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음악 > 주목, 이주의 앨범
은지원의 역할은 여전히 애매하다. 작사, 작곡, 프로듀싱에 두루 참여하고 있지만 진두지휘하는 수준은 아니다. 콤비나 다름없는 킵루츠, 본인이 속한 클로버의 미스터 타이푼과 길미 등 오랜 시간 함께해 온 동료들이 이번에도 자기 일인 양 발 벗고 나섰다. 게다가 네 편의 수록곡 모두 객원 보컬 길미와 제례미를 들인 탓에 비중은 더 내려간다. 스태프와 조연의 숨소리가 크게 느껴진다.
보컬리스트로서의 존재감 또한 모호하다. 이전의 몇몇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은지원은 신작 < Trauma >에서도 래핑과 싱잉을 병행한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퍽 인상적이지 않다. 특히 「트라우마」는 버스(verse)의 짤막한 추임새가 부자연스럽고 후렴에서 높은음을 찍을 때마다 갑갑함을 동시에 내보여 흡족함을 느끼기 어렵다. 「What U are」에서의 플로가 제법 탄력적이긴 하지만 다른 노래들에서는 그에 버금가는 끈기와 오밀조밀함이 발견되지 않는다. 라임도 전반적으로 빈궁하고 허술하다. 랩과 노래에 욕심을 부리곤 있으나 기량은 깍두기에 불과하다.
참신성에 대한 열정도 부족하다. 은지원은 특별한 개성을 나타내기보다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 대중성을 띤 곡들을 취합하는 데에만 골몰했다. 「What U are」는 1990년대 초, 중반에 인기를 끌었던 둔탁한 비트를 지녔지만 워렌 지(Warren G)의 「This DJ」가 연상되는 아늑함을 자아내고, 「Excuse」는 보사노바풍의 리듬을 곁들여 온순함을 형성한다. 각각 신시사이저와 전자 키보드로 이룬 루프가 차분함을 어필하는 「트라우마」와 「Soulmate」도 다수가 무난하게 들을 수 있는 형식의 연장이다. 감상하기에는 무난해도 남을 것이 없다.
총제작자로서도 현명하지 못했다. 노래들을 듣고 나면 은지원 솔로 앨범이라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그냥 클로버 앨범이다. 클로버의 노래들을 프로듀스했던 킵루츠, 그룹의 사실상의 기둥 타이푼, 홍일점으로서 목소리가 튀는 길미가 고스란히 동행하고 있으니 클로버 음악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룹과 구분되는 솔로 앨범다운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서는 친한 음악인, 편한 뮤지션이 아닌 새로운 동료를 섭외했어야 했다. 총제작자로서 함량 미달이다.
은지원은 실력이 괜찮음에도 인지도는 비례하지 않는 이 식구들을 어떻게든 견인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일은 일, 음악은 음악이다. 한순간의 판단 미스로 < Trauma >는 클로버의 번외 결과물에 그치고 말았다. '2년 6개월 만의 솔로 앨범'이라는 홍보 문구 속 한 줄은 이 때문에 의미를 잃는다.
이렇게 한결같기도 쉽지 않다. 래퍼, 싱어로서 실력은 나아지지 않았고 자신이 해낼 수 없는 부분은 평소처럼 가까운 동료에게 의탁한다. 가수라고 하지만 노래 부르는 모습보다 쇼 프로그램에서 보는 날이 훨씬 더 많다. 음악이 친구들과 가끔씩 즐기는 취미생활이 됐기에 투철한 방향성, 섬세한 예술성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은지원은 자기 음악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 미완의 15년은 더 긴 세월로 넘어간다.
2015/06 한동윤(bionicso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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