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그림책으로 마음 선물하기
손님 치르기에 겁먹은 이를 위해
『괴짜 손님과 세 개의 병』
거사를 미루는 것이 정답이라 여기느니, 떠나보내고 난 며칠 내내 마음껏 못 먹이고 못 챙긴 데 후회하며 속앓이를 하는 탓이다. 그렇다. ‘손님 치르기’ 또한 물적 정신적으로 역량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괴짜 손님과 세 개의 병』 은 주인과 손님, 그 역할과 정서를 뒤집는 유머로 우리를 위로한다.
이른바 강원도민들이 새내기 이주민에게 건네는 농담 가운데 ‘어디 사느냐고 물으면 최대한 입을 다물어야 한다.’라는 게 있다. 우리나라 대표 휴양지에 사는 덕분에 휴가철 손님 치르기에 고생 많다는 얘기다. 강원도 산골집에서 산 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날마다 공사다망, 친구며 친척들을 마음껏 부르지 못하고 지내는 처지에서는 오히려 쑥스러운 얘기랄까. 밭에서 막 거둔 상추 토마토며 닭장에서 꺼내오는 따뜻한 달걀을 먹을 때면, 뜰 풍경이 유난히 근사할 때면, 이런 걸 좋아라할 이들을 떠올리며 미안해할 따름이다.
그러면서도 거사를 미루는 것이 정답이라 여기느니, 떠나보내고 난 며칠 내내 마음껏 못 먹이고 못 챙긴 데 후회하며 속앓이를 하는 탓이다. 그렇다. ‘손님 치르기’ 또한 물적 정신적으로 역량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괴짜 손님과 세 개의 병』은 주인과 손님, 그 역할과 정서를 뒤집는 유머로 우리를 위로한다.
길고 커다란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 나는 삼촌 악어 베오울프와 조카 악어 크롬웰이 사는 심심한 집에 어느 늦은 밤, 스코틀랜드에 사는 사촌 악어 워뤽이 들이닥친다. 지역 명품 스카치위스키 세 병을 선물로 꾸려오긴 했으나, 이 무례한 악어는 처음부터 손님답지 않게 군다. 한밤중에 밥상을 차리라는 둥, 음식이 시원찮다는 둥, 잠자리를 거듭 바꾸는 변덕을 부리는 둥, 믿어지지 않는 횡포로 소동을 피운다.
전대미문의 이 뻔뻔한 손님은 다음 날에도 일어나자마자 몽니를 부린다. 자기가 원치 않는 아침밥이라며 크롬웰이 정성껏 차려온 쟁반을 내동댕이쳐 귀한 찻잔을 깨트리고, 수영하러 간 호수에서는 마을 주민끼리의 약속을 무시하며 택시 고니들을 해치고, 포커 놀이를 제안해 사촌과 조카의 돈을 깡그리 채어가고는 시치미를 뗀다. 과연 이 파렴치한은 언제쯤 파국을 맞게 될까, 궁금해지는 참에 우체부 산양 윌리가 등장한다. 흉포한 악어답게 워뤽이 다짜고짜 덥석 물고 늘어진 자기의 황금빛 수염을, 윌리는 평소에 끔찍이 아끼며 자랑스러워했던 만큼이나 사수한다.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버티고, 버틴 덕분에 파렴치한은 산양 고기 한 점은커녕 수염만 한 움큼 삼키게 된 것이다.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윌리, 그 소리에 달려온 베어울프와 크롬웰, 자기를 구하러 온 이들에게 묵묵히 입을 열어 보이는 워뤽… 워뤽의 입 속을 들여다보고서야 어이없이 절망적인 상황을 깨달은 사촌들은 발을 구르며 코끼리 의사 블러프 씨에게 구조를 청한다. 그러나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거절당하고 만다.
바이올리니스트로 재즈 작곡가 편곡자로 이름난 앙드레 오데르가 쓴 이 이야기는 사실 부정한 힘과 탐욕을 재즈처럼 강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사회 정치 풍자에 능한 토미 웅게러의 위트 넘치는 그림과 한 몸이 되어 관점 및 시점에 따라 각기 다른 즉흥 연주 효과를 낸다. 같고도 다른 악어 일가 셋과 우체부 산양이며 의사 코끼리 등 생생한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드라마는 또 얼마나 묘하게 매력적인지! ‘베어울프’니 ‘크롬웰’이니 하는 역사적인 이름들, ‘스코틀랜드’며 ‘스카치위스키’의 차용이라는 퀴즈는 차차 풀어가며 즐길 수 있는 덤이다.
초록빛 얼굴이 새파래지도록 절명의 위기에 이른 워뤽이 어떻게 목숨을 구하게 되었는지, ‘세 개의 병’과 관련해 어떻게 뻔뻔한 손님의 마지막을 장식했는지, 그 기상천외한 결말은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이 요란하고도 끔찍한 글과 그림을 섭렵하고 나면 어떤 ‘손님 치르기’도 만만하게 여겨지리라는 것은 내어놓고 장담한다. 납량드라마로 끈끈한 더위를 날리듯이.
『괴짜 손님과 세 개의 병』과 함께 선물할 만한 음반
Kenny Clarke's Sextet - Jazz In Paris/Plays Andre Hodeir
괴짜 손님과 세 개의 병앙드레 오데르 글/토미 웅게러 그림/김영진 역 | 시공주니어
악어 특유의 험상궂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독자들을 맞이할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으나, 전혀 예상치 못한 우스꽝스러운 옷차림과 표정의 두 주인공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스코틀랜드 전통 의상 ‘킬트’를 입고 등장하는 워뤽 씨, 멋진 제복을 뽐내며 등장하는 우편배달부 윌리 씨, 낚싯대와 새총을 든 채 능청스러운 언행을 일삼는 앨비코코 씨 등은 작품을 감상하는 데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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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ㆍ그림책 작가, 그림책 번역가로 그림책 전문 어린이 도서관 '패랭이꽃 그림책 버스'와 그림책작가 양성코스‘이상희의 그림책워크샵’을 운영하면서, 그림책 전문 도서관 건립과 그림책도시 건설을 꿈꾸고 있다. 『소 찾는 아이』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은혜 갚은 꿩이야기』『봄의 여신 수로부인』등에 글을 썼고, 『심프』『바구니 달』『작은 기차』『마법 침대』등을 번역했으며, 그림책 이론서 『그림책쓰기』,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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