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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을 위한 놓친 영화 Top 5

한 해 동안 쓰고 싶었지만, 못 쓴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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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를 하기 좋은 영화를 선택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지나치게 매력을 느껴 감히 내 글로 영화의 빛이 바래질까 우려돼 포기했던 적도 있다. 지난 일 년 간 이러한 이유로 쓰지 않았던 5편의 영화를 공개한다.

<영사기(英思記)>에 ‘시기상조, 나의 영화 Top 20'라는 제목으로 내가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쓴 지 일 년이 지났다. 그 일 년 간 내가 재밌게 본 영화에 대해 쓰자는 원칙을 지키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흥미롭게 본 영화에 대해 쓰다보면 어쩐지 '반드시 삼천포로 빠진다'는 이 칼럼의 대전제 조건에 부합하지 않게 돼버리는 것이었다. 하여, 헛소리를 하기 좋은 영화를 선택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지나치게 매력을 느껴 감히 내 글로 영화의 빛이 바래질까 우려돼 포기했던 적도 있다. 지난 일 년 간 이러한 이유로 쓰지 않았던 5편의 영화를 공개한다.


 


1. 족구왕(2014, 우문기)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족구왕>을 보며 참으로 많이 울었다. 대성통곡이라 해도 좋을 만큼 울었다. 극장 의자에 몸을 푹 묻은 채 ‘아, 저들은 하고 싶은 걸 이토록 맘껏 하는 구나’ 하며 우문기 감독을 비롯한 청년 영화 집단 ‘광화문 시네마’에 박수를 보냈다. 아니, 그들이 부러웠고, 그들의 무모한 실천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하여, 내게 이 영화는 코미디라기보다는 하나의 삶의 자세로 느껴졌다. 흥행을 생각하고, 관객을 생각하고, 자신의 삶(예컨대, 집, 차, 통장 잔고, 자녀 교육) 같은 것에 매몰되지 않고, 오로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자세에 실로 감격했다. 더 나은 영화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 정신이 오롯이 전해져 현재의 <족구왕>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 방식으로 순수를 말하는 것 같아서, 제법 괜찮은 사람과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 기분이 들었다. 우문기 감독의 차기작은 물론, 그 이후의 작품까지 모두 챙겨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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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뢰한(2014, 오승욱)


  

<무뢰한>에 대한 칼럼을 써보려고 한 달 동안 고민하다, 결국 실패해버렸다. 도입부에 ‘어떤 영화는 지나치게 매력을 느껴 감히 내 글로 쓸 수 없었다’고 했는데, 그 영화가 바로 <무뢰한>이다. 이 영화를 수식할 때는 공존이 불가능한 이율배반적인 수식어들을 결합시키는 게 가능하다. 예컨대, 이런 식. 질퍽하되, 아름답고, 슬프되, 기쁘다. 정서는 질퍽하지만, 그림은 아름답고, 인물은 슬프되, 이 인물을 보는 관객은 기쁘다. 덧붙이자면, 감정은 끈적하되, 방식은 매끈하고, 이야기는 단순하되, 결말의 잔상은 오래 남는다. 가장 어울리는 말은, 프랑스 영화지만 한국 영화다. 화면과 대사, 이야기 전개 방식은 프랑스 영화지만, 분명 배경과 인물과 대사는 철저한 한국 영화다. 알랭 들롱이 출연하는 1960년대 르와르 <르 사무라이>나, <시실리안> 같은 풍의 영화를 좋아하는 내게, 오승욱 감독의 영화에는 저항할 힘이 없다.



 


3. 폭스캐처(2014, 베넷 밀러)


  

<폭스캐처>만큼 예민한 영화는 없었다. 인물이 가지는 복잡다단한 감정이 여러 신(scene)에 녹아있었다. 매사에 심드렁한 나는 <머니볼>처럼 감정이 눌리어진 영화를 좋아하는데, 역시나 베넷 밀러 감독은 메마른 감정의 소유자들을 흔드는 힘을 발휘할 줄 안다. 보험을 했다면 판매왕은 되지 못했어도, 보험을 절대 사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많이 팔았을 것이다.



 


 


 


4. 스파이게임(2001, 토니 스콧)


  

2001년도에 개봉한 영화를 왜 여기에 끼워 넣었냐면, 작년에 내가 봤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런 지면 아닌가(삼천포로 빠져야 한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절제된 첩보물의 정석이라면, 스파이게임은 표현할 줄 아는 첩보물의 정석이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입은 헤링본 양복과 출근할 때 타던 구형 포르쉐도 (비록 빚쟁이가 되더라도) 당장 사고 싶을 만큼 영화의 매력을 더한다. 영화 속 베를린 풍경 역시 한 몫 한다.



 

 

 


 


5. 군도: 민란의 시대(2014, 윤종빈)


  

이 영화에 대한 혹평들을 보며, ‘아, 나는 주류가 될 수 없는 작가구나’라고 느꼈다. 왜냐하면 관객들이 혹평했던 장면들이 바로 내가 좋아했던 장면들이었기 때문이다. <장고>, <황야의 무법자>, <바스터즈>, 70년대 중국 무협 영화 등, 이 영화가 차용한 모든 신(scene)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마침 독자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써볼까, 기웃거리던 차였으므로, 이 영화의 흥행 실패는 내게도 상처가 됐다. 잠시나마 세상의 방식에 부합해보려 마음을 먹은 때였으므로, 한 달 뒤 <족구왕>을 보고 그렇게 울어댔던 것이다.



 

 

이번 회는 결국 <족구왕>으로 시작하여, <족구왕>으로 끝났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예술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직장인, 가고 싶은 곳에 가는 여행자가 많아졌으면 한다. 여름이다. 이 뜨거운 더위가 가면, 낙엽이 질 것이고, 또 한 해가 갈 것이다. 생은 언제나 이렇게 앞으로만 가니까, 당신도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좋겠다. 나도 그렇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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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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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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