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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모델은 한국에선 절대 불가능” - 『소수의견』 박권일

박근혜=싱가포르, 안철수=핀란드, 문재인=네덜란드 88만원 세대는 여전히 지옥에 살고 있다 이런 의제 없는 선거는 처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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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3일, 서울 마포구 자음과모음 사옥에서 열린 『소수의견』 저자강연회에서 박권일 저자는 “(희망 없는 지옥에서) 생존하라”는 말을 건넸다. 강연의 테마는 ‘2030 유권자 대선가이드 ’누구를 위한 대선이란 말입니까‘. 마침 이날 강연 도중, 안철수 대선 예비후보의 사퇴 소식이 전해졌다. 단일화를 둘러싼 극단적인 사회 분위기에 대한 우려도 다른 방향으로 전환됐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가 지옥이야.” <드라마의 제왕> 앤서니(김명민)는 이 ‘불편한 진실’을 또박또박 내뱉는다. 아니, 지금-여기에 살고 있는 누가 저 말에 토를 달 것인가. 돈이 많거나 적거나, 권력을 가지거나 갖지 않거나, 젊거나 늙거나, 상관없다. 우리는, 지옥을 견디고 버티기 위해 살아갈 뿐이다. 박찬일 쉐프도 『어쨌든, 잇태리』에서 “혹시 이탈리아에 나쁜 감정이 있어서 “절대 가볼 만한 나라가 아니야”라고 반박하는 이가 있다면 나는 “적어도 당신은 지옥 같은 한국을 떠나온 것이잖아”라고 말하겠다”고 했다.


누구를 위한 단일화였을까?

박권일은 야권 단일화를 해달라는 유서를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너무 극단적으로 과열된 사회 분위기에 대한 우려. 단일화가 되지 않으면 악마가 강림할 것 같은 분위기, 단일화 때문에 다른 문제가 모두 소멸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단일화 과정, 아름다운 승부와 승복이 진행돼도 아쉬울 마당에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언론플레이로 중계되면서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비판과 상처가 난무하는 상황을 걱정했다.

“이런 ‘개싸움’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표정관리가 안 되는 건 박근혜 후보 쪽이다. 춤을 출 것 같다. 양쪽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대선이 어떤 의미이고, 왜 단일화에 목매는 게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이야기하고 싶다. 또 세 후보의 정책을 통해 각기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살펴보고 이야기하고 싶다.”


박근혜=싱가포르, 안철수=핀란드, 문재인=네덜란드

그는 이어 세 후보의 대선공약을 근거로 각기 어떤 나라가 모델인지 견해를 밝혔다. 우선 박근혜 모델은 ‘싱가포르’다. 그는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한국 사회는 모든 면에서 퇴행할 것이 분명하다며, 박근혜의 경제민주화는 레토릭만 있을 뿐 내용이 없다고 비판했다. 다만 정치적으로는 MB보다 안정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새누리당의 권력자이자 황제로서 정치적 안정을 바라는 지지자들에겐 박근혜가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최대한 봐줘서. 맥시멈으로 좋게 보면, 박근혜의 모델은 싱가포르다. 싱가포르의 길거리에는 쓰레기가 없고, 껌 뱉으면 태형에 처한다. 그래서 법을 잘 지킨다. 국가가 살벌하게 조지니까, 어쩔 수 없이 법을 지키는, 대표적인 권위주의 국가다. 리콴유라는 지도자가 박정희와 비견된다. 박근혜 생각대로 만들면 일벌백계 엄벌주의로, 인권과 시민권을 제약하는 대신 치안이 강화되는 국가가 되겠지. 싱가포르를 동경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평범한 40~50대가 싱가포르에 갖고 있는 이미지도 좋다. 풍요롭고 깨끗하고 법 잘 지키는 국가? 평균 한국인이 지향하는 나라의 공통점을 뽑아보면 싱가포르 일수도 있다.”

안철수 전 후보의 것으론 핀란드 모델을 꼽았다. 박 작가, 안철수가 기본적으로 착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안 전 후보가 정치를 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관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정치개혁안 발표 이후 그 기대, 식었다.

“정치 개혁안에서 국회의원 수 줄여서 하는 건, 이혼율을 낮추기 위해 결혼을 못하게 만든다는 셈이다. 복잡한 문제도 고려해야 하는데, 한국은 유럽 등에 비교하면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 한국 정도의 수준은 일본밖에 없다.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더 정치적인 후진국이고.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면 더 적은 수의 정치 엘리트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 안 후보는 행정과 정치를 혼돈한 게 아닌가 싶다.”

다만, IT분야 공약에서 액티브 엑스를 폐지하겠다는 참신한, 누구나 바라고 있던 공약에 대해선 높은 점수를 줬다. IT분야에선 다른 후보보다 월등했고, 교육 역시 고민을 많이 했다며 점수를 높게 줬다. 그러나 경제 정책은 박근혜 캠프 정도에 불과했다며, 개혁적인 것도 없고,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보고 있다는 지적을 했다.

“안철수 공약을 맥시멈으로 했을 때, 선의로 보면 핀란드다. 핀란드는 1인당 국민소득이 5~5만 5,000달러 수준이고, 인구가 적어서 한국과의 비교는 어려운데, 교육정책이 유명하다. 낙제생을 없애는 교육이고, 그 결과 학력평가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그래서 핀란드 모델이 유명해졌다. 핀란드는 또 IT가 교육에 포함될 정도로, IT가 강한 국가이기도 하고.”

문재인 후보는 공약의 완성도가 세 후보 중 가장 높았다고 운을 띄웠다. 교육이나 경제, 사회, 문화 골고루 좋은 점수를 줄만 했다. 다만 경제정책은 안철수 후보보다는 낫지만 진보 시각에선 부족했으며, 비정규직, 한미 FTA 등 민감한 부분을 피해가고,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안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경제정책은 세 후보 간 별다른 차이가 없는 가운데, 최악은 박근혜 후보이나, 오십보백보라고 평했다.

“문제인 후보의 정책을 최대한 실현하면, 네덜란드 모델에 가까워졌다. 네덜란드도 5만 5,000달러 수준으로, 농업 외에 공업이나 제조업 분야에도 강세가 있다. 네덜란드 모델에 맞춘 것은 이정우 교수 때문이다. 이 교수가 참여정부 청와대에 있을 때, 노동유연화를 극대화시키는 모델을 추진했다. 해고와 고용을 자유화하는 대신 언제든 재취업을 할 수 있도록 만든 모델이다. 네덜란드는 그래서 산업전환이 빠른 모델이다. 비정규직한테 돈을 더 주고, 일을 그만둬도 다시 그 정도 일을 할 수 있어야 가능한데, 한국은 일자리가 더 줄어들 것이라 네덜란드 모델은 스웨덴 모델보다 더 현실성이 없다.”

그는 스웨덴 모델은 한국에선 불가능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북유럽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차치하고라도, 스웨덴도 예외적으로 노조가 강력했던 시기에, 노동자의 조직된 힘이 강력했을 때 지금의 복지모델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지금 스웨덴도 그리 하긴 힘들다는 것. 특히, 한국은 노조 조직률이 10% 미만으로, 스웨던 모델은 언감생심이다. 즉, 스웨덴식 복지국가모델의 전제는 조직 노동력이 강해야 하나, 노조가 많이 약한 한국에선 불가능하다.

“박근혜의 싱가포르 모델은 탄력성이 낮고, 문재인, 안철수는 잘하면 네덜란드나 핀란드이나 신자유주의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 못하고, 금융개혁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부도난 아이슬란드 꼴이 될 수 있다. 셋의 공통점이라면 여전한 신자유주의이며 노동이 증발했다. 노동 대신 ‘1대99 사회’ 등을 말하는데, 난 이런 말이 싫다. 1% 소수의 재벌과 나머지 사람의 대결? 아니다. 계급문제를 그리 접근해서는 풀기 어렵다. 선동하긴 편해도, 한국 사회는 그런 나이브한 레토릭으로 풀 수 없다. 특히, 그 과정에서 노동이라는 말 자체가 증발했다.”


세대 동맹이 필요하다!

물론, 그가 보기에도 세 명, 분명 차이가 있다. 인권 등에선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지금 이명박 정권보다는 훨씬 나아질 것으로 봤다. 그도 이명박 정권 초기, 라디오 방송에 출연할 때, 검열과 사찰을 당한 나쁜 기억이 있다. 사찰이 일상화된 정권이었다는 것. 그러나 문제는 경제다. 그는 못하는 사람은 여전히 못 살고, 위기나 불황이 일상화될 것으로 봤다.

“경제 분야에선 답이 없다. 연착륙해야 하는데, 아무도 그런 얘길 안 한다. 그런 얘기하면 싫어하니까. 미친 듯 소비했던 90년대 초반이 다시 올 줄 안다. 그런 시절은 완전히 끝났다. 『88만원 세대』가 그런 이야기였다. 기회의 문이 모두 닫혔다. 부조리해도 어쩔 수 없다. 지금은 불황이라는 긴 터널의 초입에 어떻게 경제를 운용하고 먹고 사는 문제, 성장 동력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얘기해야 하는데, 세 명 모두 얘길 안 한다.”

그는 세대동맹을 꺼냈다. 당초 203040이 안철수와 문재인 후보를 중심으로 뭔가를 하면 정권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즉, 세대 동맹.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기억을 떠올리면 그랬다. 당시 세대동맹을 이룬 이들은 미디어 리터러시, 미디어에 대한 감수성과 능력을 바탕으로 인터넷 확산의 기운을 타고 기적을 이뤄냈었다.

“캠벨이 말한 정치공감각은 정치에 참여하면서 사회가 변화한다는 느낌을 척도화한 것인데, 그런 느낌이 있어야 정치 개혁에 참여한다. 세대동맹이 하자고 해서 이뤄지는 게 아니다. 203040은 위치도 다르고 성장과정도 다르다. 그럼에도 2002년에는 뭉쳤고, 기적적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지금은 안 될 것 같다. 특단의 조치나 계기 없는 한 2002년 수준의 세대동맹은 안 될 것 같다. 정확하진 않아도, 지금 20대는 안철수에 대한 열광이 많이 식었고, 굉장히 안 좋은 상황이다. 외려 2007년과 비슷하다. 대립적 의제가 없다. 정치 공감을 갖고 참여할 계기도 없고. 지금 안철수 후보가 사퇴했는데, 생각지도 못했고 정말 놀랍다. 최악의 타이밍은 피한 것 같은데, 세대동맹 문제는 정치 공감을 강하게 가질 수 있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단일화 과정에서 감동적인 이벤트 있고, 후보 개인들도 뭔가 보여줘야 하는데, 그게 없었다.”


‘안철수 현상’에 대하여


[출처: 진심캠프(//jinsimcamp.kr/)]

안철수 후보의 급작스런 사퇴 소식, 그는 ‘안철수 현상’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펼쳤다.

“안철수를 어떻게 봐야할지 좀 지켜봐야할 것 같다. 어느 순간 이 사람이 한국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안철수는 솔루션은 물론 개혁가, 정치가, 승부사도 아니다. 정말 성실한 멘토? 그 정도인데, 한국도 20년 동안 신자유주의를 따르면서 열심히 하면 부자가 될 걸로 믿었는데, 아무리 해도 안 되니 피로감을 느끼고, 힐링이 등장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안철수라는 아이콘에 열광했던 것 같다. 변혁이나 진보, 개혁의 열망이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 안철수, 좋은 사람이나 보수적인 사람이다. 안철수가 안 나왔다면 박근혜를 꺾을 거라는 희망도 없었을 거다. 그런 면에서 다행이지만, ‘88만원 세대’에게 말하고 싶은 건 이 세 명에게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들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할 것을 요청했다. 이른바 기성세대의 선동에 휘둘려 착각하거나 착시를 일으키면 안 된다는 것. 그가 보기에, 88만원 세대는 여전히 지옥에 살고 있다. 문제는 지옥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는 청춘에 대한 말을 이었다. 이른바, ‘청춘담론’. 과연 이 시대와 사회는 청춘에게 제대로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200만 부 이상 팔렸다. 위로를 받고 싶은 청춘들에게 적절하게 아름다운 문장과 메시지로 위로해줬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런 청춘담론이 굉장히 취약한 담론이다. 현실 인식을 하는데도 취약하고, 언제든 악용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20대들에 대해 486이 선거 때마다 셔틀로 생각하는 행태가 반복된다. 선거 후 20대 투표율이 나오면 어김없이 ‘개새끼론’이 나오고 투표율이 오르면 20대가 진보적이라는 등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는 필수!

그는 안타깝다. 우리 사회엔 20대에 대한 스테레오타입화된 고정관념이 있다. 한국에선 특정 세대를 진보나 보수의 잣대로 잰다는 것이 무의미하고 불합리하다. 기본적으로 계급에 대한 교육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20~30대 유권자들은 누가 그들의 삶을 힘들게 했는지 역사를 뒤져봐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것에는 참여정부의 책임이 크다. 88만원 세대가 가장 힘들어진 시절이다. 개혁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음에도, 조선일보와의 싸움 등으로 시간과 정력을 허비했고, 나중엔 레임덕이 와서 개혁을 못했다. 88만원 세대에게 구명조끼를 던질 수 있었음에도 문제의식 없이 신자유주의를 심화했다.

그것도 내부에 개혁적인 참모들이 많았음에도, 정권 차원에선 제대로 일을 못했다. 결국 신자유주의의 심화는 기성세대가 공모해서 한 세대의 전체 임금을 깎는 청년 대학살을 불렀다. 전무후무한 일이자 미친 짓이었다. 기성세대가 야바위를 하는 것처럼 한 세대의 초임을 삭감하다니. 비열하고 졸렬한 수작이었다. 경제 불황을 이유로, 노조의 비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악용하여, 한 세대 전체를 날려버린 것이다. CEO나 임원의 임금은 당연히 깎이지 않았다.

“대졸 초임 삭감 사건 때 충격이 심해서 블로그에 썼었다. 청년들은 나가서 드러누워야 한다고. 그러나 별일 없었다. 당시 저항을 했다면 좀 더 개혁적인 후보가 나오거나 문-안 후보가 좀 더 청년문제에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다. 찍소리라도 내고, 청년유니온 등이 좀 더 활발한 활동을 해줬으면 싶었는데, 여전히 한계가 보였다. 지금 양자대결이 됐지만 어느 후보를 찍든 당신 삶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참여정부에 있었던 문재인 후보는 88만원 세대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어야 한다. 그도 강단 있는 노무현 대통령도 재벌이나 관료에 휘둘리는 걸 보면서 개혁도 5년짜리 정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거다. 그래서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도 넓게는 플러스라고 보나, 이번 대선, 정말 재미없다. 이런 의제 없는 대선은 처음이고, 모든 관심이 단일화로 모아진 대선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럼에도 박 작가, 투표 독려를 잊지 않았다. 투표까지 않으면 더 호구가 된다는 것. 그는 추후 결선투표제나 호주식 선호투표제를 검토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한국 대선의 문제점은 국민들 대다수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완벽한 투표제는 없지만 보완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진정성 등 추상적인 것을 믿고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닌 제도 정비 등을 통해 민의가 제대로 반영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Q&A

질문

어떻게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지? 라는 정서적 반응이 옳다고 봤는데, 최근 이런 감정이 옳은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또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돼서 ‘박정희 환상’을 깨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 어떻게 생각하나?

답변

박근혜라는 정치인, 대통령이 되면 한국이 나빠진다고 보지만, 여론몰이에 밀려서 어렴풋이 판단하는 것도 위험하다. 안철수를 모르면서 이미지로 판단하는 것처럼, 자기 머리로 생각 않고 여론을 잣대로 판단하는 건 착오를 일으킬 수 있다. 박근혜 후보에 대해 유신의 딸이라고만 알고, 우리는 여전히 그를 모른다. 박정희 환상을 깨는 건, 레닌주의자들의 파국론을 연상시킨다. 더 나빠지게 만들어서 혁명적 상황을 만드는(웃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박근혜 후보가 나라를 말아먹으면 촛불 대신 죽창을 들고 나설 수 있다는 생각도 했는데, 그럴 것 같진 않다. 우리나라는 IMF때도 청와대 진격하지 않았고, 서해안 태안 기름 유출사건 때도 삼성 본관을 점령하지 않았다.

실은 멍청한 거지. 밟으면 저항해야 하는데, 나만 부자가 되고 출세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도 부유세, 종부세를 반대한다. 자기도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계급적 허위의식은 멍청해서라기보다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투기 등으로 부자가 된 것을 봐서다. 고도성장기적 생각을 갖고 있어서 계급적 선택을 못하는 부분도 있다. 가난한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부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계급을 몰라서 지지하는 게 아니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박정희에 대해 다시 생각할 것 같진 않다. 동상도 세우는 걸 보면 나이든 세대는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사라지진 않을 것 같다. 박근혜 후보가 나라를 말아먹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설혹 말아먹어도 파국을 통해 바뀔 것 같지 않다. 그리 보면 이명박 정권 때 이미 바뀌었어야 한다.

질문

그럼 희망이 없나?

답변

나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희망 아닌 생존을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희망고문 같은 얘기, 왜 나라고 하고 싶지 않겠나.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아무리 봐도 희망은 없고, 근거가 될 만한 걸 찾을 수가 없다. 후배 세대들은 점점 더 힘들어질 것 같다. 그렇다고 저항을 하지도 않고. 후배 세대들 보면 그냥 살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분노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고. 그게 너무 가슴 아프다. 지금 문제는 빙하기를 앞둔 시대에 어떻게 생존해야 할지다. 당분간 암흑기가 올 것이다. 어떻게든 생존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

질문

요즘 일베(일간 베스트)저장소 등을 보면, 극단적으로 파시즘이 오는 건 아닐까 싶다.

답변

486은 이주노동자에 대해 온정적이고 추상적으로 파악한다. 외국에서 온 불쌍한 사람들인 거지. DJ정권부터 시작한 다문화정책은 온정주의가 기본으로 깔려 있다. 그러나 지금 세대는 이주노동자가 경쟁자여서 그리 볼 수가 없다. 반이주노동자 정서는 그리 생겨나는 것이다. 인종주의적 반감 등을 통해 독일의 극우파시스트들과 비슷한 논리를 퍼트리는 것 같다. 일베는 약간 다르긴 하나, 반여성주의, 반전라도, 반민주화 세력으로 일컬어지고 인터넷 할 시간이 충분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정말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인터넷 할 시간이 없다.

일베는 전형적인 극우담론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불만이 팽배하면서 취업 못하고 실업률 높아지고 불안정 노동이 심해질수록 일베나 다문화반대 카페들이 늘어난다. 지금 일본 정치계 태풍의 눈이자 극좌와 극우를 오가는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 같은 사람이 나타나면 한국에도 극우정당이 등장할 거라고 본다. 진보정당의 부활가능성보다 네오라이트가 나타날 가능성이 더 크다. 생존하라는 내 말엔 그런 흐름 속에서 생존하기 쉽지 않아서 어떻게든 생존하라는 얘기다. 징후가 좋진 않다.

질문

일베충이 ‘표준시민’이고, 처한 상황에 따라 변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답변

‘표준시민’은 독일의 ‘교양시민’에서 따온 말인데, 경멸적인 뉘앙스다. 독일에선 속물적이고, 잘난 척 하지만 비겁한 시민을 그리 말한다. 원래는 좋은 말이었다가 1~2차 대전 때 홀로코스트나 전쟁을 막지 못해서 그리 바뀌었다. 이것이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명해줄 수 있는 키워드라고 생각했다. 그런 개념으로 책을 쓰다가 완결 짓지 못했고, 내년엔 나올지 모르겠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갖춘, 수도권 시민이자, 2000년대 이후 사회적인 큰 현상을 좌지우지해온 집단이 표준시민이다. 일베는 표준시민의 자제들이고. 서구의 69나 히피세대가 부모세대의 위선에 대한 반감으로 진보적 이념 형태로 자신의 불만을 표출했다면, 한국의 일베는 극우적 형태로 표출된 것이다. 지금, 끝도 없는 불황에 들어서 극우적인 형태로 저항하고 있다는 가설을 갖고 있다. 책을 계속 쓰면 일베에 대해서도, 표준시민론의 연장선상에서 쓰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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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박권일 저 | 자음과모음(이룸)
2012년 대선을 앞둔 올해, 이명박 정권 이후 우리 사회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돌아볼 수 있는 박권일 사회 비평집. 저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다수의견에 가려진 소수의견에 비유하면서, 소수의견도 다수의견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2007년부터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까지 『시사IN』『한겨레』 등에 저자가 발표한 칼럼을 ‘정치, 온라인, 일상, 이데올로기, 88만 원 세대’, 5개의 주제로 나누어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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