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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에는 시집, 내일 뭐 읽지?

예스24 뉴미디어팀 3인이 추천하는 금주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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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한 곡만 좋아도 음반을 산 보람을 느끼는지라, 시집 역시 마음에 드는 시 한 편만 발견해도 흐뭇하다.

 

<채널예스>에서 매주 금요일, ‘내일 뭐 읽지?’를 연재합니다. 보통 사람들보다 책을 ‘쪼끔’ 더 좋아하는 3명이 매주, 책을 1권씩 추천합니다. 매우 사적인 책 추천이지만, 정말 좋은 책, 재밌는 책, 정말 읽으려고 하는 책만 선별해 소개합니다. 엄숙주의를 싫어하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추천하지만, 닉네임을 걸고 약속 드립니다. 나만 읽긴 아까운 책이라고! ‘오늘 뭐 먹지?’ ‘내일 뭐 먹지?’ 만 고민하지 말고, 때로는 ‘내일 뭐 읽지?’ 생각해보는 건,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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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단어

유희경 저 | 문학과지성사

몇 년 전의 장마철,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책을, 그 중에서도 시를 사랑하는 이였다.(그렇다, 나는 시를 읽는 사람한테 취약하다.) 그의 앞에서는 입도 뻥긋 못했다. 그런 내가 모임에 적응을 못한다 생각했던 그는 유희경 시인의 『오늘 아침 단어』를 내게 선물로 줬다. - 이제와 고백하자면, 바보냐, 너? 나 엄청 말 잘하거든? - 남자에게 처음으로 시집을 선물 받았던 터라 어안이 벙벙했지만, 무척 기뻤다. 갈색 표지의 시집을 얼마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받아왔는지. 마음에 드는 구절에 밑줄을 긋느라 바빴고, 그동안 내내 비가 내렸다. 다음날, 다시 시집을 보니 수록된 모든 시에 밑줄이 있는 걸 보고 엄청 웃었다. 어쨌든 내겐 그런 시집이 있다. 장마철이 되면 떠오르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담은, 모든 시에 밑줄이 그어진 시집이. 이 시집 전체가 "여름의 무언가"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읽어보면 안다. 아차, 영업을 위해선 시 하나를 공개해야겠지. (땡감)

 

 

 

둘이서 마주 앉아, 잘못 배달된 도시락처럼 말없이, 서로의 눈썹을 향하여 손가락을, 이마를, 흐트러져 뚜렷해지지 않는 그림자를, 나란히 놓아둔 채 흐르는
 
우리는 빗방울만큼 떨어져 있다 오른뺨에 왼손을 대고 싶어져 마음은 무럭무럭 자라난다 둘이 앉아 있는 사정이 창문에 어려 있다 떠올라 가라앉는, 생전(生前)의 감정 이런 일은 헐거운 장갑 같아서 나는 사랑하고 당신은 말이 없다
 
더 갈 수 없는 오늘을 편하게 생각해본 적 없다 손끝으로 당신을 둘러싼 것들만 더듬는다 말을 하기 직전의 입술은 다룰 줄 모르는 악기 같은 것 마주 앉은 당신에게 풀려나간, 돌아오지 않는 고요를 쥐여주고 싶어서
 
불가능한 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당신이 뒤를 돌아볼 때까지 그 뒤를 뒤에서 볼 때까지

 

- 유희경 「내일, 내일」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황지우 저 | 문학과지성사

소설은 좋아하지만 시집은 안 좋아한다. 안 좋아한다기보다는 읽어내지 못한다. 읽어내지 못한다기보다는 감상하는 방법을 모르겠다. 그럼에도 집에는 시집 2권이 있는데 한 권이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이고 나머지 한 권이 지금 이야기할 황지우 시인의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이다. 노래 한 곡만 좋아도 음반을 산 보람을 느끼는지라, 시집 역시 마음에 드는 시 한 편만 발견해도 흐뭇하다. 이 시집에서 그러한 작품은 「거룩한 식사」다. 서울에 홀로 올라와 오랜 자취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좁디 좁은 자취방에서 라면과 소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 이 시를 발견하고 울 뻔 했다. 울지는 않았다. (드미트리)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 황지우 「거룩한 식사」 중


 

도착하지 않은 삶

최영미 저 | 문학동네

“너 시 읽어?” “어, 뭐라고?” “시집 읽어본 적 있냐고.” “있긴 있지.” “외우는 시는?” “어? 뭐라고? 잘 안 들려~” 시는 되게 좋아하거나, 아니면 전혀 안 읽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소설가 한창훈 선생님은 “시인은 주로 안테나가 자신을 향해 있는 것 같다. 자신을 탐색하고 들여다보고 자신을 통해서 세상을 읽어내려고 한다.”고 말하셨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연신 주억거렸다. 시가 읽힐 때, 읽고 싶을 때는 ‘나’를 읽고 싶은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7년 전 즈음인가, 시인 최영미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좋아하는 시인이었는데 만나고 나니 더 좋아졌다. 그 후로 최영미 시집을 더 애틋하게 여긴다. 오랜만에 시집을 꺼내 들었다. 좋았다고 표시해놓은 싯구들을 다시 읽었다. 아무래도 시는 나이를 들지 않는 것 같다. (꾸러기)

 

 

시를 쓰지 않으마
불을 끄고 누웠는데

옆으로, 뒤로, 먼지처럼 시가 스며들었다.
오래 전에 죽은 단어들이
하나둘 달빛에 살아 움직여도,
나는 연필을 들지 않았다,

 

다시는 너를 찾지 않겠어
감각의 창고를 정리하고
밥이 될 든든한 집으로 이사가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떠나지 말라고
내 손에 꽃을 쥐여주며

 

- 최영미 「다시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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