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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에 대한 제언

영화 <소수의견>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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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심에 말하지만, 부디 <소수의견>의 작가, 감독, 배우들은 내 글에 대해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내 애정 표현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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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영화에 대한 애증이 깊은 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한국영화만이 이 땅의 현실을 유일하게 다루고 있기에 볼 때마다 반갑다. 하지만, 그 방식이 세련되지 않을 때가 많기에 보고나서는 ‘뭐, 또 이렇게 돼버렸군’ 할 때가 많다. 이는 문학적으로 설명하기에 다소 애매한데, 어둠의 시절에 한화 이글스와 엘지 트윈스를 응원하며 수년간 ‘음. 또 이렇게 돼버렸군’ 하며 허송세월한 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애증을 반으로 잘라 마음이 기우는 쪽에 서 보라하면 결국 ‘애(愛)’쪽에 서게 된다. 그렇기에 투덜대면서도 꾸준히 본다.

 

한국 영화로 채우지 못한 허전함은 대개 외국영화를 보면서 달래는데, 그때마다 변호사들이 뜨거운 변론을 펼치는 법정 드라마가 부러웠다. 숨겨뒀던 증인이 출두하고, 전세를 역전시킬 증거가 제출되고, 의뢰인의 감춰왔던 과거가 드러나고, 이를 다시 뒤집고자 변호사가 심리전을 펼치고, 판사는 물론, 배심원까지 깜쪽같이 속여버리는 최종변론을 펼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아, 영화는 역시 법정 드라마지’하게 된다. 그렇기에 배심원 제도가 없고, 변호사가 미리 작성한 변론문만 읽고 나오는 한국에서 존 그리샴 원작의 헐리우드 법정 드라마 같은 것이 나올까 싶었지만, 이번에 본 ‘소수 의견’은 그간 보아온 법정 드라마보다 한 발짝 진보한 영화였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원작도 굉장히 탄탄하다는 인상도 받았다(손아람 작가의 건투를 빈다). 이 반가운 영화의 출현에 영사기 표 에세이를 하나 헌정한다. 영화의 제목이 ‘소수의견’인 만큼, 영화 ‘소수의견’에 대한 소수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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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영화 ‘소수의견’에서는 경찰이 철거민을 진압하는 과정에 아들이 사망하자 대한민국 정부가 이 잘못을 인정하라고 국가를 상대로 ‘100원 소송’을 펼친다. 감동적인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며 줄곧 ‘왜 하필이면 100원인가?’하는 생각을 했다. ‘100원’이관습적으로 명예를 상징하는 금액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따진다면 천 원을 해도 되고, 만 원을 해도 된다. 반드시 백 원일 필요는 없다. 그래서 청구액별로 승소했을 경우를 상상해보았는데, 아무래도 천 원을 받게 되면 왠지 팁을 받는 것 같다. ‘에이. 이럴 바에야 차라리 백 원을 받고 말지’ 하며 명예를 택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십 원을 받을 수도 있다. 승소액으로 따지면 백 원보다 훨씬 고집있어 보인다. 하지만, 기사에 ‘십 원짜리 소송’이라는 식으로 실리면, 왠지 욕설처럼 들린다. 하여 전폭적으로 금액을 올려 ‘만 원짜리 소송’으로 바꾸면, 왠지 남들보다 돈을 밝힌다는 인상을 준다. 상대적으로 돈 때문에 재판하는 것 같아보인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이런 소송을 한다면, 나는 9900원을 청구할 것이다. 왠지 고집스러워 보이지 않고, 청구액도 괜히 싸다는 인상을 줘서 ‘에이. 저 친구라면 져줘도 되지 않을까?’ 할 것 같다(물론, 아니면 말고).

 

둘째, 왜 배우 김의성에게는 자꾸 악역만 맡기는가. <관상>에서는 한명회를 맡더니, <남영동 1985>에서는 고문 경찰로, ‘소수 의견’에서는 왜곡된 애국심을 가진 검사 역할을 맡았다. <26년>에서는 딱히 악역이라 하긴 애매하지만, 매너리즘에 잔뜩 젖어 은근슬쩍 뒷돈 같은 것도 잘 챙길 것처럼 보였다. 그 탓인지 이제는 한국 영화에 김의성 배우가 웃으면서 나와도, 갑자기 뒷돈 거래를 하거나, 음흉할 짓을 꾸미는 장면으로 건너뛸 것 같다. 내가 안타까운 점은 사실 몇 년 전 나는 우연히 그와 한 커피숍의 커다란 나무 탁자에 나란히 앉아 각자의 볼 일을 본 적이 있었는데(나는 원고를 썼고, 그는 일행과 대화를 나눴다), 그가 영화와는 상당히 다른 선하고 정의로운 대화를 이끌어 갔다는 것이다. 실생활에서 그가 보여준 대화 중, 그나마 영화와 비슷한 대사는 ‘아. 형 어디서 마실건데?’ 같은 술 이야기 뿐이었다(‘아. 그 집 알지’ 같은 대사도 했던 것 같다). 마침 홍상수 감독의 ‘북촌 방향’을 본 때라, ‘역시 잔뜩 마시는군’ 하며 묵묵히 원고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 후 SNS에서 대화도 주고 받았는데, 상당히 유머러스한 남자였다. 그러니, 한국 영화 감독들은 나 같은 관객을 생각하여 이제 김의성 배우는 악역 보다는 ‘고문을 당하는 쪽’이나, ‘뒷돈을 제공했다가 발각돼 실업자가 되어 인력시장을 기웃거리는’ 동정심 가는 역할을 제안해주기 바란다.

 

셋째는 최근에 ‘무뢰한’이라는 영화를 보며 느낀 점인데, 이 작품은 한국영화이면서도 매우 프랑스 영화 같았는데, 색감이나 미장센, 절제된 대사 등이 그러했지만, 가장 놀라웠던 점은 이경영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정말 나오지 않았다. 단 한 장면도. 그래서 영화가 끝나자, ‘아아, 이게 한국 영화가 맞나?’하며 어리둥절해졌다. 하지만, 소수의견은 한국의 현실을 오롯이 담고 있기에 전면적으로 배우 이경영을 내세웠다. 과감하게 도입부부터 등장하기에 나는 속으로 ‘간만에 진짜 한국영화 보는군’하며 봤다. 특히 이번에는 국가의 권력에 아들을 희생당한 아버지 역할을 하니, ‘아, 이번엔 심지어 약자군!’하며 감격하며 보았다. 하지만, 재판 장면에서 김의성이 검사로 나오자, 갑자기 이경영이 피고인 석에서 소매를 걷으며 ‘자, 시작하지’ 하며 휘파람을 불면 <남영동 1985>에서처럼 김의성이 눈치를 보며 고문을 시작하는 게 아닐까 싶어, 조마조마한 채로 봤다. 그러자 묘한 긴장감이 형성되어 묘한 재미가 더해졌다. 나는 속으로 ‘아, 이 감독 대단하군. 관객의 사전지식을 역이용하고 있군’하며 또 한 번 감탄했다. 그렇지만, 다른 감독들은 부디 이경영과 김의성을 한 씬에 등장시키지 말아줬으면 한다. 자꾸만 이경영이 휘파람을 불며 ‘자, 시작하지’ 할 것 같아서, 영화가 끝나고 나자 ‘결국, 안 시작한거야?!’라는 이상한 기분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부디 <소수의견>의 작가, 감독, 배우들은 내 글에 대해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내 애정 표현 방식이다. 간만에 흥미롭고, 훌륭하고, 의미있는 한국 법정영화를 보았다.  <소수의견>이 비록 많은 개봉관에 걸리지는 못했지만, 제목처럼 소금 같은 소수 의견이 있기에 사회는 썩지 않는 바다가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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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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