꾼 같다. 이런 과정의 소거법을 거쳐, 결국 프랑스 문호들은 ‘큰 사각 안경테’를 선호한다는 것이다(거, 참. 내 안경은 동그란 모양인데).
2. 베테랑 작가는 담배를 물고, 커피나 와인을 시켜놓은 채, 커피숍 구석에 앉아있다.
아니, 왜 커피숍 구석인가, 라고 질문을 하니, “어이. 커피숍 한 가운데 앉아서 원숭이처럼 구경거리가 된 채 글을 쓰는 작가가 어딨겠어?”라고 반문했다. 작가도 아닌 이 친구는 “작가들은 말이야, 태생적으로 감시당하길 거부하고, 오히려 관찰하는 걸 좋아한다고!”라며 (작가인) 내게 가르쳐주었는데, 나는 (책이 잘 안 팔려) 잠자코 있었다(거, 참. 나는 매일 커피숍 한 가운데에서 글을 쓰는데).
3. 베테랑 작가는 거만하고, 건방져 보인다.
나는 (책도 안 팔리면서 욕까지 먹는 작가이기에) 문을 열 때부터 허리를 푹 숙이고 (혹시나 험담하는 사람이 없나 살피며) 들어가지만, 베테랑 작가라면 고개를 빳빳이 들며 입장하며, 타이핑도 후손을 위한 걸작을 남긴다는 듯 거창한 소리를 내며 칠 것 같다. 하여, 그녀의 주장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러다보니 어쩐지 프랑스 베테랑 작가들이 한국 문단으로 넘어와도 곧잘 적응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그나저나, 나도 한 때 거만한 척 하다가 청탁 다 끊겼는데, 거 참).
듣고 나니, 역시 세계는 넓고 다양하지만, 고정관념은 보편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를 가진 작가가 실제로 존재하느냐 물으니, 바로 ‘장 폴 사르트라’라고 대답했다. 그는 과연 상당히 큰 사각 안경을 꼈고, 거만했고, 자신감에 가득 찼으며, 커피와 와인과 끽연을 즐겼다고 한다. 유아인 같이 직감 좋은 독자나 편집자라면 초면이라도 ‘아, 선생님 베테랑이시군요’라고 할 만한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관광명소가 돼버린 ‘까페 드 플로으흐흐허(이 친구는 콧소리가 심하다; Cafe de Flore)’의 단골이었다고 한다.
덧붙이자면, 까뮈는 최고로 쳐주었지만, 전형적인 작가의 이미지는 아니라고 한다. 작가치고는 좀 과도하게 멋있는 이미지랄까(뭐, 그건 그것대로 좋지만). 그러면서 이 친구는 기욤 뮈소는 작가도 아니라고 하고, 베르베르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다고 한다. 미셸 우엘백 같은 작가를 전문가들은 굉장히 높이 사고, 노벨상을 받은 모디아노 같은 작가는 상을 받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아는 사람들만 아는 작가였다고 한다. 밀란 쿤데라는 사람들이 어려워해 별로 안 읽고, 최근까지 살았던 작가로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가 최고라고 한다. 외국 작가로는 영국의 조나단 코(Jonathan Coe)가 실세를 떨친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작가다.
일단, 나는 큰 사각 안경부터 사야겠다(거, 참. 여러모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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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말콤 글래드웰> 저/<이무열> 역/<황상민> 감수/<공병호> 해제11,7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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